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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츠네(オツネ)는 맹인 안마사다. 키도 작고 못생겼지만 명랑한 성격에 입담도 좋고 안마 실력이 뛰어났기에 여관에서도 잘 대해주고 있다. 그날은 아침부터 예약이 들어와 단골인 노다(乃田) 씨 저택으로 밤 9시쯤에 가기로 이야기가 되었다.
노다 씨 댁에서 부르는 경우는 부인이 원할 때와 손님이 원할 때가 있는데, 손님은 오오카와(大川) 씨인 경우가 많다. 이날도 오오카와 씨다. 오츠네가 9시 15분쯤에 갔을 때는 식사를 마쳤을 때라 9시 반부터 안마를 시작했다.
식사는 본채에서 하지만 오오카와 씨가 묵는 곳은 별채여서 본채와 비교하면 조그만 서양식 저택이었다. 노다라고 하면 옛날에는 어마어마한 부자였기에 본채는 어떤 여관과 비교해도 상대가 안 될 정도로 호화로웠다고 한다. 응접실과 노가쿠(能楽 일본 고유의 가면극) 무대 등 국보급 보물을 사들여 옮겨왔으며 5000평 정도의 정원도 있다. 아타미(熱海)에서 지금 이 정도의 저택을 여관으로 쓰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막대한 토지와 산림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기에 조금씩 그걸 팔아서 무척이나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가끔 찾아오는 게 오오카와와 이마이(今井)라는 두 사람이다. 대개는 둘이서 함께 올 때가 많은 듯하다. 두 사람은 여기 주인 생전에 비서로 일했다고 하는데 이날은 오오카와 혼자인 것 같았다. 오츠네가 별채로 갈 적에 가정부가 말했다.
“나중에 부인께서도 안마를 받고 싶어 하신다니까 마치는 대로 와주세요.”
이것도 평소 습관이다. 이마이 씨는 아직 젊어서 그런지 안마를 받지 않았다.
오오카와 씨는 적은 양의 술로도 기분 좋게 취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기 전에 수면제를 먹기에 4~50분 정도 안마를 하는 사이에 깊이 잠들어버린다. 이날도 그랬다. 좀 별난 사람이기에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너 같은 못난이 안마사라도 취한 채로 안마를 받는 동안에는 이상한 마음이 생겨날지도 모르니까 저 벽에 걸린 처녀귀신 탈을 쓰고 안마를 해다오.”
이런 기묘한 습관이 있었다. 소심하고 신중한 사람인 걸까. 그러면서도 안마는 강하게, 좀 더 강하게, 있는 힘껏 해달라고 재촉을 해대니 이런 사람을 안마하면 몇 사람이나 한 것처럼 지치는 지라 안마사로서는 꺼리는 손님이다. 오츠네는 오오카와 씨가 잠든 걸 보고 안심한 후 노멘(能面 노가쿠에서 쓰는 가면으로 무표정한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을 벗어 탁자 위에 두고 방을 나갔다.
오츠네는 맹인이지만 감각이 좋은 게 자랑이라 단골집이나 여관에 갈 경우에는 하녀들에게 안내받는 게 정말 싫었다.
“전 감이 좋아요. 혼자서도 괜찮아요.”
어디를 가도 그렇게 말하게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물론 하녀들도 곧 익숙해졌기에 굳이 안내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어졌다. 노다 씨 댁에서도 그랬다. 벽을 손으로 짚고 걷느라 발자국소리도 없이 장지문을 열었다. 그러자 안쪽 방에서 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츠네 씨인가요?”
“그렇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요.”
“예.”
누군가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부인은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추면서도 힘을 담아 말했다.
“당신의 뻔뻔스러움은 이제 질렸어요. 지금까지 1000만 엔은 빼앗겼다고요. 나도 이제 예순일곱이니 명예 따위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습니다. 이제 돈은 절대로 안 줄 테니까 비밀을 알리며 다니든 말든 마음대로 해요. 무엇보다 밤중에 창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짓은 뭡니까? 당장 가세요.”
“나중에 후회할 겁니다.”
창밖에는 그렇게 웃으며 말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인이 창문을 닫았기에 남자는 물러난 모양이었다.
오오카와 씨는 아닌 것 같아, 라고 오츠네는 생각했다. 그는 깊이 잠들어 있고, 남자의 목소리는 낮아서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오오카와의 목소리와는 다른 것 같았다. 손님은 혼자였지만 저택 내에 있는 다른 남자라고 해봐야 아들 코노스케(浩之介)하고 정원지기 할아범밖에 없다. 코스케는 전쟁 때 남방에서 다리에 부상을 입고 돌아온 후로 절름발이가 되었다. 이 두 사람은 오츠네와는 거의 면식이 없었다. 부인은 오츠네를 안쪽 방으로 불러들였다.
“엉뚱한 소리를 들려주고 말았군요. 이 얘기는 다른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됩니다.”
“네. 절대 말하지 않겠습니다.”
“오오카와 씨는 잠드셨나요?”
“예. 코를 골며 주무십니다.”
“그래요?”
이후로 오츠네는 부인을 안마한 후 11시 반쯤에 방을 나왔다. 예전 같으면 이 시각에는 다른 단골 여관에 들렀다 왔겠지만 이 날은 오오카와 씨 때문에 지켰기에 스승이 있는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밤은 노다 씨 댁에서 처녀귀신 가면을 쓴 분을 맡아서 지쳤습니다. 쉬게 해주세요.”
손님 앞에서는 이런 이야기까지는 하지 않겠지만 안마 선생님 집에서는 더 심한 이야기도 곧잘 하곤 했다. 그렇게 말하고는 쉬기로 하여 피곤한 날 밤에 늘 그렇듯 5작(勺 양의 단위로 홉의 10분의 1) 정도의 술을 마셨다.
“노다 부인은 누군가에게 협박을 당하는 모양이에요. 벌써 1000만 엔이나 빼앗겼나 봐요. 처녀귀신 가면 어른은 아니지만요.”
그렇게 방금 부탁받았던 비밀까지도 떠벌이고 말았다. 그리고는 술에 취해서 기분 좋게 잠들어버렸기에 오츠네는 그날 밤 일어난 화재를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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