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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가나 북스의 전자책 『해이기 - 일본 환상소설 단편집 2』 일부를 연재합니다.
* 서지정보 및 판매처 안내 : http://pegana.tistory.com/108
* 공개 기간 : 무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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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 기간 : 무기한
해이기
이즈미 쿄카
海異記 / 泉鏡花
1
약간 벌어진 모래산의 양쪽 산기슭이 마치 두 마리 무서운 짐승이 웅크린 듯한 모습으로 마주보고 있는 사이로 난, 당장이라도 거친 바다로 달려갈 듯한 길 한편에 어부의 집 한 채가 있다.
집은 벼랑에 바짝 붙어 있었다. 벼랑은 파도가 치기 시작한 옛날부터 강철 방패와 같이 몇 억 척인지 모를 수많은 조수의 진격을 막아내었고, 무너지는 눈사태처럼 맹렬하게 싸워오기를 끝이 없었다. 모래산에 자라나는 새(茅)와 참억새는 해마다 피고 졌지만 천년만년이 지나도 바위는 소나무의 푸름처럼 서리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다.
과연 마츠고로(松五郎). 우리의 늠름한 뱃사공은 파도치는 벼랑을 의지하며, 아름다운 아내 오로(お浪)와 사랑스런 아기를 남겨두고 매일같이 전술했던 문 앞 좁은 길로 나아갔던 것이다. 그 뒷모습이 마주보는 맹수 사이로 덤벼들었다 싶더니 곧바로 바다로 뛰어들듯이 모래산을 내려와 해변으로 나왔고, 곧장 거친 바다를 노 저어 나아가 갈매기보다도 높이, 구름 속으로 가려져 사라졌다.
빈 집에는 그저 갯바위에 부는 바람에서 바닷말 냄새가 어깨띠를 두른 어깨에 물들 뿐이지만 해안백합(浜百合)의 향기보다 향냄새보다 아내에게는 유달리 남편의 냄새가 그리워서, 아이를 안아주거나 볼을 비비거나 자장가를 불러주거나 누더기 옷을 깁거나 옷감을 쟁치거나 솔잎으로 건어물을 말리거나 하면서 쓸쓸하게 하루를 보내곤 했다.
파도 소리에는 익숙해진 몸이지만 닭 울음소리에 놀라서 아이와 함께 자다가 꿈에서 깨어나 문을 열고 윤곽이 뚜렷한 달에 벌레 우는 소리를 들으며 밤새 남편을 그리면서 잠옷에 이슬을 묻히는 일도 있다. 단풍잎 같은 손을 가슴에 얹고 음력 3월의 꽃도 못 본 채 지나가고 신록의 바람에도 노 젓는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면, 뜻밖의 두견새 소리가 들린다. 고래 같은 겨울의 굉장한 점은, 소용돌이치는 바다의 송곳니에 눈물로 언 베개를 깨뜨려 우는 아이를 흔드는 폭풍우가 아닐까.
어머니가 아기를 어르려 팔을 흔들 때 아버지는 앞바다에서 어두운 밤배를 타고 비와 파도와 바람과 노와 구름과 물고기와 소용돌이치는 생활이었다.
이 외딴집은 에미(江見) 지방의 해변 방파제에 성벽도 돌담도 해안에 인접한 상태의 목재 집이다. 최근에 분가를 했던지라 새로 이은 지붕마저 연둣빛이고, 시마다(島田 여자 머리 모양의 일종)가 어울릴 듯한 아내는 아이를 낳았지만 나이는 아직 스물 두셋 정도다.
작년 이맘 때 초가을에 낳은 아이 오하마(お浜)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외동딸이다. 양지바른 골방에 쳐둔 파란 모기장 속에서 낮에는 새근새근 자기만 했지만 귀여움이 사방으로 흘러 넘쳐 다다미에도 평상에도 장난감 천지다.
종이로 만든 장난감 개가 넘어져 있고 오뚝이가 앉아 있는 평상에 재양판(풀을 먹인 명주나 모시 따위를 펴 붙여 말리는 데 쓰는 널판)을 비스듬히 놓고, 젖을 먹이고는 앞섶도 여미지 않고, 머리에 쓴 수건도 느슨하게 풀고, 어깨띠를 팔 아래로 풀고, 햇볕에 탔지만 도시에서 자라 하얀 피부에, 붉은 비단 옷감을 척척 손가락으로 젖히는 손놀림. 파도소리의 가락에 맞추어 거문고 줄을 뜯는 듯한 솜씨를 보면 살림꾼 티가 나지만 여전히 상냥하다.
날씨 좋은 가을날 오후 3시 무렵, 사람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수수의 그림자만이 늘어뜨려진,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날아가는 논두렁 위로 기운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호외요, 호외!”
2
“산(三)짱, 무슨 호외니?”
아내는 매일 같이 얼굴을 대하여 친해진 같은 어장(漁場)의 아이에게 바느질감에 고개를 숙인 채 심심한 듯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한쪽 손을 아마도 군것질거리를 넣은 호주머니에 찔러 넣고 있었다. 미진보(微塵棒 막대기 모양의 사탕과자)를 앞니로 씹어 먹으면서 평상 앞으로 불쑥 머리띠를 동여맨 화살촉처럼 뾰족한 상투 머리를 내밀었다. 약간 큰 통소매 옷은 어느 중에게서 받았다는데 노란 여자용 낡은 허리띠를 줄처럼 꼬아 허리에 감고는 건방지게 엉덩이 아래까지 늘어뜨린 차림새다.
그의 아버지는 염불 영감(念仏爺)이라 불렸는데 찢어진 그물을 수선하는 동안에도 염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가난한 집의 작은 창문에서 집 옆의 감나무나 지붕에 있는 까마귀를 곁눈질로 보더니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무릎에 개머리판을 끌어다 놓고, 3대로 집안에 전해지는 화승총(火縄銃)을 집어 들어 후 하고 불면, 미닫이의 먼지가 확 눈에 들어가 눈물이 나와도 목표는 틀림없이 맞추어서 새카만 날개를 툭 떨어뜨렸다. 그러면 저 놈 잡아오라는 말도 없이 돌아보지도 않은 채로 나무아미타불만 중얼대는 게 부업이 되었다.
저녁 반찬으로 삶아서 먹은 수만 약 33300 마리. 노인의 업보가 손자에게 이어졌던지 별명이 까마귀인 산노스케(三之助)는 올해로 열세 살인 덩치 큰 사내아이다.
두툼한 눈썹을 위아래로 씰룩이며 커다란 입으로 싱긋 웃었다.
“누님, 이건 내 호외라예. 오늘 아침 호외로 배가 아파서 이나바마루(稲葉丸)가 호외에서 빠졌는데 다시 호외로 고쳤다 아인교.”
“괴로웠겠네. 이제 다 나은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붉은 비단 모퉁이를 세밀하게 조금씩 조금씩 폈다.
“야, 호외 끝. 이젠 아무것도 안 할 기다.”
“그치만 너, 그런 짓을 하면 또 배가 아플 걸.”
“그런 짓이라니 뭐가예, 누님?”
“단 걸 먹을 때 와드득 깨무는 거 말야. 난폭하잖니.”
“음, 이거 말이가?”
그러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서 아랫입술을 날름 핥았다. 어깨며 정강이를 움직이니 호주머니에서 부스럭 소리가 났다. 산노스케는 봉지를 흔들면서 말했다.
“이건 그러니까 그기다. 저기, 내가 색시에게 주고 싶어서 할머니 가게에서 사온 건데 맛있어 보여서 맛만 본 거라고. 한 개뿐이다. 나머지는 색시에게 줄 기니께.”
그러면서 재양판 옆에서 방향을 바꿔 툇마루에 손을 짚고 골방 쪽을 보면서 말했다.
“야, 자고 있는가베. 누님요, 우리 색시는 자고 있나?”
“으응. 방금 낮잠을 재웠어.”
“인정이 없구만. 응? 내가 맛있는 걸 갖고 왔는데. 얘, 일나라, 오하마야! 응?”
신기한 듯이 목을 움츠러지더니 허리를 폈다.
“아무 말도 안 하나. 파리만 붕붕 거리며 돌아다니네.”
“진짜 파리가 너무 많아. 모기도 없는 낮인데도 저렇게 모기장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애가 안쓰러울 정도로 모여들거든. 거기다 이렇게 풀을 먹인 옷감이 있으니 여간 성가신 게 아냐. 산짱, 너네 집은 아무래도 해변에서 조금 떨어져 있으니까 조금은 적겠지?”
“그래도 있어예. 있는 정도가 아니라 훨씬 많아. 연중 내내 있다 아이가. 한 줌 쌔리 잡아서 국거리로 쓰고 싶을 정도다.”
태연스런 얼굴로 진지하게 말했다.
3
어린 나이에도 하는 말에는 어려운 살림살이가 담겨 있었다. 소금구이 연기도 일렬로 나는 같은 처지의 초가집끼리구나 싶어서 아내는 미소를 띠었다.
“고마워, 산짱. 기특하게도 어려운 살림 생각을 다 하네.”
녀석은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그렇게 어렵지 않어예, 누님. 이렇게 오하마가 태어났으니 내는 되도록 용돈을 쓰지 않을기다. 동전 한 푼 쓸 때도 소중하게 신경을 쓴다 아이가. 장난감이나 사탕 같은 걸 사줘야 하거든.”
아내는 왠지 수건으로 눈을 내리깔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산짱은 왜 그렇게까지 하니? 너 정도 나이면 다른 애가 갖고 있는 걸 빼앗아서라도 자기가 갖고 싶을 때인데도 그렇게 계속 받은 용돈을 모아다가 저 아이에게 무언가를 자꾸 사주니까. 누나는 정말로 기쁘지만 산짱, 먹을 건 이제 됐어. 가엾어서 못 받겠어.”
녀석은 기쁜 듯한 얼굴로 눈을 아래로 내렸다.
“헤헤, 아이다. 가엾다니 누가? 색시가 먹는 쪽이 내가 먹는 것보다 맛있어 한다 아이가.”
“그런 말을 하니까 그렇지.”
아내는 얼굴을 들며 씨익 웃었다.
“어쩜 저리 정이 많을까.”
빤히 보고 있자니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사실 남자라면 다 그런 거 아이가. 이 집 헹님도 그렇거든. 배에서 폭풍우에 젖어도 말야, 지붕 튼튼한 집 안에서 누님이랑 아기가 비와 이슬에 젖지 않고 지낼 거라 생각하면 춥다는 생각은 안 들기다.”
“거짓말.”
상대가 어린애라지만 아내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거짓말 아이다. 대신에 누님도 이렇게 일하고 있다 아이가. 저기 누님예, 우리 색시도 내가 고기 잡으러 나간 동안 바느질이라도 해주지 않으면 싫다.”
“아, 하고말고. 안 할 수 없지. 오호호, 산짱. 뭐 꿰매줄까?”
“응? 아이다. 아, 시간 됐다. 지금은 새로 입은 옷이라 할 거 없다.”
그렇게 당황하더니 호주머니에서 쏟아질 것 같은 과자봉지를 꺼내어 평상에 놔두니 눈깔사탕이 데굴데굴 굴러 나왔다.
“호외요, 호외.”
잽싸게 뒤쫓아서 굴러가는 걸 손바닥으로 탁 쳤다. 데구르르 돌아오는 걸 슬쩍 집어 들었다.
“앙.”
하는 소리를 내며 입으로 쏙 넣었다.
“잘 먹을기.”
산노스케는 사탕을 꿀꺽 하고 삼켰다.
“호외요!”
그렇게 외치며 몸을 돌려 가려고 했다.
아내는 젖은 손을 닦고는 일어섰다.
“산짱.”
“와?”
“너 그 허리띠는 참 예쁘지만 닳고 낡았잖아? 마침 이 기회에 끝부분을 기워서 붙여줄게.”
“뭐 할라고!”
그러면서 반대편으로 물러난다.
“어차피 금방 뜯어질 공단(繻子) 허리띠인데……”
녀석은 유행가를 낮은 소리로 흥얼거리면서 몸을 돌려 달려가는 듯했으나, 잠시 제자리걸음을 했다.
“왁!”
양지로 슬쩍 다가가 놀래키니 갈색 얼룩개가 깜짝 놀라 모래를 흩뿌리면서 달아났다.
4
“꼴좋다, 겁쟁이 놈아. 내가 누군지 아나? 까마귀 산노스케란 말이다.”
득의양양하게 껄껄 웃으며 말했다.
“깜짝 놀랐네. 갑자기 소리를 치면 어떡하니? 아,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려.”
툇마루에 걸터앉은 아내는 짚신의 뒤꿈치를 깔끔하게 흘러내린 옷자락 아랫단에 걸치고, 한 손을 등 뒤에 두고 먼 하늘을 보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느라 지쳤던지 자주 가슴을 어루만졌다.
“누님도 겁쟁이다. 도쿄 부잣집에서 옷자락 아랫단을 질질 끌고 다녔으니 안 되는 기다. 근성이 없어. 뱃사공의 아내가 그런 겁쟁이라면 안 된다. 아, 우리 오하마는 그렇게 기르고 싶지 않구마.”
아내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려 얼굴을 보았다.
“호호호. 말하는 것만 들으면 산짱은 꽤나 강할 것 같지만 실은 패기가 없는 아이인 걸. 뭐야, 저건?”
“저거라니?”
그러면서 눈을 빙글빙글 돌렸다.
“너 올해 5월 무렵부터 멋진 까마귀가 아니라 울상 짓는 산노스케니, 울보산이니 하며 불리잖아. 여기로는 매번 숨으러 오는 거 아냐? 무섭고 괴로우니까 해변에서 울고 싶은 거야, 너는.”
그렇게 말하며 바라보니 녀석은 입을 우물거리며 머리띠를 풀어 내리더니 “헤, 헤, 헤.” 하며 고개를 숙이고 쓴웃음을 지었다.
“난 그래도 좋아, 울상 짓는 아이라도.”
아내는 가볍게 손뼉을 쳤다.
“그치만, 그치만 말이다.”
녀석은 분한 듯한 얼굴로 말했다.
“내 정도 나이에 참치잡이 배를 타는 녀석은 잔뜩 있다 아이가.
이런 코찔찔이가 이 갯바위에서 헤엄칠 수 있겠나? 고작 제방 주변에서 송사리를 잡거나 오래된 강의 얕은 장소에서 철벅철벅 붕어를 쫓아다닌다 아이가.
파도가 쳤다 하면 너울너울 하늘 위까지 높아져서 산마루도 눈 아래에 보일 정도다. 허풍은 아니지만 파도를 한 번 넘고 골짜기 밑으로 내려가면 해변도 일본도 보이지 않고 태양은 새파랗게 보인데이. 누님, 잔잔한 날이 그 정도라고.
앞바다로 나가서 폭풍우가 온 듯이 출렁대는 시커먼 어둠속에서 파도인지 폭포인지 모를 정도로 맹물과 소금물을 짬뽕해서 뒤집어쓰면서 콧노래를 부르는 기라. 누가 앞바다에서 울상을 짓겠노?”
녀석은 그렇게 어깨를 들썩이며 활개를 친다.
“자, 그럼 그런 너는 울보산인 거네.”
“응.”
순식간에 얼굴에서 유들유들한 허세가 빠지며 머리띠를 만지작거린다.
“음, 어, 헤헤헤. 호외요, 호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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