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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가나 북스의 전자책 『몽상가의 이야기』 일부를 연재합니다.
* 서지정보 및 판매처 안내 : http://pegana.tistory.com/124
* 공개 기간 : 무기한

안델스프럿츠의 광기
The Madness of Andelsprutz

나는 어느 봄날 오후 처음으로 안델스프럿츠(Andelsprutz) 도시를 보았다. 그날 가득 내려쬐는 햇빛 속에서 들판에 난 길 위를 걸으며 오전 내내 이렇게 중얼거렸다.
“정복당한 아름다운 도시, 그 유명한 사랑스러운 꿈으로 지어진 곳을 처음 보았을 때 그곳은 햇빛을 가득 받고 있겠지.”
돌연 평원 너머로 솟아나듯 성벽이 눈에 들어왔고 그 뒤로는 종루가 서있는 게 보였다. 문을 지나니 수많은 집과 거리가 있었는데 커다란 실망감이 나를 덮쳤다. 도시에는 분위기가 있어 그걸 알아차린다면 누구든 즉시 한 도시와 다른 도시를 분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으로 가득한 도시와 기쁨으로 가득한 도시도 있으며 우울함으로 가득한 도시도 있다. 얼굴을 하늘로 향한 도시도 있으며 땅으로 향한 곳도 있다. 과거를 보는 곳이 있는가 하면 미래를 보는 곳도 있다. 보는 순간 들어오게 되는 곳도 있으며 흘깃 보기만 하고 지나가는 곳도 있다. 이웃을 사랑하는 도시도 있고 들판과 초원을 그리워하는 곳도 있다. 어떤 도시는 바람에 드러나고, 어떤 곳은 보라색 외투를 걸쳤고 다른 곳은 갈색 외투를 입었으며 어떤 곳은 하얀색 옷을 입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옛날이야기를 말하는 곳도 있고 비밀로 하는 곳도 있다. 노래하는 도시도 있고 중얼거리는 곳도 있으며 화내는 곳도 있고 슬픔에 잠긴 곳도 있다. 그런 각각의 도시에는 〈시간〉을 맞이하는 저마다의 방식이 있다.
나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아름다움을 뽐내는 안델스프럿츠를 보고 말리라.”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정복당하여 슬피 우는 모습을 보게 되리라.”
또 이렇게도 말했다.
“도시는 내게 노래를 부르리라.” “입을 다물리라.” “모든 걸 빼앗기리라.” “아름다움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알몸이 되리라.”
하지만 안델스프럿츠의 창문들은 죽은 광인의 눈처럼 평원을 향해 활짝 열려 있었다.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불쾌하고 귀에 거슬리게 들렸다. 종 몇 개는 조율되지 않았고 몇 개는 부서졌으며 지붕은 훤히 드러난 상태였는데 이끼는 없었다. 저녁이 되어도 거리엔 즐거운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집 안에서 어둠을 밝히는 신비로운 빛이 넘쳐흐르는 일도 없이 램프가 켜졌다는 걸 겨우 알 정도였다. 안델스프럿츠에는 독특한 분위기도 방식도 없었다. 밤이 찾아와 주위가 컴컴해지자 낮에는 생각도 못했던 걸 알아차렸다. 나는 그제야 안델스프럿츠가 죽었음을 안 것이다.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는 금발 남자를 보고는 그에게 물었다.
“안델스프럿츠는 어째서 죽은 겁니까? 도시의 영혼은 사라진 건가요?”
그가 대답했다.
“도시에 영혼이니 벽돌에 잠든 생명이니 하는 건 없소.”
이에 내가 말했다.
“선생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하니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그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리고 좀 더 마르고 머리카락이 검고 뺨에 눈물 자국이 남은 남자를 발견하고는 그에게 물었다.
“안델스프럿츠는 어째서 죽었으며 그 영혼은 언제 사라져버린 겁니까?”
그 남자가 대답했다.
“안델스프럿츠는 큰 희망을 품고 있었다오. 30년 동안 도시는 매일 밤 아클라(Akla)의 땅을 향해 팔을 벌리고 있었지요. 어머니이신 아클라로부터 훔친 도시이니까. 매일 밤 도시는 희망을 품고 한숨을 쉬며 팔을 어머니 아클라에게 뻗었더랬소. 매년 하룻밤, 그 끔찍한 날이 돌아오면 아클라는 첩자를 보내어 안델스프럿츠의 벽에 화환을 놓는다오. 그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그리고 매년 이날 밤 나는 울곤 했지. 우는 게 나를 길러준 도시의 분위기였거든. 매일 밤 다른 도시가 잠든 사이에 안델스프럿츠는 여기에 앉아 생각에 잠겼고, 벽에 걸린 화환이 서른을 넘길 때까지 희망을 버리질 않았다오. 그래도 아클라의 군대가 쳐들어오는 일은 없었지요.
하지만 그토록 오래 희망을 품은 끝에 충실한 첩자들이 서른 번째 화환을 가지고 찾아온 날 밤, 안델스프럿츠는 갑자기 광기에 빠져들었던 거요. 종탑의 종은 모두 소름 끼치는 소리를 냈고, 말은 거리를 내달렸으며, 개들은 일제히 짖어댔고, 둔감한 정복자들은 깨어나 침대에서 몸을 뒤척였다가 도로 잠들었다오. 그리고 나는 대성당의 환영을 머리장식으로 두른 안델스프럿츠의 잿빛 그림자와 같은 형체가 일어나 육체인 도시를 떠나 걸어가는 걸 보았던 거요. 안델스프럿츠의 영혼인 거대한 그림자 형체는 무언가 중얼거리면서 산으로 향해 갔지. 나는 그 뒤를 따라갔고…… 나를 길러준 곳이 아니게 되는 건가? 그래, 나는 혼자서 산을 올랐다오. 사흘 동안 안개와 고독 속에서 외투를 몸에 감고 잠들었지. 먹을 것도 없었고 마실 거라곤 산속 개울물밖에 없었다오. 낮에는 옆을 지나가는 생물 하나 없고 바람소리와 샘물 흐르는 소리밖에는 들리지 않았지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