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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가나 북스의 전자책 『로봇과 침대의 무게』 전문을 연재합니다.
* 서지정보 및 판매처 안내 : 로봇과 침대의 무게
* 공개 기간 : (무기한)

4
“이 침대는 너와 나만의 것으로 해두고 싶어.”
슌타로는 쑥 들어간 눈 속에서 힘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네.”
“여기만은 더럽히지 마.”
“맹세할게요.”
“그래. 자, 이 로봇을 소중히 대해줘. 나라고 생각해.”
“무척 정교하군요.”
피부의 느낌, 체온, 그 훌륭한 기능, 미량의 전기에 의한 매혹적인 자극. 그건 기계에 의해 느끼는, 기계에 의해서만 느낄 수 있는 여성에 있어서도 놀라운 느낌이었다.
“나는 기계기사지만…… 이 로봇에 대해서만은 생리학 연구를 더해왔어.”
“그런 듯하네요.”
“그와 동시에 나는 영혼의 신비를 믿을 수 있게 되었어.”
“영혼?”
“로봇을 사랑하지 않게 되면 저 녀석은 너에게 복수할 거야.”
“저 로봇이……?”
“그래.”
“어떤 복수?”
“죽일 거야.”
아내는 입을 다물었으나, 마음속에서는 이 집요한 사랑에 증오와 경멸을 느꼈다.
“그래요?”
라고 한 마디만 가볍게 했다.
“뭐 이삼 일밖에는 가지 않겠지만…… 나는 내 정신을 담은 3호 로봇 이외에 너를 누구에게도 건네주고 싶지 않은 거다.”
“또 시작했군요. 잘 알고 있어요.”
“내게도 잘 알고 있으니까 몇 번이나 말하는 거야. 너는 이미 독신으로 살 수 없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로봇 씨를 사랑하면 된다 이거죠?”
창문은 반쯤 닫히고 커튼이 닫혀 있다. 벽의 직물, 호두나무 마루 위의 중국 융단, 큰 스탠드, 하얀 대리석 경대, 그런 것들이 전부 음울하게 침묵하고 있었다.
아내는 ‘누군가 문병이라도 오지 않을까’ 라고 문득 생각하거나 로봇의 교묘한 그리고 인간과는 다른 이상한 감각을 회상하거나 했다.
“로봇의 영혼은…… 있어.”
슌타로는 중얼거렸다.
“질투해요?”
“로봇은 분부 대로 어김없이 하지 않으면 파괴돼.”
“그래요?”
아내는 입으로만 대답했다. 그리고 로봇과 새로운 애인과의 비교를 머릿속에서 불타버릴 정도로 생각했다.
“이미 4시예요. 약 먹을 시간이에요.”
아내는 손목시계를 보고 ‘이제 올 시간인데’ 라고 생각했다.
“침입자를 막아주는 로봇이 스스로를 부수지 않도록 주의해줘.”
“네.”
그렇게 대답했을 때 간호사가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5
“정말 정교하군. 조금도 인간과 다를 바가 없지 않나?”
장례식에 온 사람들은 로봇의 손을 쥐거나 볼을 쓰다듬거나 하면서 칭찬을 했다.
“칭찬해야 할지, 욕을 해야 할지…… 종교가 사람을 구한 쪽이 많을까, 괴롭히고 현혹한 쪽이 많을까를 모르는 것처럼 과학의 발달도 공과 과를 알 수가 없어.”
“로봇 때문에 분명 사람의 직업을 빼앗길 거예요.”
사람들은 벽에 늘어선 의자에 앉아서 담배 연기를 방 안으로 뿜어내면서 이야기소리를 가득 퍼뜨렸다.
“참 나, 과학상의 하나의 중대발견은 사회, 경제의 근간을 뒤흔드니까. 레이온(인조 견사)의 발달이 천연 실을 압박하여 천연 실의 생산원가가 낮아지니 면에게 영향을 줘서, 그 레이온이 가까운 장래에 인조양모가 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거야, 잘 된 일이지.”
“미국에서는 휴대용 로봇이 완성되었다는 듯해요.”
“저건가?”
“1척 4방 정도인데 능률은 이 로봇과 같은 정도일까. 작은 바퀴가 달려서 합성 경금속 기둥을 연결하면 짐을 싣고 달려도 가고, 장소를 정하고 거리 미터를 재어두면 일정 모서리에서는 커브도 트는 모양이야. 잰 거리가 있는 곳에서 왼쪽도 오른쪽도 갈 수 있어. 그러니 안전하게 정확하게 쓸 수 있단 말이지.”
“상자가 알아서 걸어가는 건 좋네요.”
“근대 풍경의 하나지. 로봇 전용 도로 같은 것도 나올 테고, 인간이 파고들면 도약할 수 있을 거야.”
“그런 시대가 되었군요.”
“일본에서도 전기자동차 택시는 대개 로봇으로 이루어진 모양이던데요.”
“나는 타봤어. 50전을 넣으니 문이 열리고 말야……. 불편한 건 모르는 곳에 갈 수가 없다는 점 뿐인데 전기감촉기가 생긴 이후로 절대 충돌의 우려는 없지.”
“로봇을 정부사업으로 해서 모든 생산은 이 녀석들에게 시키는 거죠. 그러니 사람은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분배만을 받는 거예요.”
“그렇게 될까? 그런 식으로는 실업자가 늘어날 뿐이야.”
“그런데 자네.”
한 사람이 목소리를 낮췄다.
“이 로봇은 말야, …………도 갖고 있다더군.”
“그런가요?”
“그럼, …………를 하나 만들어서 팔아볼까?”
“자네 같이 실연한 사람에겐 좋겠지. 로봇이라면 반역을 시도하지 않을 테니까.”
“그 대신 긴자(銀座)에서 함께 걸으면 어느 놈이든 전부 인기 여배우와 닮은 얼굴을 하고 있어 진저리가 날 걸.”
“나는 새로운 형태의 미인을 만들 거예요. 한쪽 눈이 크고 다른 쪽은 가늘다든지, 앞에도 뒤에도 얼굴이 있다든지…….”
“어쨌든 인간 여자라면 다들 똑같아서 재미없어지니, 코 세 개 있는 놈을 데리고 다니라고.”
“로봇이라면 마누라도 질투하지 않겠지?”
“대신에 마누라도 로봇 남자를 사랑할 테니, 드디어 인류파멸기가 오겠네.”
“강제 명령으로 인공수태라도 시키면 되지.”
“결국 나 같이 모범적인 XX보유자의 때가 오겠군. 관보(官報)에서 인선 발표가 나면 여자가 몰려들 걸.”
“이제 그만둡시다. 슌타로가 지하에서 재채기라도 할 걸.”
“하지만 급격하게 변화되는구만. 사회도, 사람도…… 무서운 과학의 힘이야.”

6
“당신은 저보다도 로봇 쪽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네요.”
“개를 사랑하듯이?”
“질투는 아닙니다만…… 그런 멍청한 감정은 없지만 로봇을 사랑한다는 건 결국 저에게 자격이 없다는 걸 말하는 거니까요. 일종의 모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내가 이 파이프를 사랑하는 건?”
“파이프는 달라요.”
“그렇게 말하자면 그래. 사랑하는 형식과 감정이 바뀐 장난감이지만 내겐 하나가 늘어난 셈이니까. 그러고 보면……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분명 사랑스러워. 내 의사가 그대로 통하거든. 그러니 절반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거지. 자신이 양성(兩性)을 갖춘 것 같은 묘한 감각과 감정은 분명 있을 거야. 그리고…… 감각은 자극적일수록 기쁜 게 당연하잖아? 난 아무래도 저 로봇 씨의, 금속의 향기가 좋아졌나봐. 그 차갑고, 간지러운 감각이……”
체취에 가까운 짐승 같은 향수 냄새가 떠나고 있다. 슌타로의 아내는 로봇의 가슴에 그린 것과 같은 꽃의 디자인을 파랗고 붉고 보라색으로 가슴에 그려놓았고, 드러난 다리에는 피부 위에 선명한 도료로 몇 줄이나 되는 선이 그려져 있다. 그것은 다리를 길게 보임과 동시에 매혹적인 육체 장식이기도 했다.
“그리고 말야, 인간의 힘이란 한계가 있지만 로봇 씨는 무한해. 여성도 점점 그 힘에 무뎌져 가면서 남성 따위는 시시해졌지. 그래도 인간에게 좋은 점이 있을까?”
“그럼 저와의 관계는……?”
“…….”
“2주 전에 한 약속이라서, 저는……”
“기억하고 있어. 5시지?”
“거기다……”
“5시 20분이 됐잖아? 로봇 씨라면 5시 정각이나, 1에서 2초 정도 지났을 때 노크를 할 거야.”
“연애마저 로봇이 이기게 되었으니 인류의 최후군요.”
“응. 생사여부는 여성의 손으로 돌아왔다는 얘기야.”
“그런 듯합니다.”
남자는 일어났다. 그리고 문을 열고 옆방으로 들어갔다. 그 오른쪽에는 새로운 레이온 색채를 띤 일본식 파자마를 입은 로봇이 미소를 짓고 있다. 남자는 가만히 보더니 말했다.
“로봇놈.”
“네.”
로봇이 대답했다.
“부인, 로봇과도 말이 통하네요.”
아내는 얇은 옷 아래로 채색을 한 몸을 일으켜 걸으면서 말했다.
“로봇이지만, 통하는 거지.”
“너는 부인을 사랑하고 있나?”
“네.”
남자는 로봇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내가 말했다.
“사랑이라는 말도 알아들어.”
“그런 단어는 답변을 할 수 있는 거군요.”
“간단한 연애 용어만은.”
“걷어차버릴까?”
로봇은 입을 다물고 있다. 남자는 로봇이 답변도 하지 않고 미소짓는 걸 보니 자신이 걷어차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불쾌하군요. 혼이 있는 것 같아.”
아내는 침대 커튼을 열었다. 그리곤 걸터앉았다.
“여기서 이야기를 하지?”
그렇게 말하고 의자를 침대 옆에 두더니 쿠션 위에 팔꿈치를 찔렀다.

7
“로봇놈, 보자 보자 하니까!”
남자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의자를 커튼 밖으로 던진 후 커튼을 쳤다.
슌타로의 아내는 큰 쿠션 위에 몸을 기댄 채로 한쪽 다리를 침대 밖으로 늘어뜨렸다. 남자는 침대 옆에 걸터앉았다.
“저는……!”
정열적인 눈으로 아내를 보았다. 아내는 머리를 쿠션에 묻고 눈을 가늘게 떴다.
“왜애?”
그건 암고양이와 같은 교태와 부드러움을 담은 목소리였다. 남자가 물었다.
“로봇은 입맞춤을 할 수 있습니까?”
“한 가지 방식으로만.”
“그럼 그건 인간 쪽이 유리하군요.”
“맞아.”
남자는 아내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침대 위에 깊이 앉았다. 그리고 아내 쪽으로 손을 돌렸다.
“안 돼.”
아내가 머리를 흔들었다. 그건 거절의 외관을 가진, 유혹적인 교태의 일종에 불과했다.
로봇은 침대에서 신호가 옴과 동시에 곧바로, 슌타로의 계산 그대로 정확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커튼을 머리와 몸으로 밀어 헤치며 들어왔다.
“로봇 씨, 오면 안 돼!”
아내가 외쳤다. 남자도 “바보야!” 라고 외쳤다. 로봇은 양손을 활짝 펼쳤다.
“어쩌면 좋아?”
아내가 외쳤을 때 로봇은 침대 전체로 두 사람을 끌어안으려는 듯이 손을 크게 펼쳤고, 두 사람이 기괴한 로봇의 행위에 기분 나쁨을 느끼고 골수에서부터 솟아난 공포로 신체가 가차워진 순간 그 부드러운 그러나 억센 손으로 두 사람을 부둥켜 안아버렸다.
“안 돼, 놔 줘!”
아내는 로봇의 손에서 팔을 빼려고 했다. 남자는 어깨뼈 위에서 안겼고, 오른손으로 침대 모서리를 쥐면서 전신의 힘으로 빠져 나가려 발버둥치고 있었다. 아내는 다리로 하늘을 차거나 로봇을 차거나 얼굴을 찌푸리며 공포에 찬 눈으로 말했다.
“누구든, 누구든, 와줘요!”
절규했다. 로봇은 서서히 정확하게 두 사람을 졸라갔다. ……………………, 두 사람의 뼈가 아팠다.
“아악! 아파!”
아내가 외쳤다. 그 순간 로봇이 말했다.
“침대를 더럽혔기 때문이야.”
그 말은 두 사람에게 슌타로와 꼭 닮은 목소리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은 머릿속에서 찔러대는 듯한, 전신의 뼛속에 스며드는 듯한 격통을 느꼈다. 두 사람은 비명을 질렀다.
“로봇의 영혼이다.”
로봇이 대답했다. 두 사람의 다리는 고통스럽게 구부러졌다. 떨리고 손가락은 꺾이고 구부러졌다. 얼굴은 새빨개져서 안구 속에서 피가 번져 나왔다. 조금 지나자 아내의 콧구멍에서 피가 흘러나왔고 눈이 튀어나올 듯 커지며 돌출되었다. 남자도 희미하게 신음을 낼 뿐이었다.
사람들이 달려왔을 때는 커튼이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부인?”
하인이 물었으나 그대로 잠시 둘이서 눈을 마주보고 있었다. 똑똑 액체가 방울져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더 지나자 덜컥 하고 기계가 멈추는 듯한 소리가 났다. 아내의 다리가 화장하고 채색된 채 색이 변하여 커튼 아래로 축 늘어져 있는 걸 보고 하인들이 커튼을 열었을 때, 아내는 눈에서도 입에서도 피를 분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로봇은 두 사람 위에 엎어져 있었다.


(1931 新青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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