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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가나 북스의 전자책 『감방 - 일본 추리소설 단편집 2』 일부를 연재합니다.
* 서지정보 및 판매처 안내 : http://pegana.tistory.com/109
* 공개 기간 : 무기한

3
정신병원을 빠져나온 요시오카 사법주임은 그래도 어쩐지 기분이 편했다.
마츠나가 박사의 가르침을 따르자면 도망간 광인이 일반인에게 폭행을 저지를 위험성은 많이 완화된 셈이었다. 세 명의 광인, 아니면 그 중의 한 사람은 이미 남을 상처 입히는 것보다도 우선 뽑아낸 〈선생님〉의 뇌수를 자신의 것과 바꾸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토록 미쳤다는 건 무서운 일이다.
요시오카 사법주임은 하나의 불안이 사라진 대신에 또 하나의 다른 공포에 식은땀을 흘리며 본부에 돌아와 기를 쓰며 수사 지휘에 매진했다.
하지만 역시 전문가의 감정이 제대로 맞았는지, 드디어 사법주임의 노력이 점점 결실을 맺어갔다.
우선 그날 저녁에 탈주한 광인 중 하나인 〈가수〉를 화장터 근처에서 잡았다. 마츠나가 박사의 추측대로 흥분이 가라앉은 〈가수〉는 서쪽 하늘이 자줏빛으로 물들어가자 화장터의 잡목림에 숨은 집에서 늘 부르던 애달픈 소프라노를 불렀던 것이다. 이를 우연히 들은 눈치 빠른 사복 경찰 한 사람이 접근하여 짝짝 박수를 쳤다. 그러자 〈가수〉는 순간 노래를 멈추고 잠시 의심스러운 침묵을 보였으나 이내 안심했는지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경찰은 한 번 더 박수를 쳤다. 이번엔 즉시 앙코르다. 다시 박수. 그리고 앙코르. 결국 웃음까지 흘리면서 두 사람의 거리는 점점 좁혀졌고, 의외로 간단히 잡을 수 있었다.
여성의 기모노를 입은 〈가수〉는 자동차로 무대가 아니라 경찰서로 연행되어 왔고 사법주임은 용감하게 심문에 돌입했다. 하지만 곧바로 그 상대가 도저히 자기 손으로 처리할 수 없는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깨달은 주임은 마츠나가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사는 병원을 떠나 문안을 겸하여 아카자와 뇌병원에 와 있다가 주임의 전화를 받고는 즉시 와주었다. 그리고 사정을 듣자 우선 〈가수〉를 잡은 경찰의 재치를 칭찬했다.
“이야, 꽤 좋았습니다. 아무튼 이런 사람을 다루려면 절대로 자극을 해서는 안 되거든요. 부드럽게, 솜으로 목을 조르듯이, 상대와 같은 수준으로 낮추고, 유치한 감정이나 생각이나 움직임에 능숙하게 발을 맞추어 가야만 하지요.”
박사는 이후로 〈가수〉를 상대로 잠시 묘한 문답을 나누면서 슬쩍 날카로운 눈으로 신체검사를 하는 듯하더니 즉시 방향을 바꾸어 사법주임에게 말했다.
“이 남자는 범인이 아닙니다. 어디에도 피가 묻지 않았어요. 그 정도의 참극을 일으킨 광인이 이렇게 깨끗할 리가 없어요……. 역시 공범이 아니라 나머지 두 사람 중에 누군가가 한 짓이겠죠. 일단 이 사람은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도 됩니다.”
그래서 박사의 지시대로 〈가수〉는 무사히 아카자와 뇌병원으로 돌려보냈다.
사법주임은 남은 〈톡톡〉과 〈부상자〉의 수사에 전력을 쏟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1시간도 되지 않아 마츠나가 박사의 무서운 예언이 마침내 사실이 되어 보고되었다.
M시의 변두리에 가까운 〈아즈마〉라는 목수를 상대로 하는 술집의 여주인이 밤에 되자 목욕탕에 가려고 가게의 포렴을 가르며 나왔을 때 일이었다. 어두운 도로 저쪽에서 비틀거리며 걷는 남자가 있었는데 다가온 모습을 본 여주인은 꺅 하고 소리를 질렀다. 기모노 앞섶을 드러낸 중년 남자가 얼굴이 피투성이에 양눈을 이상하게 뜬 채로, 지장보살처럼 내민 한쪽 손바닥 위에 무언가 으깨진 두부와 같은 걸 들고 있었던 것이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그는 휘청대는 발걸음으로 선로 쪽으로 사라졌다, 라는 내용이었다.
〈아즈마〉의 여주인에게서 그런 얘기를 들은 경찰관의 보고를 받고 주임은 창백한 얼굴로 일어섰다. 그리고 마츠나가 박사에게 동행을 청하고는 우선 변두리의 술집까지 차를 달리게 했다.
거기서 여주인에게 한 번 더 보고의 내용을 확인하고서 광인이 사라졌다고 여겨지는 선로 방향 일대에 걸쳐 급속한 수색을 시작했다.

마침 그 무렵 마츠나가 박사의 소위 〈흥분이 가라앉고 배가 고파지는 시기〉가 온 것인지, 시내를 종단하고 있는 M강 근처에서 또 한 사람의 광인을 잡을 수 있었다.
얼굴부터 머리에 걸쳐서 붕대를 둘둘 감고 있는 〈부상자〉가 〈가수〉가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어슬렁거리며 다리 위에 나타나서 쇠약해진 모습으로 어두운 수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걸 지나가던 사람이 보고 알려주자 경찰이 매미를 잡듯이 체포한 것이었다. 〈부상자〉는 〈가수〉와 달리 약간은 저항을 했지만 이내 얌전해져서 경찰서로 끌려왔다.
이 보고를 선로 건널목 오두막집 근처에서 받은 사법주임은 달려온 경찰에게 즉시 말을 꺼냈다.
“그래서 그 미치광이는 옷 어딘가에 피가 묻어 있지 않았나?”
“옛, 전혀 없었습니다. 단지 어딘가에 뒹굴었는지 머리의 붕대에 지푸라기 같은 걸 잔뜩 묻히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주임은 옆에 있는 마츠나가 박사를 슬쩍 얼굴을 마주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좋아. 그럼 그 미치광이를 아카자와 뇌병원까지 데려다주게. 조용히 다루도록 하게.”
“옛.”
경찰이 가자 주임은 박사와 함께 다시 선로를 따라서 어둠 속을 걸어다녔다.
“드디어 알게 되었구만.”
박사가 말했다.
“나 참……” 주임은 한숨을 쉬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해도 대체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걸까요.”
여기저기 어둠 속에서 가끔 경찰들의 회중전등이 반딧불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하지만 그리 오래 걷지 않았을 때 갑자기 전방의 선로 위인 듯한 어둠 속에서 회중전등이 크게 호를 그리며 “어~이……!” 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야!”
사법주임이 목소리를 높여 소리 질렀다.
그러자 이어서 상대방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주임님인가요? ……여기에 있습니다. 죽어 있습니다……!”
두 사람은 쏜살같이 달려갔다.
머잖아 경찰이 서있는 곳에 이르자 주임은 거기에서 결국 무서운 장면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선로 옆에 쓰러져 있는 〈톡톡〉은 마치 베개처럼 레일 위에 머리를 놓고 있는 듯 누워 있었는데, 이미 그 머리는 끔찍하게도 산산조각으로 깨져서 주위 자갈 위에 흩어져 있었다.

급한 대로 〈톡톡〉의 시체를 선로 옆으로 치우고 나자 주임과 박사는 즉시 간단한 검시를 시작했다. 하지만 머잖아 주임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일어나서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중얼거렸다.
“이건 정말, 너무나도 무서운 결말이로군…….”
그러자 아직 〈톡톡〉의 시체 앞에 웅크리듯이 앉아서 계속 그 부드러운 양쪽 발바닥을 만지작거리던 박사가 돌연 얼굴을 들었다.
“결말?”
날카롭게 말한 박사는 힘없이 일어났다.
어째선지 지금까지와는 달리 낯빛이 무척이나 창백했고, 격렬한 의혹과 고민의 빛이 얼굴 가득이 넘쳤다.
“기다리세요…….”
마침내 박사가 신음하듯 말했다. 그리고 찌푸린 얼굴을 숙이더니 망설이는/당혹스러운 듯이 〈톡톡〉의 시체를 슬쩍슬쩍 쳐다보았지만, 결국 마음을 정했는지 얼굴을 들고는 말했다.
“그래,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당신은 지금 ‘결말’이라고 하셨지요……? 정말로 나는, 터무니없는 착각을 한 모양이오……. 주임님, 아무래도 아직 결말은 나지 않은 모양입니다.”
“뭐, 뭐라고요?”
마침내 주임은 참지 못하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박사는 주임의 험악한 태도엔 아랑곳없이 다시 〈톡톡〉의 시체를 슬쩍 보면서 묘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아카자와 원장의 시체는 아직 그 뇌병원에 있겠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