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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가나 북스의 전자책 『몽상가의 이야기』 일부를 연재합니다.
* 서지정보 및 판매처 안내 : http://pegana.tistory.com/124
* 공개 기간 : 무기한

바다를 지켜보는 자, 폴타니즈
Poltarnees, Beholder of Ocean


톨디즈(Toldees), 몬다스(Mondath), 아리짐(Arizim). 이들은 내륙 국가여서 국경을 지키는 파수병들은 바다를 본 적이 없다. 동쪽으로는 사막이 펼쳐져 있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다. 그곳에선 모든 게 노란색이고 바위 그림자가 점점이 흩어져 있으며 〈죽음〉이 태양 아래에서 표범처럼 누워 기다리고 있다. 남쪽 국경은 마법으로, 서쪽은 산으로, 북쪽은 극지 바람의 고함과 분노로 둘러싸여 있다. 산은 거대한 벽처럼 서쪽으로 뻗어 있다. 저 멀리에서부터 솟아나 다시 머나먼 저편으로 가라앉는 형상이다. 그 이름은 〈바다를 지켜보는 자 폴타니즈(Poltarnees)〉라고 한다. 북쪽으로는 붉은 바위와 부드러운 흙이 있어 이끼도 풀도 자라지 않고 극지 바람의 입술까지 솟아오른 산비탈에는 바람의 분노에 찬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내륙 국가들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곳으로 도시는 아름다우며 국가 사이엔 전쟁도 없이 조용하고 안락했다. 세월 외에는 적이라 할 것이 없고, 가뭄과 전염병도 사막 한복판에 누워 햇볕을 쬐고 있을 뿐 내륙 국가 안으로는 전혀 들어오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밤에 활개 치는 괴물과 유령들도 남쪽에 있는 마법의 경계선을 넘어오지 못했다. 이러한 아름다운 도시는 모두 규모가 작아서 주민들이 다들 서로를 잘 알고 지냈기에 길에서 만나면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나누곤 했다. 도시에 난 넓은 초록색 길은 숲이나 구릉으로 이어지며 도시를 드나들고 집 사이와 거리를 가로질렀다. 사람들이 그 길을 걸어 다니진 않았고 대신 매년 정해진 때가 되면 〈봄〉이 꽃의 나라에서 걸어와 이 초록색 길 위에 아네모네 꽃을 피우며 숨겨진 숲, 깊은 계곡, 고립된 구릉 지대가 깨어나는 기쁨을 불러오면서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도시 사이를 태연하게 나아가곤 했다.
때때로 짐마차나 양치기가 이 길을 걷기도 하고 구름 낀 산을 넘어 도시로 들어오기도 했는데, 마을 주민들이 그들을 내쫓지 않는 건 풀을 짓밟는 걸음이 있고 그러지 않는 걸음이 있어 누구나 마음속에서 어떤 걸음으로 걸어야 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삼림지대의 양지바른 장소와 고원에 있는 어두운 곳은 도시의 음악과 춤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저마다 시골의 음악을 연주하고 시골의 춤을 춘다. 이런 사람들에게 상냥하고 친근하게 보이는 태양이 어린 포도나무를 길러주듯이 그들은 작은 숲의 생물과 요정의 소문이나 옛 전설에 관대하다. 그리고 약간 멀리 있는 도시의 불빛이 하늘 가장자리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농가의 행복한 금빛 창문이 어둠을 비출 때 로망(Romance)의 오래되고 성스러운 모습이 얼굴까지 외투를 덮고 언덕에서 내려와 어두운 그림자에게 일어나 춤을 추라고 명령하고, 숲의 생물들을 배회하게 만들며, 풀 아래에 있는 작은 반딧불을 등불처럼 밝혀 잿빛 땅을 적막에 묻히게 하고 나면 언덕 멀리서 희미한 류트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 세상에 톨디즈, 몬다스, 아리짐보다 번창하고 행복한 나라는 없다.
내륙 국가라 불리는 이들 세 왕국에서는 젊은 남자들이 사라지는 일이 끊이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둘씩 떠났는데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고 말한 것 외에는 달리 알려진 이유가 없었다. 젊은 남자는 그런 소망에 대해서 확실히 밝히는 대신 며칠간 거의 입을 열지 않았고,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집을 나가 폴타니즈의 험난한 비탈길을 천천히 올라가 꼭대기를 넘어간 이후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내륙 국가에 머문 채로 늙어가는 사람도 있었으나 이른 새벽에 폴타니즈를 올라갔다가 돌아온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많은 이들이 폴타니즈에 올라갔다가 돌아오겠노라 약속했지만 말이다. 예전 어느 왕이 신하들을 한 명씩 보내서 이 수수께끼를 알아오도록 시켰고 결국엔 그 자신이 직접 갔으나 결국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내륙 국가의 주민들은 〈바다〉에 대한 전설과 소문을 찬미하는 게 풍습이 되었다. 바다를 발견할 거란 예언이 신성한 책에 적혀 있어서 신전의 사제들은 축제 혹은 장례식 때 깊은 신앙심을 품고서 그 책을 읽곤 했다. 지금 신전은 전부 서쪽으로 문을 두고 지어져서 〈바닷바람〉이 들어오기를 기다렸고, 또한 〈바닷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온다 해도 지나갈 수 있도록 기둥으로 지탱하는 신전은 모두 동쪽으로도 열려 있다.
이것은 바다를 본 적이 없는 내륙 국가 주민들이 가진 바다에 대한 전설이다. 바다는 헤라클레스(Hercules)를 향해 흐르는 강물이며 〈세계의 끝(the edge of the world)〉에까지 닿는다고 한다. 그리고 폴타니즈가 이를 내려다보고 있다. 천상 세계(the worlds of heaven)는 모두 이 강 위를 뜨거나 가라앉거나 하며 흘러가고, 그런 무궁함은 이런 천상 세계를 띄우며 흐르는 강에 의해서 숲과 함께 두텁고 부드러워진다고 말한다. 시커먼 나무의 굵은 줄기 사이로 뻗은 작은 가지에 달린 잎사귀들이 사람의 밤이며 그 속을 신들이 걸어간다. 갈증이 하늘에 뜬 커다란 태양처럼 〈신들의 호랑이〉를 덮치면 그 짐승은 엎드려서 강물을 마신다. 그리고 〈신들의 호랑이〉는 목을 울리며 물을 마시고 때때로 세계를 가라앉혀, 둑 사이의 강 수위는 짐승의 갈증이 해소되고 태양과 같은 이글거림이 사라질 때까지 가라앉았다. 그러면 수많은 세계가 마르고 고립된다. 신들은 더는 그 사이를 걷지 않았으니 그들의 발에 너무나 딱딱해졌던 때문이다. 운명을 갖지 않은 세계도 있으나 그곳의 사람들은 신을 모른다. 강은 끊임없이 흘러간다. 그 강의 이름은 오리아손(Oriathon)이지만 사람들은 오션(Ocean), 즉 대양이라 부른다. 이것이 내륙 국가 하층민의 신앙이다. 상류층의 신앙도 있긴 하지만 입에 올리는 일은 없다. 오리아손은 〈무한〉의 숲 사이를 흘러가 〈끝〉을 넘어가며 곧바로 떨어진다. 먼 옛날 시간이 신들과 싸웠던 전쟁에서 시간들을 불렀던 바로 그 세상의 끝 말이다. 그리고 밤과 낮의 빛에 비치지도 않고 헤아릴 수 없는 양의 물길이 〈무(無)의 골짜기〉 속으로 떨어진다.
몇 세기가 흘러 한 남자가 폴타니즈를 자기 발로 올라 떠난 이후로 수많은 남자들이 그곳을 넘어가 돌아오지 않았다. 여전히 내륙 국가의 사람들은 폴타니즈가 어떤 신비로움을 보여주는지 알지 못했다. 바람 없는 조용한 날 남자들이 즐겁게 아름다운 길을 걷거나 양떼를 돌보고 있는 때 돌연 바다로부터 날아온 서풍이 갑작스레 불어 닥쳤다. 바람이 외투를 두르고 창백하고 쓸쓸한 모습으로 바다의 굶주린 외침을 남자들의 뼛속에 불어넣는다. 그 소리를 들은 이는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안절부절 하다가 결국은 벌떡 일어나 저도 모르게 폴타니즈가 있는 쪽을 향해 떠나면서 이럴 때 으레 하는 관례가 된 짧은 말을 남겼다. “사람의 마음이 기억할 때까지……” 이 말은 ‘잠시 동안의 이별’을 뜻한다. 하지만 그를 사랑하는 이들은 그의 눈에 담긴 폴타니즈를 알아보고는 슬퍼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신들이 잊을 때까지……” 이 말은 ‘영원한 작별’을 뜻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