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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가나 북스의 전자책 『경이의 서』 일부를 연재합니다.
* 서지정보 및 판매처 안내 : http://pegana.tistory.com/141


통과할 수 없는 곳을 어떻게 통과하냐고? 그의 계획은 이랬다. 농민들의 기도문을 통해 알 수 있듯 그곳에는 죽음에 유의해야 할 가치가 있는 용이 한 마리 살고 있다. 수많은 처녀들을 잔인하게 죽였음은 물론이고 농작물에도 피해를 끼쳐왔다. 놈은 대지를 황폐하게 만들었고 공국의 재난이 되었다.
알더릭은 우선 용에 맞서기로 결심했다. 창을 들고 말에 타 용을 만날 때까지 달렸다. 용은 입에서 짙은 연기를 뿜으며 그의 앞에 나타났다. 이에 맞서 알더릭은 소리쳤다.
“사악한 용이 참된 기사를 쓰러뜨린 적이 있었는가?”
용은 이제껏 그런 적이 없었음을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떨구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사실은 피로 배가 가득 찼기 때문이었다.
기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가 처녀의 피를 다시 맛보고 싶다면 이몸의 충실한 애마가 될지어다. 이를 거부한다면 그대 종족의 최후를 전하는 수많은 음유시인의 이야기가 이 창을 통해 그대의 몸에 떨어질 것이니라.”
그러자 용은 탐욕스러운 입을 벌리지도 않았고 불을 토하며 기사에게 달려들지도 않았다. 그런 짓을 했다가 닥칠 자신의 운명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부여된 임무를 이해하고는 충실한 말이 될 것임을 기사에게 맹세했다.
이렇게 하여 용의 등에 올라탄 알더릭은 〈통과할 수 없는 숲〉 위로 지나갈 수 있었다. 경이의 아이들인 광대한 거목들 위로 날아갔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기묘한 계획을 짜두었다. 이전까지 수많은 이들이 저지른 잘못을 피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이상의 계획이었다. 그는 대장장이에게 명해 곡괭이 한 자루를 만들도록 했다.
한편 알더릭의 모험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많은 이들이 기뻐했다. 그가 주의 깊은 사람이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었으며 성공을 거둔다면 온 세상을 부유하게 만들어줄 거라고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축하해줄 생각에 도시 사람들은 자기 손을 비볐다. 알더릭이 살던 나라에선 모든 이들이 기쁨에 겨워했으니 예외가 있다면 빌려준 돈을 다 갚을 거란 두려움에 사로잡힌 고리대금업자밖에 없었다. 보물을 빼앗긴 기블린은 높게 지은 다리를 끊어버리고 그들과 세상 사이를 잇는 황금 사슬을 끊고 탑째 달로 떠나버릴 거라는 기대로 기뻐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기블린이 원래 달에서 살다가 여기로 온 거라고 믿고 있었다. 모든 이들이 기블린의 보물을 탐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했다.
그렇기에 알더릭이 용에 올라탄 날에는 벌써 승리자라도 된 것처럼 모든 이들이 기뻐했다. 그들을 기쁘게 만든 건 알더릭이 가는 길마다 뿌려주면서 세상에 나눠줄 거라 기대하는 황금이었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보물을 얻는다고 해도 갖고 싶지 않으며, 기블린의 식탁에 오르는 처지가 되면 더더욱 필요가 없을 거라고 했기에 기대할 만했다.
자기들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그 기사는 미쳤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고, 조언을 따르는 놈들보다 훨씬 낫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다만 그의 계획의 진가를 알아차린 이는 없었다.
알더릭은 이렇게 생각했다. 몇 세기 동안 사람들은 조언을 듣고 더 현명한 방법을 찾아냈다. 한편 기블린 쪽은 식량 저장고가 빌 때마다 사람들이 배를 타고 올 거라 예상하고 문가에서 기다리게 되었다. 마치 사람이 늪지에서 도요새를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다.
하지만 알더릭은 한층 더 나아가 이렇게 생각했다. 만약 도요새가 나무꼭대기에 앉아 있다면 어떨까? 사람이 발견할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래서 알더릭은 강 속을 헤엄쳐서 간 다음 문이 아니라 탑의 벽을 뚫고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뿐만 아니라 호메로스가 말했듯 세상을 둘러싼 강의 밑바닥에서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그렇게 되면 벽에 구멍이 뚫림과 동시에 물이 쏟아져 들어갈 것이고, 기블린들을 혼란시킴과 동시에 소문에 의하면 천장까지 20피트(약 6m)는 된다는 창고를 잠기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때부터는 에메랄드가 필요할 때마다 해녀가 진주를 캐듯이 잠수하면 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