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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속이는 인간들
헤이사쿠의 이야기에 의하면 이랬다.
그날은 저물 무렵부터 비가 내리더니 헤이사쿠가 떠날 무렵에는 심하게 퍼붓고 있었다. 헤이사쿠의 집은 마을에서 꽤나 떨어져 있어서 적어도 고개 하나는 넘어야만 했다.
헤이사쿠는 등불을 들고 선두에 서서 산길을 걸었다. 어떻게든 일렬로밖에는 갈 수 없는 길이다. 비가 퍼붓고 있는데도 오카쿠는 주문을 소리 높여서 외우고 있을 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헤이사쿠는 미끄러운 산길을 걷는 데에 온 정신을 쏟고 있지만 겨우 정상까지 오른 후에 뒤를 돌아보니 뒤에 있는 건 오카쿠와 효도뿐이고 후지오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내 바로 뒤가 후지오인데 설마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질 리가 없어.”
“고개를 오르던 도중에 오줌이 마려워서 앞질러 간 거겠죠.”
“바보야! 후지오의 책략에 속아 넘어간 거야. 이래서 사신을 떼어내고 근성을 뜯어 고치는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될 것 같은가? 이제 네놈들에게 용무는 없으니 어디든 아무데든 사라져 버려! 후지오 녀석, 이제 봐줄 수가 없어. 경찰서에서 의절을 해버리고 말겠어!”
헤이사쿠는 화를 내면서 경찰서로 돌아왔던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 오노 형사는 담배 연기를 내뿜고는 말했다.
“주문이 참으로 신묘하다고 생각했더니 그렇구만. 사이비 종교가 사람을 속인다고 하더니 이 마을의 인간들은 사교를 속이는 게 유행인가 보네. 오카쿠를 속일 수는 있어도 내 눈은 못 속이지. 후지오가 어디로 갔는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어. 함게 갑시다. 붙잡아 드릴 테니.”
오노는 일어서더니 급하게 외출 준비를 했다.
헤이사쿠를 채근하며 퍼붓는 빗속으로 뛰어 나왔다. 뒷골목에서 노지(露地)로 돌아갔다.
“쉿, 조용히.”
오노는 헤이사쿠를 남겨두고 작은 집의 문 쪽으로 다가가다가 돌연 멈추었다.
“앗, 누군가 사람이……?”
헤이사쿠는 그런 기척은 못 느꼈다.
“응? 어디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아냐. 분명히 누군가 저쪽으로 도망친 것 같은데. ……이렇게 비가 심하게 와서야. 어쩔 수 없지.”
오노는 포기하고 작은 집의 문 앞에 섰다. 문을 똑똑 두드리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오오츠키(大月) 씨, 안녕하세요.”
스무 번도 더 문을 두드린 것 같은데, 간신히 실내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오밤중에 누구세요? 여자 혼자 있는데.”
“아직 밤중이 아니에요. 9시 20분 전이오. 이제 3시간 정도 지나면 슬슬 밤중이 되겠지만.”
“누구냐? 술취한 사람인가?”
“경찰인데 잠깐 물어볼 게 있어요.”
“경찰? 흥, 누구지? 술에 취해서.”
“문을 여시오! 야마다 후지오(山田不二男)에 대해 묻고 싶은 게 있어요.”
갑자기 오노가 큰소리로 단호하게 말하자 실내의 여자는 당황했다. 문이 열렸다.
“뭐지. 오노 씨인가? 무슨 용건?”
서른 서넛 되는 여자. 히사(ヒサ)라는 미망인으로 행상일을 한다. 세련된 외모이지만 무언가 소문이 끊이지 않는 인물이다.
“후지오가 와 있죠?”
“안 왔는데요.”
“흥. 누구와 자고 있지? 안에 있는 남자는 누구요?”
“아무도 안 왔어요.”
“진짜? 들어가 보겠소.”
“그러시죠. 사람을 너무 모욕주지 마세요. 이웃집이 있으니까요.”
“이웃들은 이미 익숙해졌겠지.”
오노는 서슴없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미닫이문을 드르륵 여니, 안에는 방 하나 뿐이라 도망갈 장소도 없다. 이불 속의 남자도 이미 일어나서 체념한 모양이었다.
“여, 스즈키인가? 스즈키 코스케(鈴木小助)군, 의외의 인물일세. 마누라에게 일러바치겠어.”
오노는 코스케를 내려다보면서 씩 웃었다. 이 마을 장사치들의 대장격인 남자다.
“나쁜 짓을 한 기억은 없소. 얼른 나가쇼.”
“응. 좋은 일을 했을 뿐이라 이거지?”
오노는 빈정대긴 했으나 포기하고 신발을 신었다.
“하나만 가르쳐주시오. 방금 후지오가 여기에 왔을 텐데.”
“아무도 안 왔다니까요.”
“아무도가 아니라 후지오 말이오. 2~30분 전에 문을 두드렸을 거요.”
“몰라요. 자고 있었으니까.”
오노는 퍼붓는 빗속으로 나왔다. 뒤에서 문이 탁 닫히고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 도망친 게 후지오야. 그놈, 모처럼 그리운 여자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는데도 먼저 온 손님에게 쫓겨나서 안을 엿보고 있었던 모양이야. 이렇게 쏟아지는 빗속에서 고생도 많았구만. 미망인 행상에게 매달려 봤자야. 감기에 걸릴 뿐이지.”
후지오에게 여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있던 헤이사쿠는 그게 바로 저 여자인가 생각했다.
“저 여자는 미망인인가?”
“히사라고 하지. 마을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인데 장난을 좋아하는 여자지. 남자가 몇이나 있는지 알지도 못해. 조만간 피바람이 불지만 않으면 좋으련만, 후지오도 조심해야 될 걸……”
큰길에서 헤이사쿠는 오노와 헤어졌다. 조만간 피바람이 불지 않으면 좋으련만…… 오노의 한 마디가 그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쁜 여자에게 휘둘려서 괴로워하는 거야.’
후지오 때문에 자신의 집안이 엉망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종전 후 2정보(町步 농지 면적의 단위. 1정보는 약 10000㎡)였던 논밭을 5정보로 늘리고, 산림도 사들이고, 마을에선 확고부동한 역할을 맡는 지주의 한 사람이 되어 공안위원까지 되었는데도 후지오 때문에 사람들의 존경을 못 받고 있다.
‘내가 겨우 이 정도의 재산을 쌓았는데도 자식놈 때문에……!’
속이 끓어오르는 것만 같다. 그의 야망은 크다. 그의 안중에는 새로운 농지법 따위는 없다. 그의 머리에 가득한 것은 옛날부터 전해지는 농촌의 전설이다.
태양이 이쪽 산에서 떠서 저쪽 산으로 질 때까지의 토지가 전부 자기 것이 되고, 새벽닭이 울 때마다 황금이 한 되씩 늘어나는 부자가 되고 싶은 거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임금님처럼 떠받들어져, 그가 들판을 걸으면 허수아비 이외의 모든 인간이 진흙 속에 웅크리며 엎드려 절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곡식도, 모든 산의 초록도 그 자신의 것이다.
‘내 맘대로 안 되는 건 태양뿐이다. 구더기 같은 인간 따위가 내게 감히 말조차 건넬 수 없도록 되어야만 하는데……’
꿈같은 일을 생각한다. 문득 정신이 들면 꿈을 배반하는 현실 앞에서 무엇보다도 속을 끓어오르게 만드는 건 후지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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