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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가나 북스의 전자책 『심령 살인사건』 일부를 연재합니다.
* 서지정보 및 판매처 안내 : http://pegana.tistory.com/46
* 공개 기간 : 무기한


이세사키 쿠다유(伊勢崎九太夫)는 어느 날 두 미녀로부터 기묘한 의뢰를 받았다. 심령술 실험에 입회하여 속임수를 파악해 달라는 것이다. 쿠다유는 현재 여관 주인이지만 한때 명 기술사(奇術師)로 이름을 날린 바 있었다. 마술사의 눈으로 보면 심령술 따위는 유치한 손재주에 불과하여 어둠 속이기에 평범한 사람을 속일 수 있을 정도의 소재와 장치를 쓰는 사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아타미(熱海)의 여관에서도 이 심령술사를 불러서 실험회를 여는 게 잠시 유행한 적도 있었기에 쿠다유는 그쪽을 보고 〈술책도 장치도 있는 심령술 실험회〉라고 부르며 마술사의 입장에서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심령현상의 다수를 절묘하게 재연해 보았다. 대낮에 많은 관중의 눈앞에서 기술을 펼치는 마술사의 입장에서 보면 어둠 속에서 괴기현상을 보여주는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던 것이다. 그런 경력이 있었기에 심령술의 속임수를 간파해 달라는 의뢰가 와도 이상할 건 없지만, 이런 일을 개인적으로 의뢰하는 이유가 기묘하다는 것이다.
“가족 분이 심령술에 깊이 빠져들어 있어서 곤란하다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아버지께서 전사한 아들, 우리의 오빠입니다만, 그의 영혼을 만나고 싶다고 하셔서 심령술의 결과에 따라서는 버마(현재의 미얀마로 국명이 바뀌기 전에 발표한 소설이라 원문 그대로 버마로 표기한다)로 가실지 모릅니다.”
“버마에서 전사하신 거로군요.”
“아뇨, 전사하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아버지께선 믿고 계신 겁니다. 왜냐하면 한 달 정도 전에 오빠의 유령이 나타나서 버마에서 현지 여성과 결혼하여 자식 둘을 두고 잘 살고 있노라고 아버지께 말했다고 합니다. 말라리아 때문에 여위었다고 얘기한 점도 있고, 유령이 되어 나타났다는 건 죽었음에 틀림없으니까 손자를 데리러 버마에 가고 싶다고, 이를 위해 오빠의 영혼을 불러서 땅의 이름과 부인의 이름을 알고 싶다고 하셨던 겁니다.”
“그런가요? 하지만 심령술은 그렇다고 치고 죽기 직전에 영혼의 작용이 일어나는 경우는 종종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 같은데요. 그러니 오라버니께서 한 달 전까지 살아서 버마에 살고 계셨다는 건 사실일지도 몰라요.”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임종 직전에 알리러 올 정도라면 지난 9년 동안 편지 한 통 정도는 보내지 않았을까요? 아마 아버지의 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하긴. 어쩌면 기분 탓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런 이유라면 자식의 영혼과 만나고 싶다, 땅의 이름과 여성의 이름을 알고 싶다, 손자를 데려오고 싶다, 이런 마음은 불쌍하지 않습니까. 아버님의 마음이 편하도록 그냥 내버려두는 건 어떨지요.”
그러자 언니인 듯한 사람이 슬쩍 웃었다.
“사람들의 인정(人情)이라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우리 가문에서는 어리석을 뿐입니다. 아이들을 낳기만 하고 보살피지도 않았던 아버지께서 버마에 있는 혼혈아 손자만은 떠맡고 싶어 한다는 게 웃기는 일이지요. 진심이라면 광기의 산물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버마의 혼혈아라면 사자나 살쾡이처럼 기르는 데에도 돈이 들지 않고 내키는 대로 언제든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어쨌든 우리에게 있어서는 불쾌한 사건인 겁니다.”
“실례지만 아버님이라는 분은 어떤……?”
“고리대금업자인 고칸 센시치(後閑仙七)입니다. 피도 눈물도 없기로 유명한 아버지지만 우리 자식들에 대해서도 그렇지요.”
“센고쿠 여관(千石旅館)의 난쟁이 지배인 타츠(辰) 씨는 여러분의 동생인가요?”
“아뇨, 오빠입니다. 그가 둘째 오빠로, 전사한 쪽이 장남입니다. 우리 둘은 시집갈 테니까 일할 필요도 없지만 난쟁이 오빠는 저렇게 여관의 손님을 맞는 일을 하고 있고 막내 여동생은 패션모델입니다.”
언니가 쓴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여동생은 재미있다는 듯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고칸 센시치라는 이름을 듣고 과연 그렇다면 알 것 같다고 쿠다유는 생각했다. 그러나 기묘한 남매들이라고 내심 놀랐다. 무엇보다 이상한 건 네 명의 남매가 얼굴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언니인 카츠미(勝美)는 얼굴이 갸름한 미인이지만 동생인 미도리(ミドリ)는 얼굴이 둥근 미인으로 눈도 코도 닮은 데가 없다. 카츠미는 작게 오므린 입술이지만 미도리는 커다란 입으로 가끔 크게 웃는다. 막내이며 패션모델인 이토코(糸子)는 작년 아타미에서 미스 뭐시기인가 선발이 있었을 때 쿠다유도 구경하러 갔다가 본 적이 있기에 알고 있었는데, 그는 또 기이하게 쭈글쭈글한 얼굴인데도 묘하게 색기가 감도는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다. 미스 뭐시기의 3등 정도였다는 듯하다. 난쟁이인 타츠오(辰男)는 사이고 타카모리(西郷隆盛 메이지 시대의 군인이자 정치가)가 찌푸린 듯한 커다란 얼굴로, 목에서 발까지는 얼굴의 두 배 정도 길이밖에 안 된다. 손님의 트렁크를 들면 지면에 닿을락말락하게 걷지만 힘만은 셌던지 양손으로 큰 트렁크를 몇 개나 들고는 지친 얼굴도 하지 않고 걸어가는 것이다.
대체로 남에 대해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라고 해도 부모 자식의 정에 한해서는 대단히 두터워지는 게 일반적인 경우다. 자신의 피가 이어졌다는 자체로도 자신의 성(城), 안주할 땅이라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고칸 센시치는 예외적으로 엄청난 부를 쥐고서도 난쟁이인 아들에게 여관의 손님을 맞는 지배인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둘째 딸 미도리는 키시이(岸井)라는 여관의 아들에게 시집을 갔지만 작년 아타미에서 난 큰불로 타버렸다. 그때 부흥 자금을 빌려달라며 미도리의 시아버지가 울면서 애원했을 때 대금업을 하고 있으니 빌려는 주겠으나 신축 건물을 담보로 하고 이자는 이래저래 하겠다는 등 평소 영업하던 그대로의 고리(高利)를 요구하여 조금도 봐주는 기색이 없었기에 싸우고 헤어졌다는 결말을 맞았다. 카츠미도 미도리도 찾아보기 힘든 미인이었기에 시집가서 잘 살고 있지만 그렇지도 않았다면 면목이 없어 원만하게 지내기가 힘들었음이 틀림없다. 친척 관계라는 걸 센시치는 본래부터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냉혈도 여기에 이르면 센시치라는 인물을 크게 인정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이 센시치가 사람들로부터 평판을 확인한 후, 일본 제일이라 이름 높은 요시다 야소마츠(吉田八十松)라는 심령술사를 야마토의 나라(大和国 현재 나라현奈良県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부르게 되었다. 심령술에는 큰 도구가 필요했기에 그걸 멀리 떨어진 야마토에서 옮겨 오고 체류 비용 등으로 2만 엔 정도의 돈이 든다. 이자를 잔뜩 붙여 돌려받는 돈이 아니면 땡전 한 푼 낸 적이 없던 센시치가 버마에서 혼혈아 손자를 부르기 위해, 자식의 영혼을 부르기 위해 자청해서 2만 엔을 낭비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버마에 가서 손자를 데려오려고도 한다. 병원에서 손자의 출산을 시키는 것보다도 몇 백 몇 천 배나 쓸데없는 짓이지만 그런 낭비를 감수하는 속셈은 무엇일까? 난쟁이 아들이나 세 명의 딸이 타인 이상으로 이를 의심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자식들에게 땡전 한 푼 물려주지 않으려는 꿍꿍이가 아닐까 의심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버지에게서 땡전 한 푼조차 기대하고 있지 않지만 그 속셈이 아니꼬운 거예요. 억지로라도 심령술의 계략을 파헤쳐서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물론 아버지가 오빠의 영혼과 만났다는 날은 아버지 혼자였고 저희가 만난 적은 없습니다만, 그것만으론 저희 네 남매가 납득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죠. 별도로 하루 우리 남매 주최로 실험회를 열어서 아버지도 출석하는 걸 허락받았던 겁니다. 물론 이를 위한 비용과 여분의 체류 비용은 우리가 부담하게 되었습니다만 심령술사의 여비와 도구 운임까지 반은 부담한다는 고리대금의 조건이었죠. 아버지와의 상담이니까 그 정도는 각오한 이상, 아버지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려면 이 정도의 돈은 내자는 데에 저와 매제들도 마음이 맞았어요. 선생님께 사례로 충분히 드릴 생각이니 부디 출석하여 심령술의 계략을 파헤쳐 주셨으면 합니다.”
“그렇습니까? 이야기는 잘 알았습니다. 저도 심령술의 실험에 많은 훼방을 놓았던지라 그 마술사 녀석이 왔다면 오늘의 실험은 중지라고 할 정도로 미움을 받게 된 사람입니다만, 야마토의 요시다 야소마츠와는 다행히도 아직 만난 적이 없습니다. 일본 제일인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꽤 소문난 심령술사로군요. 좋습니다. 말씀대로 제가 가서 계략을 파헤치고 또한 그 직후에 제가 똑같은 일을 해내어 보이겠습니다. 대신 들키면 요시다 야소마츠가 실연을 하지 않으려 할 테니 마술사 이세사키 쿠다유가 왔다는 이야기는 기척도 내지 않도록 하십시오. 심령술에 열중한 아무개라는 식으로 대충 말씀해두시기를.”
이렇게 쿠다유도 당일 출석하기로 이야기가 결정되었다. 쿠다유에게 있어 심령술의 기술을 간파하는 일에는 이미 흥미를 잃기 시작하던 때였지만, 달리 없을 고칸 센시치 가족의 피와 돈이 걸린 일막(一幕)이란 걸 생각하니 다시 흥미진진해졌다. 눈앞의 자매는 천성의 미모와 기품을 갖춘, 벌레도 못 죽일 듯한 우아한 풍모였으나 그 진짜 성격은 어떨까. 카츠미의 말은 침착하고 조용했으나 이야기하는 내용은 무척이나 이상하고 몰인정하지 않은가. 그 마음을 사람의 형태로 드러내면 난쟁이 여관 지배인과 같은 모습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실례지만 여러분은 한 배에서 난 남매들이신가요?”
“한 배에서 난 걸로 보이지 않나요?”
“여러분 네 분은 각자 얼굴이 닮지 않았으니까요.”
“많이 닮지는 않은 모양이에요. 여러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죠. 하지만 한 배에서 난 남매입니다. 닮지 않은 건 얼굴만이 아니에요. 마음도 성격도 전혀 다르지요. 사이도 좋지 않고요. 넷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아버지를 미워하는 것뿐입니다.”
언니의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동생은 속이 시원하다는 듯 계속 웃어대었다. 쿠다유도 어릴 때부터 마술사 일을 해서 일본은 물론 해외까지 돌아다녔고 어지간한 일에는 겁을 먹지 않는 성격이었으나 이 자매에게는 조금 놀랐다. 심령술의 계략처럼 사람의 마음의 계략도 대략은 알아차릴 수 있으나 고칸 센시치 가족의 마음만은 보통 사람처럼 헤아릴 수 없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심령술의 실연보다도 고칸 씨 가족 간의 마음의 갈등을 보는 편이 다시없을 볼거리인지 모른다. 다년간 단련된 마술사의 통찰력으로 신중히 관찰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