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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연재

멜론타 타우타 (1/2)

pilza2 2012. 12. 21. 00:00
* 페가나 북스의 전자책 『로봇과 침대의 무게』 전문을 연재합니다.
* 서지정보 및 판매처 안내 : 로봇과 침대의 무게
* 공개 기간 : (무기한)

멜론타 타우타
Mellonta Tauta
에드거 앨런 포
Edgar Allan Poe

편집자 주
* 〈멜론타 타우타〉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 소포클레스의 희곡 『안티고네』에서 인용한 말로 미래를 사는 사람, 미래에 살아갈 사람이라는 뜻이다.

* 본작에 등장하는 인명, 지명 등은 작가가 창작한 가상의 존재라고 여겨진다. 대부분 실제 인명과 지명을 조금씩 비틀었는데 뉴턴과 케플러처럼 실제 그대로 쓴 경우도 있다.



레이디스 북(THE LADY'S BOOK) 편집자께
귀 잡지에 한 편의 기사를 보내드립니다. 저보다 오히려 귀하께서 내용을 더 잘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이것은 제 친구인 마틴 밴 뷰렌 메이비스─〈텁킵시의 예언자(Toughkeepsie Seer)〉라고 불리는 괴짜지요─가 번역한 것으로, 1년쯤 전에 마레 테네브라룸(Mare Tenebrarum 암흑의 바다라는 뜻. 제이콥 브라이언트의 고대신화에 ‘누비아의 지리학자는 대서양을 마레 테네브라룸라고 불렀다’는 기술이 있다)에 떠다니는 코르크 마개로 막은 병 속에서 발견한 문서입니다. 참고로 그 바다는 누비아(나일강 유역에서 홍해에 이르는 지역. 고대엔 독립 왕국이 있었으나 현재는 대부분 수단의 영토이며 일부가 이집트의 영토이다)의 지리학자에 의한 기술은 있으나 현재는 초월주의자나 별난 잠수부 외에는 좀처럼 찾는 이가 없는 곳입니다.
그럼 이만.
에드거 A. 포

열기구 〈종다리〉 호에서
2848년 4월 1일
사랑하는 내 친구에게. 너는 이제 네 죄로 인해 온갖 소문이 담긴 기사에 시달리게 될 거야. 나는 네 건방짐을 벌하기 위해 되는 대로 장황하고 두서없는 이야기를 들려주려 해. 난 지금 여기 2백 마리는 될 듯한 카나리아와 함께 지저분한 기구를 타고 즐거운 여행을 떠나고 있어. 이 얼마나 멋진 생각인지! 적어도 한 달 정도는 땅을 밟을 예정이 없어. 대화할 사람도 없고 할 일도 없지. 할 일이 없을 때, 그때가 바로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을 시간이란 말이야. 이제 넌 왜 내가 이런 편지를 쓰는지 알겠지? 바로 나의 권태와 너의 죄악 때문이야.
안경을 준비하고 화를 낼 준비를 하도록 해. 나는 이 불쾌한 여행을 하는 동안 매일 너에게 편지를 쓸 테니까.
아! 인류의 두뇌 속에 언제 창조력이 생겨날까? 우리는 영원히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닌 기구나 타고 다녀야 할 운명이란 말일까? 더 빨리 날아다닐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누가 고안해낼까? 이 느릿느릿한 움직임은 내 생각에 고문 이상도 이하도 아냐. 우리는 집을 떠난 후로 시속 100마일 이상을 가지 못하고 있어! 수많은 새들이 우릴 앞질렀지…… 적어도 일부 새들은 말야. 결코 과장하는 게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어. 우리의 움직임은 실제보다 느리게 느껴지거든. 속도를 측정할 도구도 없고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야. 다른 기구를 만나 우리의 속도를 측정할 기회가 된다면 그렇게 안 좋은 상황이 아님을 인정할 수 있겠지. 이런 방식의 여행에 익숙하긴 하지만 다른 기구가 기류를 타고 머리 위를 지나갈 때마다 현기증이 일어나 견딜 수가 없어. 마치 커다란 맹금이 발톱으로 우리를 채어갈 것만 같이 느껴진단 말이야. 오늘 아침 새벽녘에도 하나가 우리 위를 지나갔는데 어찌나 가까웠던지 기구 아래로 늘어뜨린 밧줄이 우리 기구에 연결된 그물망을 스치고 지나가서 얼마나 불안했는지 몰라. 만약 기구의 재질이 오백 년이나 천 년 전처럼 겉치레로만 꾸민 비단이었다면 우린 정말로 위험했을 거라고 기장이 말하더군. 그의 설명에 따르면 비단은 어느 벌레가 뽑아낸 섬유라고 해. 그 벌레는 뽕나무─수박 비슷한 열매가 열리는 나무야─ 잎을 먹고 사는데 적절히 살이 찌면 방앗간에서 으깨어지지. 만들어진 반죽은 파피루스라고 불리는 원시적인 상태가 되었다가 여러 공정을 거친 다음에 최종적으로 비단이 되는 거야. 이상한 연관이지만, 원래는 여성용 드레스의 재료로 각광을 받았다지! 기구 역시 그걸로 만드는 게 일반적이었어. 더 나은 종류의 재료는 유포르비움(euphorbium)이라 불리는 식물의 씨앗받침에서 발견되었어. 당시엔 식물학적으로 밀크위드(milkweed 흰 유액을 분비하는 식물의 총칭)로 분류되었지. 이러한 후기의 비단은 내구성이 우수하여 버킹엄 비단이라 불렸어. 보통은 천연 고무─요즘 흔히 쓰는 구타페르카(gutta percha 구타페르카 나무의 유액을 건조시킨 수지)와 닮은 물질일 게 분명해─로 윤을 내서 사용했다고 해. 이런 천연 고무는 인디언 고무 혹은 트위스트 고무라고 불렸는데 균류의 일종임이 분명해. 내가 고서 수집 연구의 전문가가 아니라는 말을 다시는 하지 말기를.
방금 우리 밑에서 바다를 나아가던 작은 자기추진선 한 척에서 누군가가 물에 빠진 모양이야. 6000톤급 정도 되는데 사람이 너무 많이많이 타고 있어. 저렇게 작은 배에는 지나치게 승객을 많이 태우지 못하도록 금지해야만 하는데. 물론 그 사람은 다시 배에 오르지 못했고 그를 도와주려던 사람들도 이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지. 사랑하는 친구야, 우리가 저런 짓을 하는 인간은 존재해선 안 된다고 말하는 계몽된 시대를 살고 있음이 기쁘구나. 진정한 인간성이 관심을 기울이는 건 대중이야. 그건 그렇고, 인간성 하니까 말인데 우리가 그렇게 떠받드는 위긴스가 『사회적 조건』이나 그 후 글에서 말했던 관점이 동시대인들이 생각했던 것만큼 그리 독창적이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 펀디트(인도의 학자. 일반적인 권위자나 전문가를 지칭하기도 한다)가 가르쳐준 바에 따르면 거의 같은 생각이 거의 같은 방식으로 천 년쯤 전에 푸리에(Furrier)라는 아일랜드의 철학자에 의해 제기되었다고 해. 그 이름은 고양이 가죽이나 모피를 파는 가게를 운영한 데에서 기인했다고 하더군. 펀디트의 지식에는 한 치의 착오도 없음을 너도 알고 있겠지. 힌두인 아리에스 토틀(Aries Tottle)의 심오한 예측이 매일 증명되는 걸 보며 우리는 얼마나 놀라워하는지 몰라. “…… 그러므로 우리는 인류 전체 속에서 똑같은 사상이 한두 번도 몇 번도 아닌 거의 무한히 되풀이된다고 말해야 한다.”

4월 2일
오늘은 자기 커터(the magnetic cutter)에 대고 말을 해봤어. 떠다니는 전선의 중심부를 관리하고 기계지. 호스(Horse)가 처음으로 이런 종류의 전신 기술을 만들었을 때는 바다 위로 전선을 잇는 게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지만 이제 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장소에서도 가능함을 알고 있잖아? 그렇게 세상은 나아가는 거야. 템포라 무탄투르(Tempora mutantur 시대의 조류는 변한다, 우리도 그와 함께 변한다, 라는 뜻의 라틴어), 에트루리아인의 말을 인용하는 걸 양해해주길. 대서양 전신(the Atalantic telegraph) 없이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펀디트는 대서양(Atlantic)이 고대어의 형용사에서 비롯된 말이라더군─? 우리는 몇 분간 자기 커터에 대고 질문을 했는데, 아프리카에서 내전이 벌어졌다든가 유롭(Yurope)과 아이서(Ayesher) 양쪽에서 전염병이 창궐한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 들었지. 인류에 의해 그 위대한 빛을 철학 위에 비추기 전, 세상은 전쟁과 전염병을 재난이라고 여기며 익숙해져 있었다는 건 놀라운 일도 아니잖아? 결국 기도자들은 고대 사원에서 그러한 악(!)이 인류에게 찾아오지 않도록 빌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우리 조상들이 어떤 원리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그들은 일부의 희생이 인류 전체를 위해 얼마나 이득이 되는지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었으니까 말야!

4월 3일
열기구 꼭대기에 이르는 줄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주위 세상을 둘러보는 건 너무나도 즐거운 일이야. 너도 알겠지만 아래쪽 몸체에서는 그리 넓게 볼 수가 없어. 수직으로는 거의 볼 수가 없으니까. 대신 여기─내가 이 글을 쓰는 곳─ 탁 트인 베란다의 호화로운 쿠션 위에 앉으면 모든 방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 볼 수 있지. 지금 막 시야에 열기구 무리가 보여. 그들 모두 활기차 보이고 공기 속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로 가득 차 있지. 옐로인지 바이올렛인지 모르지만─펀디트라면 알 텐데─ 최초의 비행사로 여겨지는 사람은 적절한 기류를 만날 때까지 상승하거나 하강하기만 하면 대기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어. 동시대인들은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저 특이한 미치광이라고 여겼지. 왜냐하면 당시 철학자들(?)이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거든. 현명한 고대 학자들이 명백히 실현 가능한 일을 어째서 그렇게 외면했는지 나는 아직도 설명할 길이 없어. 하지만 어떤 시대든 과학자라 불리는 사람들에게는 기술의 진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었어. 물론 우리의 과학자들은 고대의 과학자들만큼 편협하진 않았지. 아, 이 문제에 대해 아주 기이한 이야기를 들려줄게. 형이상학자들이 진실에 이르는 길은 두 갈래밖에는 없다는 기묘한 공상을 하는 사람들을 설득하여 동의를 얻어낸 지 고작 천 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걸 아는지! 너는 이게 믿어지는지 모르겠어! 아주 오래 전, 시대의 어둠 속에 아리에스 토틀이라는 터키인─힌두인일 수도 있지만─ 철학자가 살고 있었어. 이 사람은 모든 연역법 혹은 선험적인 연구법으로 알려진 방식을 보급한 걸로 알려져 있지. 그는 공리 혹은 〈자명한 진리〉로 여겨지는 것에서 출발하여 〈논리적인〉 결과를 유도해내지. 그의 유명한 제자로는 뉴클리드(Neuclid)와 캔트(Cant)를 들 수 있어. 아무튼 아리에스 토틀은 〈에트릭(Ettrick)의 양치기〉라는 별명을 가진 호그(Hog)가 나타날 때까지는 이름을 날리고 있었어. 그는 전혀 다른 방식을 주장했는데 귀납법이라 불렀지. 그의 계획은 전적으로 감각에 의존했어. 그는 사실을 관찰과 분석, 분류를 거쳐 일반적인 자연법칙으로 이끌었지. 아리에스 토틀의 방식이 한 마디로 본질에 기초한다면 호그의 것은 현상에 기초하는 거야. 글쎄, 후자의 체계가 찬사를 받게 되면서 먼저 소개되었던 아리에스 토틀의 평판은 떨어졌지. 하지만 결국 그는 기반을 회복하고 더 근대적인 라이벌과 진실의 영역을 나눠가지게 된 거야. 학자들은 이제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방식과 베이컨적인 방식이 지식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여기고 있어. 〈베이컨적〉이라는 말은 곧 〈호그적〉이라는 말에 해당하는 더 그럴싸하고 위엄 있는 형용사야.
자, 친구야, 너에게 확신을 갖고 말하는데 나는 이 문제를 꽤 공정하게 표현하고 있어. 이런 척 봐도 불합리한 관념이 모든 지식─직관적인 통찰의 도약에 의해 거의 늘 진전되는─의 진보를 가로막고 있음을 너도 쉽게 알 수 있겠지. 고대의 아이디어는 느린 연구에만 한정시켰어. 특히 몇백 년이나 호그에 대해서만 열중하는 바람에 모든 생각이 사실상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 자신의 영혼에서 비롯된 진실은 누구도 입에 담지 못했지. 당대의 뇌가 굳은 학자들은 호그가 도달한 길만으로 생각했기에 진실이 진실임을 증명할 수 있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어. 그들은 심지어 결론을 내려고도 하지 않았지. “방법을 알려다오!” 그들은 소리쳤어. “방법을!” 방법을 조사한 결과 아리에스나 호그의 부류에 들지 않음을 알게 되면, 학자들은 더 볼 것도 없이 그 〈이론가〉를 바보라고 선언하고 그와 그의 진실에 대해서는 취급도 하지 않으려 했어.
이제는 그 어느 긴 세월 동안에도 그런 느린 시스템을 통해 막대한 양의 진실이 밝혀질 거란 생각은 받아들여지지 않아. 상상의 억압은 고대의 탐구 방식이 아무리 뛰어난 확실함이 있다고 해도 보상할 수 없는 죄악이기 때문이지. 주멘(Jurmains), 브린치(Vrinch), 잉글리치(Inglitch), 암리컨(Amriccans)─어쨌든 암리컨은 우리의 직계 조상이지만─의 오류는 경솔한 자들의 오류와 거의 같은 것인데, 물체를 눈에 가까이 가져갈수록 더 잘 볼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그들은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거야. 그들이 호그식으로 논증할 때 그들의 〈사실〉은 늘 사실을 뜻하진 않아. 사실일 거라는 가정과 분명히 그렇게 보이므로 사실이어야 한다는 확신이 없으면 그 결과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거든. 그들이 램(Ram)의 길을 따를 때 그들의 길은 양의 뿔(ram's horn 발음의 유사를 이용한 언어유희)처럼 곧지를 않았어. 따라서 그들에겐 결코 공리다운 공리가 없었지. 자기네 시대에서조차 이를 알지 못했으니 그들은 눈이 멀었음이 분명해. 왜냐하면 그들의 시대에서도 오랫동안 〈확증되었다〉고 여겨진 수많은 공리들이 부인되었거든. 예를 들어 “엑스 니힐로 니힐 피트(Ex nihilo nihil fit 무에서는 아무것도 생기지 않는다는 의미의 라틴어)” 즉 “물체는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움직일 수 없다”, “정반대의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어둠은 빛에서 나올 수 없다” ─이 모든 수많은 비슷한 명제들, 주저 없이 공리로 받아들여졌던 것들은 내가 말한 그 시대에 이미 지지받지 못했어. 그런 공리를 진리의 기초라고 믿어왔던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지! 하지만 그들이 떠받드는 논리가들의 입으로 그들의 공리의 무익함과 모호함을 드러내는 건 쉬운 일이야. 그 논리가들 중에서 누가 제일 믿을 만 했을까? 가만 있자! 가서 펀디트에게 물어보고 와야겠어…… 아, 여기에 있네! 약 천 년 전에 쓰였다가 최근 잉글리치로 번역된 책이 있어. 잉글리치는 암리컨의 기초가 된 언어야. 펀디트는 그 주제, 즉 논리에 대해서 다룬 가장 뛰어난 고대의 저작이라고 말했지. 저자─당대에 높이 평가받은─는 밀러(Miller) 혹은 밀(Mill)이라고 해. 기록에 따르면 그에게는 벤담(Bentham)이라는 연자매 말(mill-horse)이 있다고 하는군. 그런 것보다 내용을 보자!
아! 밀 씨는 이런 올바른 말을 했어. “상상력의 유무를 공리적 진실의 척도로 삼아선 안 된다.” 자명한 이치에 이의를 제기한 건 그의 감각이 근대적이었기 때문일까? 우리가 유일하게 궁금해야 하는 부분은 밀 씨가 명백한 것들조차도 암시할 필요가 있었던 걸까 라는 점이야. 여기까지는 좋지만 다른 글로 넘어가보자. 여기서 우리가 알아낸 것은? “모순된 말은 둘 다 진실일 수 없다. 그것들은 본질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여기서 밀 씨의 말은 예를 들어 나무는 나무이거나 나무가 아니어야 한다, 즉 동시에 나무이면서 나무가 아닐 수는 없다는 의미야. 아주 좋아. 하지만 나는 그에게 왜냐고 묻겠어. 그의 답은 이래─그리고 이 외의 답은 절대 없어─“왜냐하면 모순된 존재들이 양쪽 다 참임을 상상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그 자신이 보여주었듯 결코 답이 되지 못해. “상상력의 유무를 공리적 진실의 척도로 삼아선 안 된다”고 스스로 말했으니까 말이야.
지금 내가 이 고대인들에게 불평을 하는 이유는 그들의 논리가 그들 스스로 보였듯이 근거가 없고 가치가 없으며 공상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진리를 향한 모든 다른 길, 도달하는 다른 모든 방법을 어리석게도 금지하는 오만함 때문이야. 그들은 한없이 높이 솟아오르고 싶어 하는 영혼을 감히 두 가지 어리석은 길─하나는 느릿느릿 기어가고(creeping) 다른 하나는 꾸물꾸물 기어가는(crawling)─에만 국한했던 거야.
어쨌든 내 친구야, 고대의 학자들은 모든 진실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숭고한 진리를 두 가지 길 중에서 어느 쪽을 통해 도달해야 할지 고르느라 혼란스러워 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 중력의 원리 말이야. 뉴턴은 케플러에게 빚을 지고 있어. 케플러는 자신의 행성운동 법칙을 추측했을 뿐임을 인정했잖아. 이들 세 법칙은 그 위대한 잉글리치의 수학자를 모든 물리법칙의 근본이 된 원리로 이끌어주었지. 형이상학의 제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나가야 하는 길이라고나 할까. 케플러는 추측했지─다시 말해 상상했어. 그는 본질적으로 〈이론가─너무나 신성하지만 옛날에는 모욕적인 칭호였던 낱말이지만─〉였지. 암호 해독자가 보통 이상으로 어려운 암호를 풀 때 두 개의 길 중에서 어느 쪽을 고를지, 또한 샹폴리옹(Champollion 로제타석의 비문을 해독한 프랑스 학자)이 상형 문자를 해독하여 수많은 진실로 인류를 이끌었을 때 두 길 중 어느 쪽을 통했는지 늙고 눈먼 두더지들이 혼란스러워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네가 지루해 할 것 같으니 이 주제에 대해 한 마디만 더 하겠어. 이 편협한 자들이 진리에 이르는 길에 대해서만 끝없이 떠드느라 정작 거대한 도로라 할 수 있는 일관성을 놓쳤다고 생각지 않아? 완벽한 일관성이 신의 창조처럼 절대적인 진실임이 분명하다는 중요한 사실을 추론하는 데 실패했음이 참 이상하잖아! 이러한 명제를 공표한 이후로 우리가 얼마나 진보했는지! 연구는 그 두더지들의 손에서 벗어나 진실한 사상가들, 열정적인 상상력의 소유자들에게 주어졌어. 그들은 이론을 세웠지. 우리 선조들이 내 어깨 너머로 현재를 볼 수 있다면 내 말에 얼마나 많은 경멸의 고함을 질러댈지 너는 상상도 못할 걸? 이들은 이론을 세운다고 말했지. 그리고 그들의 이론은 간단하게 정정되고 정리되어 체계화되는 거야. 아주 조금씩 모순의 찌꺼기를 걸러내고 마침내 완전한 일관성으로 당연한 듯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왜냐하면 그건 하나의 일관성, 절대적이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리가 되었기 때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