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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가나 북스의 전자책 『감방 - 일본 추리소설 단편집 2』 일부를 연재합니다.
* 서지정보 및 판매처 안내 : http://pegana.tistory.com/109
* 공개 기간 : 무기한

그는 누구를 죽였는가
하마오 시로
彼は誰を殺したか / 浜尾四郎

1
남자라도 반해버릴 만한 요시다 유타카(吉田豊)의 편안히 잠든 얼굴을 보면서 나카조 나오카즈(中条直一)는 생각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청년에게 아내가 사랑에 빠진 것도 무리는 아닐지도 몰라.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나이가 꽤 많으니까. 단지 아내의 사촌동생이라고만 여기고 최근까지 마음을 놓고 있었던 건 내 오산이었어.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결행을 하자.’
나카조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바닷가 여관의 작은 방에서 한여름 무더운 밤을 한잠도 자지 않고 보냈다.
그는 15살이나 차이가 나는 아름다운 아내 아야코(綾子)의 사랑에 대해 왠지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남자가 아야코를 만나는 걸 경계해왔다. 최근에는 이게 확연해져 왔기에 사려 깊은 친구는 그를 바보 취급 하면서도 집에 찾아가는 걸 꺼리게 되었다. 단지 올해 막 대학에 입학한 아야코의 사촌동생인 요시다 유카타만은 태연하게 놀러 와서 아야코와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눴다. 또한 나카조 쪽에서도 아무런 불안도 없었다. 그건 단지 사촌지간이니까 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요시다의 최근 행동은 나카조 쪽에서 말하자면 정말 용서할 수 없었다. 사촌남매지간이니 자신과 결혼 전에는 그렇게 친했는지 모른다. 다만 결혼 후에도 그 친밀함을 연장하려는 건 참을 수 없다는 게 그의 심정이었다.
사실은 결혼 후 점점 친해져 사이가 좋아지는 걸지도 모른다고 마저 느껴졌다.
그들을 가까이 있게 한 건 표면적으로는 음악이었다. 피아노를 좋아하는 아야코에게 바이올린이 능숙한 요시다가 와서 이 두 가지 악기를 함께 즐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적어도 아야코와 요시다에게는 그렇게 여겨졌다.
하지만 나카조에게 있어서는 남편이 완전히 소외되는 상태가 견딜 수 없이 불쾌했던 것이다.
요시다야 어쨌든 간에 아야코는 이런 남편의 불쾌함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도 아야코는 그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다. 그런 걸 불쾌하게 여기는 남편을 부끄럽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래서 점점 태연하게 요시다를 불러 합주를 했다. 그녀는 지혜로웠다. 나카조는 확실히 심약하고 불쌍한 남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불장난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 성질의 남자는 때에 따라서는 범죄에 대해 무척이나 용감해지기 때문이다.
나카조라고 해서 음악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처음엔 두 사람의 연주에 빠져들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 이르러서 그는 완전히 불쾌한 기분으로 둘을 응접실에 남겨두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가 없으면 그들은 한층 사이좋게 연주하는 것 같았다.
아니, 악기를 놔두고 즐겁게 웃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그렇게 연주하기 시작하면 음악은 한층 행복하게 울려 퍼졌다.
그는 〈봄(바이올린 소나타 5번)〉을 서재 안에서 들으며 몇 번이나 이를 악물었을까.
그는 혀를 차면서 베토벤을 저주했다. 그 정도로 두 사람이 좋아하는 곡은 그 소나타였던 것이다.
한편 요시다는 거리낌 없이 아야코를 음악회에 초대했다. 아내는 태연히 함께 간다.
“대체 지금까지 어디서 뭘 한 거야?”
“S씨의 콘서트에 갔다 오겠다고 말했잖아요. 말러의 교향곡은 멋져요. 어려워서 잘은 모르지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라고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정도는 말해야 할 거 아냐!’
그렇게 생각해도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남자였다.
요시다와 아내가 남의 눈에 아랑곳없이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참을 수가 없었지만 그는 말로 하지 않았다.
아야코에게도 요시다에게도 한 마디 주의조차 주지 않았다.
말을 하면 아야코는 경멸의 웃음으로 일축할 것이다. 어리다고까지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한참 연하인 요시다에게 말하는 건 더욱 더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와 같은 번민 속에서 몇 개월이 지났으나 결국 나카조 나오카즈는 요시다라는 존재를 저주할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요시다와 피아노와 바이올린과 그리고 그들이 좋아했던 소나타 〈봄〉과, 그리고 그 작곡가를 그는 전부 저주했다.
하지만 아내와 요시다 사이에 대해 아무런 확증을 갖고 있지는 못했다. 그래도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건 나카조와 같은 남자에게는 증거가 있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요시다의 존재가 저주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어떻게든 이대로는 견딜 수 없다고 여긴 그는 관청의 휴가를 이용하여 이삼일 전부터 수영을 하러 가자며 요시다를 이 T해안으로 데리고 온 것이다.
처음 그의 목적은 요시다에게 부끄러움을 잊고 사실을 추궁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관 방에서 잠깐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 요시다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웃어버렸다.
나카조는 순간적으로 ‘내 의심이 지나쳤나’ 라며 안심했다. 그렇지만 요시다가 뒤이어 했던 말이 나카조를 즉시 불쾌하게 만들었다.
“저 말이죠, 이번엔 곧바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누님[그는 아야코를 늘 그렇게 불렀다]과 올여름 브루흐를 함께 연주하기로 약속했거든요.”
‘이 남자는 엄청나게 순진한 인간 아니면 터무니없이 뻔뻔한 놈이다.’
나카조는 생각했다.
기회가 있으면 요시다를 이 세상에서 없어버리고 말겠다, 라는 생각이 지금 처음으로 든 것도 아니다. 그가 유독 한적한 보슈(房州) 구석에 있는 T해안을 고른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여름이 되면 2인조 일행이 산을 오르거나 해안으로 간다. 거기서 한 사람이 실수로 발이 미끄러져서 깊은 계곡에 떨어져 죽거나, 혹은 벼랑에서 바다에 떨어져 바위에 머리를 부딪쳐 죽거나 하는 일이 곧잘 보도된다.
그때 만약 한쪽이 다른 쪽을 죽였다고 해도 어떻게 그 살인을 입증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동기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경우에는 조금도 살인 의심조차 일어날 수 없을 터가 아닌가.
사람 눈에 전혀 띄지 않는 일이다. 아무도 없을 때 결행하는 거다. 그렇게 하면 이 범죄는 영원히 남에게 알려지지 않는다.
나카조는 생각했다. 그의 경우에 있어 동기가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다고 하면 그건 아내 혼자다. 만약 아내가 자신을 고소한다고 해도 어떻게 직접 증거를 제시할 수 있을까.
나카조와 요시다가 묵고 있는 여관에서 수영하러 가는 곳까지 무시무시한 바위 벼랑길이 있다. 물론 우회하면 안전한 길이 있지만 나카조는 지름길로 다녔다. 게다가 이 일부분에는 벼랑 위에 자라난 나무와 바다에 우뚝 솟아난 바위에 숨어서 한치도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음을 나카조는 잘 알고 있었다.
수영복만 입은 요시다가 발이 미끄러져 아래로 떨어져 머리를 부딪혀 죽는다는 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실제로 나카조 자신도 위험하기에 꽤나 조심해서 걷고 있는 것이다.
‘좋아, 내일은 반드시 해치워버리겠어!’
나카조는 날이 밝아올 때까지 생각했다.
이튿날은 전날과 같이 화창하고 마찬가지로 더운 날이었다.
수영복 차림인 나카조와 요시다가 위험한 벼랑길을 걸어간다. 요시다가 앞서고 나카조가 뒤에서.
나카조는 여기라고 생각한 곳에서 주위를 둘러봤다.
그의 시야에 닿는 한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할까, 지금 할까 생각하며 그는 요시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때 우연이 나카조의 마음에 대해 박차를 가해주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앞장서서 걷던 요시다가 즐거운 듯이 휘파람을 불었다. 그야말로 그와 아야코가 자주 연주하는 〈봄〉의 바이올린 파트 한 구절이었다.
이를 들은 순간 나카조는 전율했다.
그는 갑자기 요시다의 뒤에서 손을 뻗었다…….
요시다가 T해안에서 실수로 떨어져 머리가 깨어져 즉사했다는 급보가 사방으로 퍼진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경찰에서는 즉시 당담관이 파견되었다. 도쿄에서 가족들도 급히 달려왔다.
하지만 거기엔 조금도 타살의 의혹이 생길 여지도 없고 또 자살로 보이는 부분도 없었다. 나카조 나오카즈가 상당한 지위에 있는 모성(省)의 관리라는 점이 모든 혐의에서 그를 구했다.
그렇게 전도유망한 청년 요시다 유타카는 T해안에서 뜻밖의 실족사를 하고 말았다는 게 일반적인 뉴스의 내용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