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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불쿤드의 몰락
The Fall of Babbulkund
로드 던세이니 지음
엄진 옮김
나는 말했다.
“이제 나는 경이의 도시 바불쿤드(Babbulkund)를 보러 갈 거라네. 그 도시는 대지와 나이가 같으며 별들은 그의 자매이지. 아랍에서 쳐들어온 고대 파라오들이 사막에 솟은 고독한 산을 처음 보고는 산을 깎아 탑과 테라스를 만들었다네. 그들은 신의 언덕(the hills of God) 중 하나를 부순 대신 바불쿤드를 만들었어.
도시는 지어진 것이 아니라 조각되었지. 수많은 궁전은 테라스와 한 덩어리로 연결부도 갈라진 금도 없다네. 거기엔 세계의 젊음의 아름다움이 있는 거야. 도시는 지구의 중심에 있으며 외부로 향해 열린 문 네 개를 갖고 있지. 동쪽 문 밖에는 돌로 만든 거신상(巨神像)이 앉아 있어 저녁놀을 받아 얼굴을 붉힌다네. 아침 햇살이 입술을 데우면 살짝 벌어지며 ‘우운 우움’ 하는 소리를 내지만 그 언어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버리고 쓰이지 않았고, 신을 모시던 이들은 모두 무덤에 들어가 버려서 이제 그가 해질 무렵 내는 그 소리의 의미를 아는 이는 없어. 신들끼리만 통하는 언어로 다른 신에게 하듯 태양에게 인사를 건네는 거라고 말하는 이도 있고, 하루의 시작을 선언하는 거라고 말하는 이도 있으며, 경고를 하는 거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
그렇게 모든 문이 보지 않는 한 믿을 수 없을 만한 경이를 하나씩 갖고 있다네.”
이어서 나는 친구 셋을 불러 모아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닌가. 이제 함께 바불쿤드를 보러 여행을 떠나세. 마음이 깨끗해지고 영혼이 신성해질 거야.”
그리하여 우리는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넜다. 마을에서 보냈던 일들은 돌이키지 않고, 더러워진 속옷을 벗어 던지듯 그에 대한 생각을 던져 버리고 대신 바불쿤드의 꿈을 꾸었다.
하지만 바불쿤드가 영원한 번영을 누리는 땅에 도착하자 우리는 아랍인 가이드와 낙타 대상(隊商)을 고용하고 오후에 남쪽으로 향했다. 사흘간 사막을 건너면 바불쿤드의 하얀 벽 앞에 이르게 될 것이다. 밝은 잿빛 하늘로부터 태양의 열기가 쏟아졌고 발밑에서는 사막의 열기가 솟아올랐다.
해가 질 무렵 길을 멈추고 말을 묶었다. 아랍인은 낙타에서 식량을 내리고 마른 덤불로 불을 피웠다. 해가 지자 사막의 열기는 날아가는 새처럼 급격히 사라져갔다. 그때 우리는 남쪽에서 온 여행자 한 사람이 다가오는 걸 보았다. 그가 다가오자 우리는 말했다.
“와서 우리와 함께 있읍시다. 사막에선 모든 사람들이 형제자매니까요. 우리가 먹을 고기와 포도주를 나눠드리겠습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예언자가 금지하지 않은 다른 마실 것을 드리리다.”
여행자는 뒤쪽의 사막에 혼자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더니 대답했다.
“들으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경이의 도시 바불쿤드에 대해 들려주겠소. 바불쿤드는 두 개의 강이 만나는 지점 바로 아래에 있소. 신화의 강(River of Myth) 오운라나(Oonrana)가 그에 못지않게 유구한 우화의 물(Waters of Fable) 플레가다니스(Plegáthanees)와 섞이는 장소지요. 하나가 된 강물은 북쪽 문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들어온다오. 이들 물결은 옛날 초대 파라오인 네헤모스(Nehemoth)가 경이의 도시를 깎은 언덕을 지나 어둠 속을 흘러갑니다. 물결은 황량한 불모의 땅인 사막을 건너 갈라진 땅 밑으로 들어가며 사라져 둑 위까지 물결을 유지하지 못하지만, 대신 바불쿤드에 모든 이들이 노래하는 성스러운 보랏빛 화원을 만들어준다오.
저녁이 되면 벌들은 성지 순례를 하듯이 하늘에 있는 비밀스런 길을 지나가지요. 태양과 동등하게 하늘을 지배하던 박명의 왕국에서, 달은 보랏빛 화원에 뒤덮인 바불쿤드를 보며 사랑에 빠진 적이 있었을 정도라오. 바불쿤드에게 구애를 하러 온 달은 울면서 돌아갔는데, 왜냐하면 도시는 자매인 별들보다도 훨씬 아름다웠기 때문이지요. 자매들은 밤이 되면 자기네 방으로 돌아갑니다. 신들 조차도 때로 바불쿤드를 뒤덮은 보랏빛 화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오. 귀를 기울여보시오, 당신들의 눈을 보면 아직 바불쿤드를 본 적이 없음을 알 수 있으니까.
여전히 불안함과 채우지 못한 호기심이 어려 있군요. 들으시오. 내가 말씀드린 화원에는 호수가 하나 있는데 이 세상에 닮은 곳은 하나도 없다오. 강가는 유리로 되어 있고 바닥도 마찬가지인데 안에는 금과 진홍색 비늘을 가진 커다란 물고기가 있어 여기저기로 헤엄쳐 다니지요. 오늘날 도시를 지배하는 제 82대 네헤모스 왕은 해가 진 후에 여기로 와서 호숫가에 홀로 앉곤 한다오. 그때 800명의 노예들이 계단을 내려가 동굴을 지나 호수 바닥으로 이어진 천장이 둥근 공간으로 들어갑니다. 400명은 보랏빛 등불을 들고 일렬로 늘어서 동에서 서로 행진을 하고, 다른 400명은 녹색 등불을 들고 일렬로 늘어서 서에서 동으로 행진을 하는 거지요. 노예들이 둥글게 돌고 돌면 두 행렬은 안팎으로 교차하며, 겁먹은 물고기가 비늘을 반짝이며 위아래로 앞뒤로 도망 다닌답니다.”
여행자가 이야기하는 중에 밤이 내려앉아 고요하고 추워졌고, 우리는 담요로 몸을 감고 바불쿤드의 하늘 자매인 별들이 내려다보는 모래 위에 몸을 눕혔다. 밤새 사막은 많은 것들을 부드럽게 속삭이며 들려주었으나 나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저 모래만은 알아들었는지 올라가고 흐트러졌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바람도 알고 있었다. 밤의 시간이 흘러가자, 이들 둘은 성스러운 사막을 침입한 우리의 발자국을 알아차렸고, 뒤섞으며 흔적을 모두 뒤덮었다. 그런 다음 바람은 가라앉고 모래는 쉬었다. 이어서 바람이 다시 솟아오르고 모래가 춤을 췄다. 이런 식으로 몇 번이나 되풀이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사막은 내가 알 수 없을 것들을 속삭였다.
나는 겨우 잠들었지만 해가 뜨기 전에 너무 추워서 깨어났다. 갑자기 태양이 뛰어오르며 내 얼굴을 달구었다. 우리는 모두 담요를 벗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를 마치는 즉시 남으로 출발했고, 낮의 열기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그 다음에 다시 박차를 가했다. 어디를 가도 사막은 똑같았기에 지쳐 잠든 이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꿈을 연상시켰다.
경이의 도시에서 나와 사막을 건너는 여행자들과 가끔 지나쳤는데 그들의 눈에는 바불쿤드를 보았다는 빛과 영광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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