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 페가나 북스의 전자책 『판의 죽음』 일부를 연재합니다.
* 서지정보 및 판매처 안내 : http://pegana.tistory.com/142

밀회 약속
로드 던세이니


〈명예〉가 큰길을 노래하며 걸어갔다. 누추한 옷차림을 한 시인을 본 체도 안 하고 지나쳐갔다.
그래도 시인은 〈명예〉를 위해 〈시간〉의 궁정에서 머리를 단장하고 노래로 작은 화관(花冠)을 만들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지나가는 길마다 북적대는 사람들이 일으키는 순간적인 소음으로 짠 가치 없는 화관만을 두를 뿐이었다.
조금만 지나도 이런 화관들은 다 말라 죽었다. 시인은 자신의 노래로 짠 화관을 들고 〈명예〉에게로 다가갔다. 그러나 〈명예〉는 그를 비웃고는 여전히 가치 없는 장식만을 둘렀고 그런 것들은 저녁이 되자 다 사그라졌다.
어느 날 쓰라린 경험을 견디다 못한 시인은 〈명예〉를 비난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랑스런 〈명예〉여, 그대는 큰길이든 오솔길이든 가리지 않고 시시한 남자들에게 웃고 소리치며 애교를 부리는구려. 내가 그대만을 꿈꾸며 이토록 애를 쓰는데도 어째서 그대는 나를 조롱하며 지나쳐 가는 거요?”
그러자 〈명예〉는 시인에게 등을 돌리며 걸어가다가 멀찍이에서 어깨 너머로 돌아보며 지금껏 보인 적 없던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속삭임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백 년만 더 있다가 당신의 작업실 뒤뜰에 있는 무덤 속에서 만나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