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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부
로드 던세이니
고층 호텔 꼭대기에서 인부가 비계(건물을 지을 때 딛고 서도록 나무 등으로 만든 설치물)와 함께 떨어지는 걸 보았다. 그는 떨어지면서도 나이프로 비계에 자기 이름을 새기려 애쓰고 있었다. 땅까지 100m 가까이 되는 높이였으니 그런 짓을 할 여유도 있었던 것이다. 내게는 그저 헛된 짓을 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란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3초도 안 지나 저 남자는 알아보지도 못할 꼴이 되고 말 것이며, 남은 시간으로 이름을 새기려 애쓴 저 판자도 몇 주만 지나면 장작으로 쓰여 불타 없어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할 일이 있었기에 집으로 돌아갔다. 저녁 내내 그 남자의 바보짓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아서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밤늦도록 일에 매달리고 있을 때 인부의 유령이 벽을 통과해 모습을 드러내더니 내 앞에 서서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나 잿빛의 반투명한 형체가 내 앞에 서서 몸을 떨며 웃어대는 모습은 볼 수 있었다.
참다못한 나는 무엇이 그렇게 우습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유령이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거기 앉아서 일을 하고 있으니 웃을 수밖에.”
“사람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게 뭐가 웃기다는 거요?” 내가 물었다.
“뭐긴 뭐겠어, 네 젊은 시절은 바람처럼 지나가버렸고 너네 시시한 문명 따윈 몇 세기만 지나면 싹 다 없어질 거라 이 말이다.”
그러더니 다시 웃음을 터뜨렸고 이번에는 그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그렇게 웃으면서 유령은 도로 벽을 통해 모습을 감추며 그가 왔던 영원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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