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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연재

전리층의 유령 (2/2)

pilza2 2013. 1. 14. 00:00
* 페가나 북스의 전자책 『로봇과 침대의 무게』 전문을 연재합니다.
* 서지정보 및 판매처 안내 : 로봇과 침대의 무게
* 공개 기간 : (무기한)

그리하여 다음날 오후 그 과학자가 찾아왔다. 이름은 그레이드라고 했다. 니첸스 씨는 직접 역까지 마중을 나가 열렬히 환영했다. 그레이드 씨의 모습은 성주의 가슴속에서 마치 전인미답의 땅에서 헤매던 사람이 구조대를 봤을 때와 같은 기분을 불러일으켰다. 그래도 오랫동안 머물던 수상한 존재가 그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려 한다는 말하기 어려운 공포에 대해서는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 대신 방을 하나씩 안내하며 돌아다니고, 그림과 가구를 보여주고, 중앙난방 장치의 설명을 하며 이래저래 하는 사이 저녁 시간이 되었다. 니첸스 씨는 그레이드 씨에게 샴페인과 화이트와인을 대접하고 그 후엔 천장이 높은 거실로 옮겨 의자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며 이번엔 커피와 리큐르를 거듭 권했다. 과학자가 회의심이 왕성한 상태로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것도 있고 슬슬 손님이 와인과 리큐르에 취할 무렵이 되었다고 본 니첸스 씨는 이렇게 의자에 앉아 있으면 이 거실에 옛날부터 살고 있는, 지금은 오래된 벽 주위에서 출몰하는 존재들에 대해 정원사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드디어 꺼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골 인간은 그런 것을 믿는다는 한 가지 예로 재미있고 이상한 이야기를 시작한 건 좋은데, 이야기를 계속 하는 동안 점점 이상하고 재미있는 정도에만 그치지 않게 되어, 종국에는 스미서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실제 고장의 뉴스인 듯 말하는 등 스스로도 이상을 알아차리지 못한 듯한 상태가 되기에 이르렀다. 이리하여 스미서의 이야기에서 니첸스 씨는 목사와의 대화로 옮겨갔다. 그레이드 씨는 변함없이 입을 다문 채로 성주와 같이 담배를 천천히 피우면서 등을 기대고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과학자의 침묵에다가 등 떠밀린 듯이 하면서도 꽤 마신 샴페인과 화이트와인 탓으로 마음이 대담해진 것도 한 몫 하여, 니첸스 씨는 목사에게 실망했다고까지 말해버렸다. 그 말을 들은 손님이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자 마침내 니첸스 씨는 이렇게 말했다.
“과학의 힘으로 어떻게 안 될까?”
“되지요.”
그레이드 씨는 대답했다.
“목사가 할 수 있는 정도라면 과학에게는 간단한 일이에요. 퇴치하고 싶은 상대는 무엇이죠?”
그때 니첸스 씨는 벽의 맨 위쪽에 있는 대들보 근처, 둘의 담배 연기가 천천히 피어오르는 방향 끝에 분명히는 보이지 않지만 상상력의 산물 치고는 너무나도 선명한, 스미서가 잘 아는 무리가 스며든 모습이 보이는 듯한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밝혔다. 목사님은 퇴마를 할 마음이 들지 않는 것 같았다. 과학은 무엇을 해줄까?
“과학에게는 간단한 일이에요.”
그레이드 씨는 되풀이해 말했다.
“실은 약간의 장치가 있어서요, 아직 팔지는 않은 거지만 그걸로 대기 중의 이물질을 확실하게 제거할 수가 있지요.”
“진공으로 만든다는 것 말인가?”
“아뇨, 그런 게 아니에요. 공기 그 자체를 제거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짓을 하면 사람이 살 수가 없으니까요. 공기를 순화시킨다고 해야 할까. 수분이나 냄새나 먼지, 즉 뭐든지 미세한 입자에 이르기까지 확실히 걸러준다고요.”
“유령도?”
니첸스 씨는 조심스레 덧붙였다.
“뭐든지요. 대들보 사이에 무언가 보이는지는 몰라요.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무언가 있다면 제거할 수 있어요. 이 장치로 완전히 텅 비게 만들 수 있어요. 공기를 제외하고. 물론 연기도 사라지죠.”
“어느 정도 유지되겠나?”
“신경이 쓰일 때마다 스위치를 누르면 돼요. 무선전신기 같은 거니까요. 확 전파가 나와서 한 방에 깨끗해지죠.”
“그래도 유령이니까. 그런 게 있다고 할 때 이야기지만. 아니, 과학으로 유령을 어떻게 할 수 있다고는 생각도 안 해봤다네.”
그 한 마디에 그레이드 씨는 흥분했다. 과학과 영적인 것 사이에는 옛날부터 대항의식 비슷한 게 존재하고 있었다.
“가능한 게 당연하잖아요.”
그레이드 씨는 대답했다.
“말 안 해도 당연하죠. 유령이든 뭐든 똑같이 제거할 수 있어요. 유령이 없으면 공기는 텅 빈 채 있을 거예요. 만약 없다면 제대로 쫓아낼 수 있고. 아시겠습니까? 요새는 큰소리를 내지 않고도 도쿄까지라도 소리를 보낼 수 있다고요. 그것도 걸리는 시간은 겨우 2만분의 1초. 음성을 그런 식으로 보내는 게 가능한데 유령이라고 쫓아내지 못할 리가 있나요?”
베네틱틴(Benedictine 프랑스의 베네딕투스 수도원에서 약초 등으로 만든 리큐르로 약용으로도 쓰였다)을 또 한 모금 마시고 나서 그레이드 씨는 말을 이었다.
“현재는 원소를 변환시킨다고요. 고체를 어떤 식으로 처리할 수 있을까가 증명이 되었으니 유령 따위를 어쩌지도 못한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군요. 물질을 극복한 것처럼 유령도 극복할 수 있지요!”
마시는 건 도시에서 손에 넣을 수 있는 최고급의 베네딕틴으로 니첸스 씨는 와인글라스에 담아서 내놓으라고 집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무엇보다 신개발 장치니까요.”
그레이드 씨는 말을 이었다.
“보통은 아직 팔지 않죠. 하지만 1대 정도는 드리죠. 조작은 간단합니다. 손잡이를 돌리면 전파가 나와요. 거리는 몇 야드 정도니까 딱 저기 천장 정도까지겠네요. 공기 중의 것을 전부 소거해 깨끗하게 만들어주지요. 전부 다. 내일이라도 보내드려야겠군요.”
“귀찮게 해서 미안하네.”
니첸스 씨가 말했다.
“무슨 소리, 신경 쓰지 마세요. 도움이 되어 기쁜데요. 무언가 있다면 이 장치가 반드시 전부 쫓아내줄 거요.”
“어느 정도까지일까?”
“이 신제품의 위력이라면 아주 멀리까지 닿을 걸요. 일단 대기권 위쪽까지는 틀림없죠. 실험도 끝났어요.”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침실로 걸어갔다. 니첸스 씨는 푹 잤다. 적어도 과거의 힘에 충분히 대항할 수 있다는 확신을 겨우 갖게 되었던 덕분이리라. 아침이 밝자 그레이드 씨는 런던으로 돌아갔고 오후에는 수상한 상자가 역에 도착하여 차로 성까지 운반한 후 니첸스 씨는 얼른 상자를 열고 사용설명서를 읽었다.
그날 밤 니첸스 씨는 혼자서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천장이 높은 거실에서 막 가져온 이상한 장치를 놓고 의자에 앉았다. 이제 남은 건 손잡이를 돌리는 것뿐이다. 상상력을 짓눌러버리는 그 무리를 자신의 주위는 물론 높은 곳의 대들보 주위에 이르는 공기 중에서 깨끗하게 제거할 수 있는 거다. 바로 옆에 과학이라는 의지할 만한 조력자가 있다고 생각하니 충분히 마음이 편해져서, 과거가 오래된 벽에 매달려 있다는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드디어 상상력이 점점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니 그림자와 코니스(벽면에 수평이 되도록 하여 띠 모양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부분) 주위에 스미서가 곧잘 말하고 목사가 믿던 것들이 움직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니첸스 씨는 안락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놓여 있던 장치의 오른쪽 손잡이로 손을 뻗었다. 손잡이를 돌렸다. 그러자 확 사라졌다. 곧바로 느껴졌다. 오래된 벽에 둘러싸인 천장이 높은 새로운 거실의 공기 중에 움직이던 존재는 아무것도 없었다. 누군가에게 쫓기던 사람이 이제 아무도 쫓아오지 않음을 아는 것처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는 담배연기에 섞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 안락의자에 앉아 만족스레 몸을 맡기고 있다가 마침내 침실로 물러났다.
그날 밤에 대하여 니첸스 씨는 기회 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말을 하고 들었다. 어느새 잠이 들었던가, 아니 슬슬 잠들었던가. 그 부분만은 뚜렷하지 않고 이야기의 내용 자체도 뚜렷하지 않다. 그에게 있어서는 이야기할 게 너무 많아서 수많은 클럽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여러 가지로 변해갔다. 즉 이런 듯하다. 니첸스 씨의 성벽에 달라붙어 있는 모든 시대의 유령이 그 밤 한꺼번에 침실에 나타났다. 그것뿐 아니라 유령들은 그의 설명에 의하면 그 성이 지어지기 훨씬 전 시대부터, 훨씬 먼 나라에서도 왔음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그 무서운 하룻밤을 둘러싸고 이래저래 다른 이야기를 하는 니첸스 씨를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수천수만의 영혼이 북적거렸고, 모두 그를 향해 소리를 지르거나 얼굴을 찌푸리거나 좌우간 유령이 할 만한 여러 가지 짓을 해보였던 데다가, 박쥐랑 닮은 끽끽거리는 소리로 네 탓으로 과거의 평안이 어지럽혀졌다고 불만을 토해내었다고 한다. 거기다 원래 고성에 머물러 있던 올빼미와 까마귀까지 나타나 이 녀석이 성의 평화를 깨트렸다고 시끄럽게 울어대는 결과가 됐다고 한다. 덤으로 묘한 작업복을 입은 마을사람들이며, 옛날 교회 목사며, 설명할 수도 없을 놈들까지 몰려들어 왔다고 한다. 한번은 도망치려고 했었으나 엄청난 세력으로 몰려든 집단에게 밀려 침대로 날아가 둥지를 찔리자 달려드는 벌떼처럼 유령들이 북적거리는 바람에 침대에 파묻혀 있는 쪽이 훨씬 낫다고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고 한다. 고작 잠을 못 잘 정도로 소란스러운 수준이 아니라고 니첸스 씨는 말한다. 그 중의 한 명은 틀림없이 엘리자베스 1세의 유령이었다고 하며, 급기야는 여왕 폐하까지도 나타난 적이 있다고 한다. 헨리 8세의 모습도 있는 것 같지만 뭔가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도 했다는 듯이(어떤 일인지는 짐작도 가지 않지만) 엄청나게 날카로운 눈빛으로 이쪽을 노려보다가 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성의 역대 성주까지 하인과 병사를 이끌고 한꺼번에 밀어닥쳐서 여기서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꾸짖는 듯한 얼굴로 말똥말똥 니첸스 씨를 바라봤다던가. 그 일행을 쫓아내는 방법은 없었다. 문 아래에서는 물론이고 가장자리와 중앙 틈새에서 흘러들어온다. 연돌에서 내려오고, 오크 마룻바닥의 나뭇결에서도 올라오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성이 지어지고 800년 사이에 한 발자국이라도 밟아본 적이 있는 녀석이 전부 있다. 덤으로 마호메트와 고대 로마 병사는 말할 것도 없고 쿠빌라이 칸과 꼭 닮은 얼굴까지 보였다고 한다. 그 말은 이 성과 무언가 관련이 있는 자의 유령만은 아닌 듯하다. 니첸스 씨는 시트와 이불을 얼굴부터 뒤집어썼다. 그런데 이불 너머에서 귀까지 닿는 수런거리는 소리의 상태를 보니 유령들은 점점 옆으로 몰려들고 있는 듯했고, 내버려두면 침대에까지 기어들어올 것 같은 기세였다. 그래서 그는 다시 일어나 유령들을 돌아보았다. 일행은 틈도 없고 옹이구멍도 없이 연기나 요리의 냄새라도 되지 않는 한 비집고 들어올 틈도 없을 온갖 장소에서 점점점점 몰려들고 있다. 새카만 실내가 유령 때문에 잿빛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던 중 겨우 니첸스 씨에게도 이놈들은 나를 해칠 수 없구나, 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 점의 애정도 없는 얼굴이 바로 코앞까지 닿을 듯 다가오는 건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니라고, 그 신기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을 향해 그는 절절이 하소연했다. 밤이 그만큼 길게 느껴졌던 적은 없는 것 같았다. 마침내 겨우 커튼 틈으로 새벽의 빛이 젖어들며 유령들을 비추자(라고 해도 그 잿빛이 밝은 색으로 변하는 것뿐이었으나) 일단 그 고마운 여명이 천천히 강해지면서 수상한 모습은 서서히 옅어져 갔다. 이 이야기가 되풀이된 런던의 클럽은 한두 곳이 아니지만 납득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장 니첸스 씨는 타인을 납득시키지 못한다고 해도 적어도 자신만은 일의 진상을 밝혀내리라 결심하여 다음날 이른 아침 그레이드 씨에게 전화를 걸고 곧바로 와줄 수 없겠냐고 울며 부탁했다. 저녁에 그레이드 씨가 도착하자 우선 두 사람은 현재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 과학자는 바로 짐작이 갔으나,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라 자신의 잘못을 니첸스 씨에게 깊이 사과했다.
“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과학자는 설명했다.
“효과가 있었음은 틀림없으나 너무 강했던 거예요.”
“그게 효과가 있었던 거라고?”
니첸스 씨는 목소리를 높였다.
“농담 하나! 유령 따윈 하나도 본 적이 없었어.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을 뿐이라고. 그런데 어젯밤엔 침실에 유령이 와글거려서 쥐 한 마리 들어갈 틈도 없을 정도였어. 잔뜩 몰려들어서 잿빛 구름 같았단 말이네!”
“그 말을 듣고서 확실히 알았어요. 어째서 그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정말로 미안합니다. 즉 이렇게 된 거예요. 제가 가진 장치는 그 녀석들을 전부 대기권 위쪽까지 쫓아내었다, 이건 처음에 설명한 그대롭니다.”
“그런데 어째서 전부 되돌아 온 건가?”
니첸스 씨가 물었다.
“그것도 전보다 훨씬 많아졌단 말야.”
“바로 그거예요. 말했잖아요? 무선전신과 비슷한 거라고. 즉 그건 유령을 전부 날려버렸어요. 무선전신으로 소리를 날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래서?”
“그래서 말이죠, 그래, 전리층(원문은 헤비사이드 층the Heaviside Layer. 지표면에서 90에서 120㎞ 높이의 구역으로 대기분자가 이온화된 영역이다)에 부딪친 거예요.”
그레이드 씨가 대답했다.
“전리층? 그게 뭔데?”
“무선전신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건데. 사과하고 싶은 부분은 거기예요. 그걸 생각에 넣지 못했던 거죠.”
“어째선가?”
“그건 온갖 것을 반사시키죠. 그걸 생각 못한 제가 바보입니다. 전리층이 없으면 무선전신기를 써도 아무도 들을 수가 없거든요. 무선전신소에서 발신한 전파는 모두 이 전리층에 부딪쳐서 반사되죠. 물론 유령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건 쫓아버린다고 설명했지요? 그 장치는 설명대로 확실히 쫓아내었어요. 하지만 제가 전리층에 대해 완전히 잊고 있었던 거예요. 정말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전부 되돌아오는 것도 당연하지요. 필시 엄청난 꼴을 겪었겠죠.”
“그렇게 많을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하지만 생각해봐요, 그런 녀석들은 쉴 새 없이 늘어날 걸요.”
그레이드 씨가 대답했다.
“제가 빌려준 장치는 정말로 강력하니까 유령이란 유령을 뿌리 뽑아 쫓아내어버렸겠죠. 운이 나쁘게 그게 그대로 되돌아오게 된 거예요.”
“하지만 마호메트가 있었는데. 아니 마호메트와 꼭 닮은 놈이. 거기다 고대 로마 병사도 있었지. 왜 그런 놈까지 여기에 나타난 건가?”
그레이드 씨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말이죠.”
조금 후에 입을 열었다.
“그 장치에 쓴 전자파가 지나치게 강했던 걸지도 몰라요. 정말 죄송합니다. 전자파가 전리층을 휘저어서 거기서 쫓아내어진 녀석들과 함께 이런저런 놈들을 끌고 되돌아오게 된 것임이 분명해요.”
“이런저런 것들?”
니첸스 씨가 물었다.
“가령 마호메트라든지요. 모두 거기에 있는 겁니다. 밀턴을 읽은 적 있나요?”
“『실낙원』이라면 읽었는데.”
“그거예요, 그거.”
“밀턴이 전리층에 대해서 써놓았단 말인가?”
“그런 낱말은 쓰지 않았죠.”
그레이드 씨가 대답했다.
“하지만 분명히 나오고 있어요. 림보(Limbo 기독교에서 천국과 지옥의 사이에 있다고 말하는 장소)라고 말이에요. 우주의 안쪽에 있는 황폐한 장소인데 그게 딱 전리층이 있는 위치라서, 허영심에 물든 영혼이 어슬렁거리고 있지요. 그 장치가 방출한 전자파가 너무 강한 바람에 그곳을 뒤집어버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시 한 번 사과드릴게요. 그 탓에 원래 있던 유령까지 휘저어졌고, 그 녀석들이 성에서 쫓겨난 유령들과 함께 합쳐져서 여기로 모이게 된 것임이 분명해요. 성의 유령 놈들이 돌아오는 도중에 전부 끌고 들어온 거겠죠. 정말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사과는 이제 됐네. 그것보다 이제부터 어쩌면 좋겠나? 또 그런 밤을 보내고 싶진 않아. 참을 수가 없어. 일단 조금이라도 자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긁어 부스럼 만들면 안 되니까…….”
“내버려두란 말인가?”
니첸스 씨는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래요. 나쁜 짓을 한 건 아니니까요.”
그레이드 씨가 대답했다.
“당신은 그 녀석들이 있는 걸 눈치 챈 것뿐이에요. 그것도 상대방은 당신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았죠. 그러니 내버려두면 돼요. 나의 전자파로 깨어난 일행이 하룻밤 돌아다닌 게 틀림없어요. 벌집에 화약을 넣으면 죽지 않은 놈들이 밤새 시끄럽게 날아다니는 것처럼 말이죠.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침실에 벌집이 있는데 몇 년 동안 매일 밤 푹 잤던 사람도 있어요. 벌 쪽도 아무런 나쁜 짓을 하지 않았죠. 그러니 손을 대는 짓은 그만하죠. 제가 조언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에요.”
저녁을 함께 먹은 두 사람은 천장이 높은 거실로 돌아와 쉬었다. 원래 그레이드 씨가 시키는 대로 한 탓에 인생 최악의 하룻밤을 보내는 꼴이 된 니첸스 씨였으나 이번에도 그레이드 씨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알았어, 내버려두겠네.”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그러는 동안에 장 니첸스 씨는 돌연 거리의 소음과 친구들과의 환담을 나누던 클럽이, 런던이, 그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한 가지 약속했으면 하는데.”
그는 그레이드 씨에게 말했다.
“뭘요?”
“약속해주게. 이 일은 누구에게도, 한 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아, 알았어요.”
그레이드 씨가 말했다.
“그래도 아쉽군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상대가 한둘은 있는데. 너무나 흥미로운 이야기니까요.”
“아니, 그저 2~3주만 참으면 돼.”
니첸스 씨가 말했다.
“약속해줄 수 있겠나?”
“물론이죠.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하지만 어째서죠?”
“이곳을 팔아버릴 생각이라네.”


(1955, Magazine of Fantasy and Science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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