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 전자책으로 출간 예정인 『시간과 신들』을 맛보기 연재합니다.
* 서지정보 및 판매처 안내 http://pegana.tistory.com/15
* 공개 기간 : 2012/05/09~(무기한)
* 서지정보 및 판매처 안내 http://pegana.tistory.com/15
* 공개 기간 : 2012/05/09~(무기한)
새벽의 전설
A LEGEND OF THE DAWN
로드 던세이니 지음
엄진 옮김
세상만물이 생겨날 무렵 신들은 엄격하고 나이 들어 있었다. 그들은 세월과 함께 하얗게 센 눈썹 아래로 ‘태초’를 지켜보았으나 인자나만은 황금 공을 갖고 놀았다. 인자나는 모든 신들의 아이였다. ‘태초’의 이전에도 이후에도 모든 것이 신들을 받들고 복종해야만 했는데 페가나의 신들은 여기저기에서 와서 〈새벽 아이〉를 받들었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숭배 받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다.
세상천지가 어둠에 잠겨 있었고 신들이 사는 페가나마저 예외가 아니던 무렵 〈새벽 아이〉 인자나가 처음으로 황금 공을 발견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옥수(玉髓), 마노, 옥수, 마노로 각 단마다 바뀌는 신들의 계단을 뛰어 내려간 인자나는 황금 공을 집어 하늘 너머로 던졌다. 황금 공은 하늘 위로 날아올랐고 〈새벽 아이〉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신들의 계단 위에서 웃었으니, 그것이 낮이었다. 저 아래 반짝이는 들판은 신들이 예비한 하루의 시작을 보았다. 그러나 저녁이 아득히 먼 산 너머로부터 다가와 세계와 황금 공 사이에 서서 바위산으로 가로막아 세계에게서 떼어놓으려 했다. 그들의 계획대로 세계는 어두워졌다. 이를 본 〈새벽 아이〉는 페가나로 올라가 황금 공을 그리며 울었다. 그러자 신들은 페가나의 문 오른편에 있는 계단을 내려가 무엇이 〈새벽 아이〉를 괴롭히는지 보려 했다. 그들이 왜 우느냐고 물어보니 인자나는 자신의 황금 공을 검고 추한 산들에 빼앗겨 가려졌노라고 답했다. 산들은 페가나로부터 멀리 떨어져 하늘의 가장자리 아래 바위투성이인 세계 속에 있었다. 그 아이는 어둠을 싫어했고 황금 공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런 이유로 움보로돔이 사냥개처럼 부리는 천둥의 목줄을 잡고 끌고 와 황금 공을 찾아서 하늘을 건너 저 멀리에 있는 산들에게로 이르렀다. 천둥은 코를 바위에 집어넣거나 계곡에 대고 짖어대었고 움보로돔이 그 뒤를 재빨리 따라갔다. 사냥개인 천둥이 황금 공에 접근하자 크고 거칠게 울부짖었지만 세상을 어둡게 만든 산들은 도도하게 그리고 묵묵히 서있을 뿐이었다. 어둠에 잠긴 바위산 속, 두 개의 쌍둥이 봉우리에 둘러싸인 거대한 동굴 속에서 결국 그들은 〈새벽 아이〉를 울렸던 황금 공을 찾아냈다. 세상 아래에서 움보로돔은 헐떡이는 천둥을 데리고 나아가 아침이 오기 전의 어둠 속에서 〈새벽 아이〉에게 황금 공을 돌려주었다. 인자나가 웃으며 양손으로 공을 붙잡자 움보로돔은 페가나로 돌아갔고 천둥은 문지방에 엎드려 잠들었다.
다시금 〈새벽 아이〉는 황금 공을 던져 푸른 하늘 위로 띄웠고, 세상에 두 번째 아침이 밝아왔다. 강 위에, 바다 위에, 그리고 이슬방울 위에도. 그러나 공이 튀어 올라가고 있을 때 안개와 비가 공모하여 공을 빼앗고는 누더기 망토에 감싸 들고 달아났다. 옷의 헤진 틈 사이로 황금 공이 비쳐 반짝였으나 그들은 재빨리 옮겨 세계로부터 감추어버렸다. 그러자 인자나는 마노 계단 위에 앉아 황금 공 없이는 행복할 수 없다는 듯 섧게 울었다. 다시금 신들은 이를 불쌍히 여겨 남풍으로 하여금 매혹적인 섬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도록 했으나 인자나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황금 공을 던질 때 뒤에 서있었던 동풍이 들려주는 외로운 섬에 있는 신전의 이야기도 듣지 않았다. 하지만 멀리서 온 서풍이 낡은 외투로 몸을 감싼 잿빛의 세 여행자가 황금 공을 들고 가더라는 소식을 전해왔다.
이어서 북극을 지키는 북풍이 날아와 얼음 칼을 눈 칼집에서 빼내더니 푸른 하늘을 가로지른 길을 따라 달려갔다. 어둠에 잠긴 세상 속에서 북풍은 잿빛의 세 여행자를 발견하고 돌진하여 잿빛 외투가 피로 물들도록 칼로 베면서 쫓아갔다. 그리하여 그들의 한가운데에서 북풍은 붉은색과 잿빛으로 너덜너덜해진 외투 안에 있는 황금 공을 찾아내어 〈새벽 아이〉에게로 가져갔다.
또 다시 인자나가 공을 하늘로 던져 세 번째 낮을 만들었다. 높이 높이 올라간 공은 들판에 떨어져 인자나가 주우려고 몸을 구부릴 때 갑자기 모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세상 모든 새들의 합창이 물결처럼 흘러 인자나는 그 자리에 앉아 황금 공도 옥수와 마노 계단도 아버지인 신들도 잊고서 그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숲과 초원에서 퍼지던 새들의 노랫소리가 돌연 멎었다. 그러자 인자나는 고개를 들어 공이 사라졌음을 깨달았고 적막 속에서 올빼미의 웃음을 들으며 홀로 있었다. 신들이 공을 찾는 인자나의 울음소리를 듣고 입구에 모여 어둠 속을 응시했으나 황금 공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지나가는 박쥐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내밀어 소리쳤다.
“온갖 것을 보는 박쥐여, 황금 공을 보았느냐?”
박쥐는 대답했으나 누구도 듣지 못했다. 바람도 새도 찾지 못했고 오직 신들의 눈만이 황금 공을 찾아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급기야 신들이 말하길, “그대의 황금 공을 잃어버렸구나.” 그리고 그들은 은으로 달을 만들어 하늘 위에 굴렸다. 하지만 아이가 황금 공을 찾으며 울면서 달을 계단 위로 던지는 바람에 가장자리가 부서지고 흠집이 생겼다. 음악의 신 림팡-퉁은 신들 중에서도 가장 어렸는데, 그는 아이가 울면서 황금 공을 찾고 있을 때 슬그머니 페가나를 떠나 하늘을 건넜다. 그러자 세상 모든 새들이 나무와 덩굴 위에 앉아 어둠 속에서 속삭였다. 그는 한 마리 한 마리에게 황금 공의 소식을 물었다. 근처의 언덕에서 봤다는 이도 있고, 나무 위에 있는 이들 중 누구도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왜가리가 연못에 있는 걸 봤다고 말했지만 들오리는 최근 집으로 돌아가다가 갈대밭에서 봤지만 저 멀리로 굴러갔노라고 말했다.
맨 마지막에 수탉이 소리쳐 땅 아래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림팡-퉁은 수탉이 부르는 소리를 따라 어둠 속을 걸어가 결국 황금 공을 찾아내었다. 림팡-퉁이 페가나로 돌아와 〈새벽 아이〉에게 돌려주니, 이제 달은 갖고 놀지 않게 되었다. 이에 그 수탉과 동족들은 모두 이렇게 외쳤다.
“우리가 찾았다! 우리가 황금 공을 찾았다!”
'소설 연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들이 잠들었을 때 - 로드 던세이니 (2/2) (0) | 2012.05.12 |
---|---|
신들이 잠들었을 때 - 로드 던세이니 (1/2) (0) | 2012.05.12 |
새벽의 전설 - 로드 던세이니 (2/2) (0) | 2012.05.09 |
시간과 신들 - 로드 던세이니 (2/2) (0) | 2012.05.05 |
시간과 신들 - 로드 던세이니 (1/2) (0) | 2012.05.05 |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 Total
- Today
- Yesterday
링크
TAG
- 영미권
- 페가나무크
- 김동인
- 호러
- SF
- 운노 쥬자
- 판타지
-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 작품 목록
- 아카마츠 켄
- 판의 죽음
- 에드거 앨런 포
- 한국
- 시간과 신들
- 미스터리
- 결산
- 단편집
- H.G. 웰스
- 나오키 산주고
- 대실 해밋
- 경이의 서
- 사카구치 안고
- 페가나북스
- 올라프 스태플든
- 일본
- 달의 첫 방문자
- 전자책
- 해설
- 로드 던세이니
- 페가나의 신들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