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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가나 북스의 전자책 『경이의 서』 일부를 연재합니다.
* 서지정보 및 판매처 안내 : http://pegana.tistory.com/141


스누드(Snood)의 함정을 건너며 나아가는 그는 참으로 민첩했다……! 식물학자처럼 땅바닥을 유심히 살펴보나 싶더니 다음 순간 무용수처럼 무너지는 함정에서 뛰어올랐다. 토르(Tor)의 탑을 지날 무렵엔 주위가 컴컴했다. 탑에선 궁수들이 침입자에게 상아 화살을 쏘았는데 외지인을 다루는 그들의 법률이 그랬다. 악법이긴 했으나 외부에 의해 변할 리는 없었다. 밤에는 침입자의 발소리에 의지해서 화살을 쏘았다. 오, 상고브린드여. 그대와 같은 보석 도둑은 다시없을지니! 그는 돌 두 개에 긴 끈을 연결하여 끌면서 걸어갔고 궁수들은 그쪽으로 화살을 쏘았던 것이다.
워스(Woth)에 설치된 함정은 실로 매력적이었다. 수많은 에메랄드가 도시의 문에 헐겁게 얹혀 있다. 하지만 상고브린드는 보석에서 벽 위로 이어진 금색 끈과 만지면 머리 위로 떨어질 무거운 추를 간파하고 속으로는 아까워서 울면서도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은 채 지나가 마침내 세스(Theth)에 이르게 되었다. 그곳에선 모든 이들이 흘로-흘로를 숭배했다. 선교사들이 증명했듯 다른 신들을 믿기도 하지만 흘로-흘로가 사냥감으로 삼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정도로만 여겼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흘로-흘로는 자신의 허리띠에 달린 황금 고리에 신들의 후광을 걸어놓는다고 한다.
세스에서 도시 마웅에 있는 마웅-가-링의 신전에 이르자 그는 안에 들어가 거미 흘로-흘로의 신상을 보았다. 무릎에 놓인 〈죽은 자의 다이아몬드〉는 보름달처럼 온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너무나 오랜 세월 달빛을 받아 미쳐버린 이의 눈에 비친 보름달이었다. 그만큼 〈죽은 자의 다이아몬드〉를 보면 불길함이 느껴졌고 만지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거미신의 얼굴은 그 치명적인 보석의 빛을 받아 빛났다. 다른 빛은 없었다. 무시무시한 다리와 괴물 같은 몸뚱이를 제외하면 얼굴은 평온하며 의식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작은 두려움이 보석 도둑 상고브린드의 마음속을 비집고 들어와 몸이 오싹해졌으나…… 이내 사라졌다. 일은 일이니 그저 잘 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상고브린드는 흘로-흘로에게 벌꿀을 바치고 앞에 엎드려 절했다. 오, 그는 교활한 남자였다! 사제들이 어둠 속에서 몰래 나와 꿀을 핥아먹더니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버리는 게 아닌가. 흘로-흘로에게 바치는 꿀에 약을 탔던 것이다.
보석 도둑 상고브린드는 〈죽은 자의 다이아몬드〉를 들어 어깨에 짊어지고 제단을 빠져나갔다. 거미 신상 흘로-흘로는 아무 말도 없었으나 도둑이 문을 닫을 때 슬쩍 웃었다. 꿀에 넣은 약효가 떨어져 깨어난 사제들은 별을 향해 창문이 열린 비밀스러운 작은 방으로 달려가 점성술로 도둑의 점을 쳤다. 사제들은 점성술의 결과를 보고 마음을 놓은 것 같았다.
왔던 길로 돌아가는 건 상고브린드답지 않았다. 그렇다. 그는 다른 길로 돌아갔던 것이다. 아무리 좁은 길이라고 해도, 〈밤〉의 집과 거미의 숲을 지나야 한다고 해도 말이다.
등 뒤로 우뚝 솟은 발코니 위로 발코니가 이어지며 별들을 거의 가리고 있는 마웅의 도시에서 상고브린드는 다이아몬드를 들고 터벅터벅 걸어갔다. 뒤에서 부드러운 발소리가 작은 소리를 내며 들렸을 때는 상대에게 자신이 두려워하고 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지만, 그의 직업적 본능으로 밤에 다이아몬드를 들고 가는데 따라오는 소리가 들린다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며 이런 중대한 사업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거미의 숲으로 통하는 오솔길로 접어들 무렵에는 〈죽은 자의 다이아몬드〉가 점점 차가우며 무겁게 느껴졌고 부드러운 발소리는 무서울 정도로 가깝게 느껴졌기에 보석 도둑은 멈춰서야 할지 말지 망설였다. 뒤를 돌아보았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귀를 기울였으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 부자의 딸이 지르는 비명이 떠올랐다. 그 영혼이 다이아몬드의 대가인 것이다. 그는 미소 지으며 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