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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의 죽음
로드 던세이니
런던에서 돌아온 여행자들은 아르카디아(Arcadia 그리스의 고원, 목가적인 이상향)에 발을 들이며 차례로 판(Pan 그리스 신화의 목신. 인간과 염소를 합친 모습)의 죽음을 애도했다.
머지않아 그들은 가만히 누워 있는 판의 모습을 발견했다.
뿔이 달린 판의 얼굴은 미동도 없고 털 위엔 이슬이 맺혀 있었다. 살아있는 동물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에 여행자들이 말했다.
“판이 죽었다는 말이 사실이었구나.”
그들은 커다란 시체 곁에 서서 슬픔에 잠긴 채로 인상적인 판의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해가 지고 조그만 별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아르카디아의 계곡 어딘가에 있는 마을에서 한가로운 노랫소리가 들려오더니 아르카디아의 처녀들이 다가왔다.
어스름 속에서 누워 있는 늙은 신의 모습을 본 그들은 걸음을 멈추고 서로에게 속삭였다.
“바보 같아 보여.” 처녀들은 그렇게 말하더니 슬쩍 웃음 지었다.
웃음소리가 커질 무렵 판이 벌떡 일어났다. 발굽으로 돌멩이를 찼다.
이후로 한동안 아르카디아의 바위와 언덕 꼭대기를 달리며 쫓고 쫓기는 소리를 여행자들은 선 채로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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