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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가나 북스의 전자책 『경이의 서』 일부를 연재합니다.
* 서지정보 및 판매처 안내 : http://pegana.tistory.com/141


토머스 섑 씨의 대관식
The Coronation of Mr. Thomas Shap

토머스 섑(Thomas Shap) 씨의 직업은 고객들에게 상품이 최고의 품질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 그리고 가격에 대해서는 그들의 암묵적 동의에 의해 정해진 거라고 여기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이 일을 위해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열차를 타고 교외에서 몇 마일 떨어진 도시로 출근했다. 이는 그의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그가 처음으로 자기 직업이 야만스럽다고 인식─책을 읽어서 알거나 한 건 아니고 직감적으로 진실을 깨달은 것이었다─한 순간 자신이 자는 집의 외양, 내부 장식, 심지어 입고 있는 옷까지 다 추잡함을 알아차렸다. 그 순간 이후로 그는 현실 속에서는 아무런 꿈도 환상도 야망도 품지 않게 되었다. 대신 남겨둔 건 섑 씨 자신이라 해도 좋을 프록코트를 입고 차표를 사고 돈을 다루는 등 통계학자에게나 취급되는 존재일 뿐이었다. 섑 씨의 안에 있는 성직자와 같은 부분, 시인과 같은 부분은 도시로 가는 새벽 기차에 타지 않았다.
그는 점차 공상 속으로 짧은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햇빛이 머나먼 남쪽에서 지상을 환히 비추면 그만의 꿈길인 들판이며 냇물 위를 하루 종일 산책하는 것이다. 점점 그는 거기에서 나비를 상상하게 되었고 이어서 비단 옷을 입은 사람들 및 그들이 신에게 기도를 드리기 위해 지은 신전을 상상했다.
섑 씨가 말이 없어지고 간혹 멍하니 있게 됨을 주위 사람들이 알아차렸다. 하지만 고객에 대한 응대는 변함이 없었고 예전처럼 말주변도 좋았다. 이렇게 1년 동안 꿈을 꾸자 그의 공상이 힘을 얻게 되었다. 그는 여전히 기차 안에서 싸구려 신문을 읽었고 그날 중으로 잊어버릴 이야깃거리를 얘기했으며 선거에서 투표도 했지만 이제 그런 일들에는 섑 씨의 전부가 들어 있지 않았다……. 그의 영혼은 이제 거기에 없었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 즐거운 1년이었다. 상상은 늘 새롭고, 황혼의 끝을 향해 남동쪽으로 상상의 나래를 뻗으면 언제든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는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마음의 소유자였기에 간혹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 영화라는 것에 2펜스나 지불해야 한다니 말이 되나? 난 돈이 없이도 그런 것들을 간단히 볼 수 있단 말이야.”
섑 씨는 모든 면에서 논리적인 사람이었기에 그를 잘 아는 사람은 이렇게 표현하곤 했다. ‘건전하고 양식 있으며 공정한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