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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책으로 출간한 『시간과 신들』을 맛보기 연재합니다.
* 서지정보 및 판매처 안내 http://pegana.tistory.com/15
* 공개 기간 : 2012/05/30~(무기한)

밤과 아침
NIGHT AND MORNING
로드 던세이니 지음
엄진 옮김

일찍이 황혼의 들판 너머에 있는 신들의 정원을 ‘밤’이 홀로 걷고 있을 때 돌연 ‘아침’과 맞닥뜨렸다. 밤은 짙은 안개로 만든 외투로 가렸던 얼굴을 보여주며 말했다. “보시오, 나는 밤이오.”
둘은 신들의 정원에 앉았고 밤은 어둠 속에서 신비로운 옛 일들에 대한 경이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침은 놀라움이 담긴 눈으로 밤의 얼굴과 별로 만든 화관(花冠)을 응시했다. 아침이 들판에 있는 스나마시스가 폐허가 된 채 연기를 피우고 있다고 말하자, 밤은 스나마시스가 어둠 속에서 잔치를 벌이고 술을 마시며 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난장판을 벌이는 동안 미나스의 군대가 몰래 습격해와 아침이 올 때까지 빛은 사라지고 군대가 일으키는 소음만이 가득했노라고 말했다. 또한 밤이 신다나라는 거지가 왕이 되는 꿈을 꾸었다고 말하자, 아침은 신다나가 들판에서 군대와 만났고 군대는 그를 신용하여 지금은 신다나가 마르티스, 타르가드리데스, 디나스, 잔, 투메이다를 다스리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밤이 가장 좋아하는 건 사막 가장자리의 폐허에 있는 볼품없는 기념비인 앗사르니스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아침은 한때 평원을 지배하던 쌍둥이 도시 나르디스와 티마웃에 대해서 말했다. 그러자 밤은 미난데스가 어둠 속에서 자기 도시를 걸어 나갈 때 본 것을 아주 무섭게 들려주었다. 밤은 끊임없이 레갈(원문은 the elbow of regal, 중세 유럽의 건반악기인 레갈의 뒷부분에 아코디언과 비슷한 바람통이 있어 팔꿈치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보인다. ─역주)처럼 속삭이며 말했다. “아침에게 이 이야기를……”
그렇게 밤은 쉼 없이 이야기했고 아침은 쉼 없이 놀라워했다. 밤은 죽은 자들이 어둠 속에서 자신들을 전쟁으로 이끌었던 왕에게로 찾아가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말했다. 밤은 다르넥스를 죽인 게 누구이며 어떻게 죽였는지도 알고 있었다. 거기다 일곱 명의 왕이 시다테리스를 고문한 이유와, 시다테리스가 최후에 남긴 말과, 왕들이 방을 나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이어서 밤은 오잔의 신전으로 가는 대리석 계단에 물든 피는 누구의 것인지, 어째서 해골이 황금 왕관을 쓰고 있는지, 어둠 속에서 도시를 향해 울부짖는 늑대에게 잠든 혼은 누구의 것인지에 대해 말했다. 밤은 전부 알고 있었다. 호랑이가 이라시안 사막을 나와서 어디로 가는지, 어디에서 그들이 재회하는지, 그리고 누가 그들에게 말을 하는지, 무엇을 왜 말하는지 까지도. 또한 밤은 사람의 이빨이 어째서 몬다스의 벽에 열려 있는 거대한 문의 쇠로 된 경첩을 깨물었는지, 누가 어둠 속에서 혼자 늪지로 나와 왕에게 알현을 청하고 거짓을 말하는지, 그리고 그걸 믿은 왕이 왕궁의 지하로 내려갔으나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거기에 있던 두꺼비와 뱀 떼에게 살해당한 이야기를 말했다. 왕궁의 탑에 몰래 들어가 자기 원수의 영혼 속으로 달빛을 보낼 수 있는 주문을 알게 되었다는 모험담도 들려주었다. 밤은 이어서 숲과 그림자의 움직임, 발소리와 응시하는 눈, 그리고 나무 뒤에서 튀어나오기 위해 웅크리고 있는 두려움에 대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