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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책으로 출간 예정인 『시간과 신들』을 맛보기 연재합니다.
* 서지정보 및 판매처 안내 http://pegana.tistory.com/15
* 공개 기간 : 2012/05/12~(무기한)
* 서지정보 및 판매처 안내 http://pegana.tistory.com/15
* 공개 기간 : 2012/05/12~(무기한)
신들이 잠들었을 때
WHEN THE GODS SLEPT
로드 던세이니 지음
엄진 옮김
모든 신들은 페가나에 앉아 있었고 시종인 시간은 파괴할 것이 없어 페가나의 문가에 누워 빈둥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세계에 대해, 크고 둥글고 반짝이는 지구와 작은 은빛 달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그 누가 정확히 알랴?) 신들이 손을 들어 신들의 수인(手印)을 맺자 신들이 했던 생각들이 지구와 달로 변했다. 하늘에서 페가나의 문 주위를 떠돌던 세계는 제각기 신들이 있으라 명한 곳에 닻을 내리고 영원히 고정되었다. 둥글고 크며 하늘 가득 반짝이는 광경을 본 신들은 웃고 소리치며 박수를 쳤다. 이후 신들은 지구에서 신들의 게임을 벌였으니 이는 삶과 죽음의 게임이며, 다른 세계에서 그들은 비밀스러운 일을 했으니 이는 감춰진 게임이다.
결국 신들은 삶을 조롱하기를 그만두었고 죽음을 비웃기를 그만두었다. 그들은 페가나에서 크게 울면서 말했다. “새로운 것은 없는가? 멈추지 않는 계절의 발걸음에 우리의 눈이 지쳐 쇠할 때까지 저들 넷이 영원히 세계 주위를 빙빙 돌 것인가? 생겼다가 사라지는 ‘밤’과 ‘낮’과 ‘삶’과 ‘죽음’이 말이다.”
마치 조그만 오두막의 아무것도 없는 벽을 빤히 바라보는 어린애처럼 맥없이 세계를 지켜보던 신들이 말했다.
“새로운 것이 없을까?”
그러자 권태에 빠진 신들이 말했다. “아! 다시 젊어지고 싶구나. 아! 한 번 더 마나-유드-수샤이의 머릿속에서 태어나고 싶구나.”
그들은 지친 시선을 반짝이는 세계로부터 거두고 페가나의 길바닥에 드러누웠다. 신들은 이렇게 말했다.
“세계가 흘러가버리면 흔쾌히 잊을 수 있으련만.”
그런 후 신들은 잠들었다. 그러자 혜성이 정박지에서 벗어나고 일식은 하늘을 멋대로 돌아다녔고 죽음의 세 아이들─기근, 역병, 가뭄─은 지상으로 내려와 먹이를 잡아먹었다. 기근의 눈은 초록색이요 가뭄의 눈은 붉은색이지만 역병은 눈이 멀어 도시 안을 휘젓고 다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습격했다.
신들이 잠든 사이에 어둠과 미지의 지역인 〈가장자리〉 너머에서 악령인 세 요지가 은빛 닻을 펼친 범선을 타고 침묵의 강을 나아갔다. 저 멀리에서 페가나의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 별 윰과 고둠이 눈을 깜박이다 잠에 빠져드는 걸 보았고, 페가나에 접근하니 신들이 깊이 잠들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세 요지의 이름은 야, 하, 스니르그라고 하는데 각기 악, 광기, 원한의 지배자다. 그들은 범선에서 내려 페가나의 조용한 입구로 잠입했으니 이는 신들에게 있어 나쁜 징조였다. 신들은 페가나 안에 누워서 잠들어 있었고 조금 떨어진 구석에는 신들의 ‘힘’이 홀로 누워 있었다. 그것은 검은 바위로 되어 네 개의 글자가 적혀 있었는데 누구도 알 수 없는 문자라서 설령 내가 의미를 알아낸다 해도 그 근거를 제시할 수는 없으리라. 새벽을 맞아 피어나는 꽃에 대해 적혀 있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언덕에 일어난 지진에 대한 말이라고 하는 이도 있으며, 물고기의 죽음에 대해 적혀 있다고 말하는 이도 있는데, 또 다른 이는 네 개의 글자가 이런 의미라고 말하기도 한다. 힘, 지식, 망각, 그리고 마지막 글자는 신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문자이다, 라고. 이 글자를 읽은 요지들은 신들이 깨어날까 두려워 얼른 달아났다. 그들은 범선에 올라타 사공들을 재촉했다. 그리하여 요지들은 신이 되어 신들의 ‘힘’을 가진 채 지상으로 노저어가, 바다 위에 우뚝 솟은 섬에 도착했다. 그들은 신들이 그러하듯이 오른손을 높이 든 채로 바위 위에 앉았다. 신들의 ‘힘’을 가졌지만 숭배하러 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가오는 배도 없고, 저녁이 되도록 기도드리러 오는 사람도 없었으며, 향을 피우는 냄새도 희생 제물의 비명도 없었다. 요지들은 말했다.
“우리가 신이 되어 좋을 일이 무엇인가? 섬기는 이도 제물을 바치는 이도 없는데 말이다.”
야, 하, 스니르그는 은빛 범선을 타고 바다를 건너 사람들이 사는 해안가에 이르렀다. 그들이 어부들이 사는 섬에 도착하자 주민들이 바닷가로 달려와 소리쳤다.
“누구시오?”
요지들이 대답했다.
“우리 셋은 신이다. 그대들의 숭배를 받으러 왔노라.”
그러나 어부들은 이렇게 응수했다.
“저희는 번개이신 람을 섬기고 있으니 다른 신들을 섬기지도 않고 제물을 바칠 일도 없소이다.”
그 말을 들은 요지들은 분노로 으르렁거리며 배를 몰고 가 다른 해안에 도착했다. 모래투성이의 적막한 곳이었다. 한참 후에 그들은 노인 한 사람을 발견하고는 그를 소리쳐 불렀다.
“해안의 노인이여! 우리 셋은 숭배를 받아야 마땅할 신이다. 강대한 힘을 갖고 기도하는 이의 소원을 얼마든지 들어줄 것이니라.”
그러자 노인이 대답했다.
“저희는 페가나의 신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향 냄새와 제단 위에서 바치는 희생 제물의 비명을 좋아하시는 분들입죠.”
스니르그가 응수했다.
“페가나의 신들은 잠들어 있으니, 그대들이 보내는 기도의 노래는 신들을 깨우지 못하고 페가나 길바닥의 먼지가 되어 뒹굴리라. 〈세계의 거미〉 스니락테가 안개로 거미줄을 짜서 그들을 묶을 것이고, 제물이 아무리 꽥꽥거린다 해도 잠으로 닫혀 있는 신들의 귀에 울릴 일은 없으리.”
노인은 바닷가에 선 채로 대답했다.
“옛 신들이 우리의 기도에 답을 해주지 않는다 해도 여기 시리내스에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옛 신들에게 기도를 드릴 거외다.”
그 말을 들은 요지들은 화가 나서 배를 돌려 그곳을 떠나며 시리내스와 시리내스의 신들에게, 그리고 그 누구보다 바닷가의 노인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그래도 세 요지는 여전히 인간의 숭배를 갈망하고 있었기에 항해를 계속 했고 삼 일째 밤에 도시의 불빛을 발견했다. 그곳은 기쁨이 담긴 주민들의 노래로 가득한 도시였다. 요지들이 각자 범선의 뱃머리에 앉아 그 도시를 흘겨보니 음악은 멈추고 춤은 멎었다. 이에 사람들이 바다 쪽을 보고 은빛 닻 아래에 있는 요지들의 낯선 모습을 보았다. 스니르그는 그들에게 숭배를 요구하는 대신 기쁨을 증대시켜 주겠노라 약속하며 눈에서 작은 불덩어리를 쏘아 보내고 그 빛에 맹세를 했다. 또한 도시를 적에게서 보호하고 세상 끝까지라도 적들을 쫓아갈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도시의 사람들이 답하기를, 외로이 서있는 산 아그로다운를 숭배하고 있으니 설령 바다 저편에서 은빛 닻을 단 범선을 타고 온다 한들 다른 신을 섬길 일은 없을 거라 했다.
이에 스니르그가 이렇게 말했다.
“아그로다운은 그저 산일 뿐, 신이라 할 수 없노라.”
그렇지만 아그로다운의 신관들이 바닷가에 모여 노래로 답했다.
“인간이 바치는 제물이 아그로다운을 신으로 만들지 못한다 하여도, 바위 위에 흘린 젊은이의 피와 수천 개의 심장에서 날갯짓하는 소소한 기도들과 이천 년 동안의 숭배와 모든 인간의 소망과 우리 민족이 기울인 모든 힘을 부정한다면, 신들도 존재하지 않고 바다를 건너온 그대들은 그저 선원에 불과하리라.”
이에 요지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그로다운이 기도에 응답을 한 적이 있던가?” 사람들은 요지의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들은 아그로다운의 신관들은 해안을 떠나 도시의 거리를 지나갔고 사람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들판을 지나 아그로다운의 발치에 이르러 말했다.
“아그로다운이여, 그대가 우리의 신이 아니라면 이곳을 떠나 저 멀리 평범한 언덕이 즐비한 곳으로 가시오. 눈을 모자처럼 머리에 덮어쓴 채로 하늘 아래에 웅크리고 있으시오. 허나 만약 우리가 바친 이천 년분의 기도가 그대에게 신격(神格)을 주어 우리의 소망이 그대를 외투처럼 감싸고 있다면, 일어나 우리의 도시 위에서 그대의 숭배자들을 영원토록 지켜봐주시오.” 그러자 연기가 발치에서 피어오르고 고요함이 거대한 아그로다운을 감쌌다. 신관들은 바닷가로 돌아와 세 요지에게 말했다.
“아그로다운이 우리의 신으로 있는 것에 싫증이 날 때가 오지 않는 한 새로운 신들이 섬김을 받을 일은 없을 것이요. 그가 어느 날 밤에 떠나가고 더는 우리 도시를 저 위에서 지켜봐줄 존재가 없어진다면 모를까.”
요지들은 배를 몰고 떠나며 아그로다운을 저주했지만 그를 상처 입히지는 못했다. 아그로다운은 그저 산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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