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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가나 북스의 전자책 『심령 살인사건』 일부를 연재합니다.
* 서지정보 및 판매처 안내 : http://pegana.tistory.com/46
* 공개 기간 : 무기한

이제 각자의 증언 가운데 주요한 내용을 쓰기에 앞서 오늘 밤 각자의 위치에 대해 그림을 그려 표시하기로 한다.

[각자 위치 그림]
A 상자(즉 요시다 야소마츠), B 센시치, C 모테기, D 키시이, E 쿠다유, F 카츠미, G 미도리, H 이토코, I 타츠오
* 그림은 생략합니다. 전자책에는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토코의 증언
─ 이 단검을 본 적이 있습니까?
─ 있어요. 분명 응접실 장식 선반 속에 인형이나 배 모형 같은 잡동사니와 함께 놓여 있던 거예요. 서양 단검인데 고가품은 아닌 것 같습니다.
─ 응접실에 잡동사니를 놔둔단 말인가요?
─ 직업이 고리대금업이다 보니 압류해오다 어쩔 수 없이 늘어나는 잡동사니예요. 집의 방이란 방은 토코노마나 선반이나 장식장 속엔 온통 잡동사니 투성이죠.
─ 언제 없어졌는지 기억하고 있습니까?
─ 그런 건 모르겠는데요.
─ 여러분이 앉은 자리는 이랬지요?
─ 그런 것 같아요.
─ 누군가 부친께 다가가는 기색을 느꼈습니까?
─ 전혀요.
─ 부친이 찔린 기색은?
─ 전혀요.
─ 당신과 오라버니만이 뒤쪽에 앉아 계셨군요.
─ 오빠는 서있었어요. 앉으면 보이지 않으니까요. 서있었으니 다행이었던 거죠.

    쿠다유의 증언
요시다 야소마츠는 명수 중의 명수였습니다만, 여행지에서 사람을 앗 하고 놀래는 기술은 구사하지 못한 모양이었네요. 그래도 얼마 안 되는 재료를 살려서 의표를 찌르기 위해 고심했던 모양입니다. 예를 들면 중앙에 탁자를 놓고 아래엔 융단, 옆면과 천장에는 검은 막을 두르고, 아무리 봐도 탁자를 들어 올리려 하지 않을 뿐 융단 밑이나 장막 위와 옆에는 전부 코드나 끈을 장치하기에 충분한 상태를 만들어두었던 겁니다. 그런데도 그런 장치는 무엇 하나 설치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건 아마 구경꾼이 예측하도록 만들고 의표를 찔렀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피해자에게서 내가 참관하러 온다는 걸 미리 들어서 알고는 의표를 찌르려 준비한 걸지도 모르죠. 따라서 상자 안에서 장치를 쓰는 수법도 쓸 수 없습니다. 상자 안에서 밖으로 통하는 장치는 전혀 마련하지 않았던 겁니다. 따라서 그 사람이 간 것은 줄을 풀고 앞으로 나가는 곡예만을 했던 겁니다. 그 곡예도 처음에는 약간 의표를 찔렀네요. 제법 교묘한 방법이었습니다. 야광도료 물품 없이 우선 4파운드 정도의 철구와 음향장치를 한 도구를 던졌던 거죠. 철구가 떨어지는 소리도 꽤 컸지만 음향도구에서 나온 덜그럭덜그럭 거리는 괴음은 꽤나 고민했지요. 물론 거기에는 끈이 달려서 나중에 끌어당겨 주머니에 넣고 상자 속에 감추는 겁니다. 이렇게 쿵 하고 놀랜 후에 야광도료를 바른 물건들을 조종하기 시작했다는 얘긴데요.
네? 하모니카와 피리는 불 수 없다고 여러분은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야 그 하모니카와 피리는 불 도리가 없지요. 별도의 하모니카와 피리를 부는 거예요. 입으로 문 채로 말예요. 야광도료를 바르지 않은 물건을 따로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던 거죠. 해서 결국 저는 고칸 씨가 살해당하는 소리를 구별해낼 수가 없었습니다만 아마도 그 덜그럭 거리는 중이었겠죠. 그 소리가 한창 나는 중에 사람들 속에서 한숨이나 신음소리가 났던 겁니다. 아마 그 중의 하나가 피해자가 낸 고통의 신음이 아니었을까요? 제대로 겹쳐졌던 거죠. 우연입니다. 아마 범인은 음악이 시작됨과 동시에 행동을 시작해 피해자의 뒤로 가서 음악이 나는 위치를 기준으로 표적을 잡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우연히 덜그럭 거리는 기회를 이용해 대단히 안전하게 목적을 이룰 수 있던 거로군요. 덜그럭 소리가 없어도 목적은 이루었겠지만 상당히 위험하지요. 고통에 찬 소리가 무엇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을 테니까요. 일단 전등을 켤 때까지는 틈이 있을 테니 원래 자기 자리로 돌아갈 시간에 부족함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호흡의 혼란이나 무언가 숨기기 위해서는 두 배 세 배의 고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게 당연합니다.
범인으로 짐작 가는 사람요? 그건 전혀 모르겠군요. 주의는 심령술 쪽에만 집중하고 있었고, 요시다 야소마츠 씨가 저렇게 돌아다녔는데도 소리가 나지 않도록 장치한 융단이니까 슬금슬금 걸어 다닌 범인의 기척을 알아낼 리가 없죠. 그걸 알 정도라면 심령술에서 끈을 푸는 트릭을 곧바로 알아차리지 않았을까요? 구경꾼들은 요시다 야소마츠 씨가 줄을 풀고 앞으로 걸어와 마술 도구를 쓰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으니까요.
사건 발각 후의 사람들의 행동 말입니까? 글쎄요. 모두들 한결 같이 망연해 있는 것 외에 특별히 수상해 보이는 사람은 없었는데요. 경찰에 전화를 걸러 이토코 씨가 밖으로 나갔습니다. 하지만 다른 모두는 서로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경찰관이 올 때까지 밖으로 나간 사람은 없었습니다. 누구든 의심받고 싶지 않았으니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한 사람도 없었지요. 그러는 동안에 요시다 야소마츠 씨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끈을 풀고 나왔습니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스스로 풀 수 있음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겠지만 상황을 보면 계속 상자 안에 앉아 있기만 할 수는 없게 되었으니까요. 원래 살인과는 상관없다는 듯 손목을 주무를 뿐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좀 이상한 사람이었어요. 심령술사로서의 실력은 대단했어요. 제가 본 중에서 최고라고 할 정도로요. 야광도로를 바른 도구류가 움직이는 수수께끼는 간단하지만 하모니카를 입에 물고 불면서 다른 하모니카와 확성기와 나팔 세 개를 동시에 공중으로 띄운 건 제법이었습니다. 저라면 좀 더 잘 할 자신이 있지만요. 기술적인 이야기만 해서 죄송하지만 그쪽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서 어쩔 수가 없네요.

    모테기의 증언
말씀드린 대로 제가 피해자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었던 셈입니다만 소리가 꽤 시끄러웠고 심령술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기에 인기척도 피해자가 찔린 기색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네? 범인으로 짐작 가는 사람이요? 그때는 누구든 고칸 씨를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 만큼 살인에 적합한 기회는 달리 없으니까요. 이미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용의자인 겁니다. 전원이 범인일 수 있지요. 물론 제 경우 위치가 가까워 의심을 받는다고 해도 어쩔 수가 없지만 제가 그 분을 죽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문제는 결국 왜 죽였나, 그 이유 즉 동기라는 게 문제가 아닐까요. 예? 카스미에게도 유산의 1/4이 굴러들어온다고요. 아니에요, 조금도 모르겠습니다. 남의 집에 시집 간 여자에게까지 동등한 유산을 주나요? 상속 같은 걸 얻을 생각은 해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 신법률은 전혀 몰랐는데요. 예? 제 직업 말씀입니까? 건설회사의 평사원이에요. 사장 비서, 나쁘게 말하면 경호원인 셈입니다. 법률과는 인연이 없습니다.

    요시다 야소마츠의 증언
저 사람이 마술사 이세사키 쿠다유인가요? 그럼 뭐 거짓말을 해도 소용없겠군요. 저 사람의 이름은 심령술사 동료들 사이에도 소문이 자자하거든요. 난처한 사람이 나타났군요. 그야 뭐 저 사람의 말씀 대로입니다. 줄을 빠져나와 앞에서 곡예를 펼친 거지요. 마루이치 코테츠(丸一小鉄 일본의 유명 곡예사 카가미 코테츠鏡味小鉄를 가리킴. 그가 속한 곡예 유파가 마루이치센오샤츄丸一仙翁社中다)의 곡예를 어둠 속에서 서툴게 하는 셈이죠. 아뇨, 그것만이 심령술이 아닙니다. 그 외에도 예를 들면 다음날 하기로 했던 유령을 불러 물건을 들거나 소리를 내게 하는 게 오히려 심령술의 주안입니다만.
예? 그 방법을 알려달라고요? 그것만은 봐주세요. 그걸 알려주면 본전도 못 찾게 된다고요. 아무튼 저는 저 나름대로 발명한 수법도 있지만요. 다른 업자에게 알려지면 그 이상 곤란한 일은 없지요. 네? 그날 밤 덜그럭 소리 말인가요? 그것도 제 신작이고 평범한 수법으로 만족하지 못하게 된 구경꾼을 깜짝 놀래기 위해 최근에 발명한 겁니다. 이번이 첫 의뢰자라서 적지에 치고 들어가는 마음가짐으로 신작을 한두 개 준비해두었던 건데 그게 범인에게 이용당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네요. 쇠공의 무게는 3.5 파운드입니다. 네? 이세사키 씨는 4 파운드 정도의 쇠공이라 하셨다고요? 놀라운 분이군. 뭐든지 다 꿰뚫어 보는군요. 당해낼 재간이 없네요.
아뇨, 범인이 제가 있는 쪽을 돌아서 간 듯한 기척은 없었는데요. 그래요, 제 위치가 범인에게는 알 수 없을 것 같으니 저를 비켜 가는 건 불가능한 거 아닌가요? 애초에 이세사키 쿠다유 씨라면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있는 위치 같은 건 그 분에겐 손바닥 위에 있는 것과 같으며, 다음으로 어디, 다음에는 어디로 간다는 것까지도 어둠 속에서 훤히 알 수가 있었겠죠. 다른 분들에게는 무리겠죠. 헤, 당일 고칸 씨와 가장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은 건 저일지도 모르지만 모두 심령술에 관한 것뿐이고 그 분의 신변에 위험이 다가오고 있었다는 말은 물론 한 마디도 듣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초면이었으니까요.

    타츠오의 증언
─ 나이는?
─ 31년 5개월입니다.
─ 자네는 부친을 미워하는 모양인데.
─ 크게 나누자면 좋아하는 아버지는 아니지만 미워한다고 말할 정도는 아닌데요.
─ 몇 억의 재산이 굴러 들어와서 기쁘겠구만.
─ 그야 싫지는 않지요.
─ 솔직하게 자백하게. 모두 알고 있어.
─ 뭘 알고 있단 말입니까? 제가 죽였다고 하시는 겁니까? 증거가 있다면 보여주시죠.
─ 조만간 보여주겠어. 그때 자네는 어느 쪽으로 돌아간 건가? 이토코의 뒤쪽이었지?
─ 저는 움직이지 않았는데요.
─ 미도리는 자네가 움직이는 기척을 알아 차렸다고 말했어.
─ 농담이겠죠.
─ 이토코도 같은 증언을 하고 있어. 옆을 스쳐 지나간 건 어린이와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했어.
─ 어둠 속이었다는 걸 알고 있습니까?
─ 어둠이니까 들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거야.
─ 생각을 해보세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아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재산은 제 것이 아닙니까? 일부러 죽일 필요가 있나요?
─ 버마에서 손자가 오면 재산은 자네 것이 아니게 되니까.
─ 그래서 심령술 실험회를 연 거 아닙니까? 이세사키 씨는 분명히 사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실험회 결과 아버지의 버마 방문이 불가능해질 거라고 믿고 있었으니까 아버지를 죽일 필요는 없는 겁니다. 어차피 저는 보잘 것 없는 여관의 손님맞이 지배인입니다만, 일단 생계에 곤란하지 않는 직업이 있고 다소나마 저금도 있을 정도니까 지금 당장 아버지의 재산을 얻을 필요 따윈 없습니다. 노후를 편안하게 보낼 정도로 충분하여 지금은 그런 희망과 함께 손님맞이 지배인으로 빈둥거리며 사는 편이 오히려 편하고 즐겁게 매일을 보내고 있다고요. 지금 당장 아버지의 뒤를 잇는다는 건 오히려 두려워서 바라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 이세사키 쿠다유는 요시다 야소마츠의 심령술을 칭찬했다고. 일본 제일이라고 말하더군. 버마의 손자가 있는 곳이나 이름을 알아맞히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 거라고 극구 칭찬하고 있는 걸.
─ 전 그런 말 처음 듣는데요. 이세사키 씨가 심령술의 속임수를 밝혀내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 자네의 옷에 피가 묻어 있는데.
─ 그야 아버지를 안아 일으킨 게 저니까 피가 묻어도 어쩔 수가 없지요. 그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 속에서 아버지를 안아 일으키는 역할은 당연히 제가 맡는 외에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 자네는 바보처럼 힘이 세니까.
─ 손님을 맞느라 연중 짐을 들고 다닌 덕분이지요.
─ 자네는 앉아 있는 사람을 선 채로 힘껏 찌를 수 있으니까.
─ 할 수는 있겠죠. 하려고만 한다면. 하지만 저는 하지 않습니다. 그런 위험한 다리를 건너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으면 자연히 굴러 들어올 재산이니까요.
─ 그 한 마디로 도망갈 작정인가?
─ 진실에는 많은 말이 필요 없어요. 제가 초조해져서 아버지를 죽일 필요는 털끝만큼도 없으니까요. 이걸로 할 말은 다 했습니다.
─ 완고한 놈이군. 오늘은 돌려보내지만 밤새 천천히 생각해보도록 하게.

    타니무라 경부(谷村警部)의 보충 보고.
흉기는 고칸 저택 응접실에 있던 단검. 칼집은 시체 옆에서 발견되었음. 증거물은 이것 하나뿐. 감식 결과, 지문의 검출은 성과가 없음.
당장 상황에 있어서는 현장에 동석한 전원의 용의자와 눈에 띄는 외에 유력한 증언을 얻지 못함. 위치의 관계를 보면 타츠오, 모테기, 이토코에게 가장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다른 네 명을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근거 또한 없음.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