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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에 걸린 신
헤이사쿠가 퍼붓는 빗속을 뚫고 지친 채로 집에 돌아오니 집 토방에서는 난리법석이 일어나고 있었다. 토방에 오카쿠와 효도가 실랑이를 벌이면서 들어가네 마네 하며 부인인 오츠네(お常)와 다투고 있던 것이다.
오츠네는 헤이사쿠를 보더니 달려왔다.
“어떻게 된 거야. 어디서 헤매다가 이제 온 거예요?”
“후지오를 찾아다녔는데.”
“후지오라면 벌써 돌아와서 잠들었어요.”
“그랬나? 한 발 먼저 돌아왔던가.”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 작정이에요? 후지오에게 붙은 사령(死靈)이니 암여우니 하는 걸 떼어준다니? 당신이 부탁했다는데 정말인가요?”
“그게 말야, 처음엔 부탁했는데 나중에 거절했어. 하지만 아무튼 이렇게 비가 퍼붓는데 쫓아내는 것도 안 될 일이니까 오늘밤만은 마구간에라도 묵게 해주지. 당신들, 밖으로 나가! 우리집에 들어오려고 하다니 뻔뻔스러운 놈들. 정 때문에 오늘밤만은 마구간에서 묵게 해줄 테니 짚을 깔고 자라고.”
헤이사쿠는 오카쿠와 효도를 마구간으로 데려갔다.
원래부터 헤이사쿠가 왜 오카쿠를 자기 집에 데려가려는 마음을 먹었냐고 하면, 후지오의 마음씨를 고치자는 생각이 아니라 진베에의 집에서 일어난 사건에서 힌트를 얻었기 때문이다.
후지오가 오카쿠의 신자가 되었다고 듣고는, 이 녀석은 됐다고 생각했다.
헤이사쿠는 신흥 종교 같은 것에 특별한 관심은 없었고 교조니 행자니 하는 것들을 그저 인간, 오히려 구더기 같은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점쟁이는 손님을 망자(妄者)라고 부르지만 그 역술가도 자신의 미래를 점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걸 보면 망자 이하의 구더기가 아닐까. 구더기의 신통력 따위야 멍청해서 생각할 가치도 없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구더기 이하의 바보가 존재하는 것도 분명하니, 예를 들면 구더기의 신자가 되는 바보가 있다. 그런 바보에 대하여 구더기가 일단은 신통력이 있음은 확실한 것이다.
‘신자는 교조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오카쿠에게 뇌물을 먹여서, 후지오를 생각대로 조종하도록 시키도록 만들 수만 있다면 단숨에……’
진베에는 자신들의 솜씨가 형편없어 탄로가 났으나 만사신(万事神)님의 신통력에 맡겨버리면 탄로 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으로 오카쿠를 집으로 초대할 마음이 들었으나 후지오의 신심이 경찰을 속이는 수단이었고, 귀가하는 도중에 헤이사쿠를 따돌리고 도망쳐버렸으니 헤이사쿠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서 오카쿠를 저주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헤이사쿠의 마음이 또 바뀌었다. 후지오에게 저런 나쁜 여자와 친구들이 있다면 얼른 빨리 후지오를 정리해버릴 필요가 있다. 헤이사쿠의 머리에는 오노의 말이 새겨져 있다.
‘조만간 피바람이 불지 않으면 좋으련만……’
그 의심 많은 형사라도 히사에 대해서는 피바람이 불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이 녀석을 이용하면 될 거야. 히사 때문에 후지오가 죽었다고 보일 수만 있다면……’
새로운 생각이 헤이사쿠의 머리에 떠올랐다.
헤이사쿠는 오카쿠와 효도를 마구간으로 데려가 짚 위에 앉혔다. 헤이사쿠는 등불을 가운데에 놓고 둘을 노려보며 말했다.
“오카쿠는 과연 훌륭한 행자로 보이는구려. 후지오에게 달라붙은 사신과 암여우가 보이는 모양인데 사실인가?”
“보이고말고. 홀린 인간에게는 그림자가 자욱하게 끼여 있는 법. 여우의 울음소리도 들린다오.”
“뭐야, 그림자나 목소리밖에는 보거나 들을 수 없는 건가? 내게는 후지오에게 붙은 사신과 암여우의 모습이 분명히 보이는데. 사신도 암여우도 후지오의 등에 달라붙어서 양손을 목에 감고 양다리를 허리에 휘감아서 등나무에 얽힌 덩굴처럼 착 달라붙어 있어. 사신 녀석은 오른쪽 어깨에, 암여우 년은 왼쪽 어깨에, 후지오의 얼굴을 한가운데에 두고 마치 얼굴이 세 개 있는 괴물 같은데 몸은 몇 백 살이나 먹은 등나무 덩굴이 얽힌 것처럼 일체화되어서 풀어줄 가망이 없어.”
“아니, 내가 법력(法力)으로 떼어 놓겠소.”
“네놈은 그림자 정도밖에는 보이지 않는 주제에 뭘 대단한 듯이 말하는 거야? 내게는 제대로 보이고 있지만 그래도 어쩔 도리가 없단 말야. 이렇게 강한 집념으로 달라붙어 있으니 여간해서는 떼어놓을 수가 없는 거다. 잠깐 기다려봐.”
헤이사쿠는 소매로 등불의 불빛을 감추면서 귀를 기울여 보이더니 말을 이었다.
“흠, 아무래도 헛들은 모양이군. 사신과 여우는 의심이 많으니까 근처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으면 곧바로 눈치 채고 발꿈치를 들고 다가와 듣게 마련이야. 큰소리를 내면 들키니까 너희들도 앞으로 다가와라. 등불이 있으면 상태가 나쁘니까 불을 끄겠지만 너희들 한손을 내밀어라. 저마다 한손을 꼭 쥐고 마음을 합쳐서 상의를 하자고. 그러지 않으면 사신과 여우가 사이에 끼어들어 엿듣고 만다고. 알겠나?”
헤이사쿠는 왼손으로 오카쿠의 한손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효도의 한손을 잡았다.
“너희들도 각자 손을 꽉 쥐는 거다. 잘못해서 사신이나 여우의 손을 움켜쥐는 일이 없도록 등불의 불이 있는 동안에 다시 한 번 제대로 확인하는 게 좋아. 불을 끄고 나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손을 놓거나 바꾸거나 해서는 안 돼. 조금이라도 힘을 뺐다간 사신과 여우의 손으로 슬쩍 바뀔 수가 있으니까. 알겠나? 꽉 잡으라고. 그러면 등불의 불을 끄겠어.”
헤이사쿠는 얼굴로 눌러 덮듯이 하여 등불의 불을 껐다. 삽시간에 마구간은 어두워졌고 촛불의 심에 잠은 작은 빨간 점만이 홀홀 타고 있다.
“그럼 이걸로 좋다. 그럼 말하지만 사신과 여우의 양팔과 양발은 후지오의 목과 허리 살 속까지 파 들어갔기 때문에 놓을 수도 없고 사신과 여우만 죽일 수도 없어. 삼위일체와 같은 거다. 후지오를 돕기 위해 후지오의 신체만 그대로 두고 구하는 건 무리인 거다. 심장도 머리도 겹쳐져 있어서 하나가 되어 숨을 쉬고 있으니 어떻게든 한 번은 후지오의 숨을 멈추지 않으면 사신도 여우도 떼어낼 수가 없어. 후지오의 등에서 심장이 있는 곳을 콱 찌른다. 단도의 칼끝이 심장을 뚫고 지나 반대쪽으로 튀어나올 때까지 찔러야만 해. 이렇게 하여 옆으로 쓰러뜨리고 나서 다음으로는 후지오의 목을 잘라낸다. 조금이라도 피부가 붙어 있어서는 안 돼. 싹둑 잘라내어서 몸과 머리를 나누어놓지 않으면 안 돼. 그렇게 하면 사신과 여우의 목이 잘리는 거다. 이렇게 해서 사신과 여우를 떼어놓을 수가 있어.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달리 떼어놓을 방법은 없는 거다. 어떤가, 자네들은 이해할 수 있나?”
오카쿠는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말했다.
“그렇다, 그렇다, 그 말 대로다. 그렇게 하면 사신과 여우를 떼어놓을 수 있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떨어뜨릴 방법이 없어. 셋을 포개놓고 심장을 칼날 끝까지 찌른다. 세 머리를 겹쳐놓고 한 번에 잘라낸다. 그렇게 해야만 하오. 그렇게 하면 반드시 사신도 여우도 떼어낼 수 있소.”
“그래. 하지만 말야, 남들에게 보이면 할 수가 없어. 후지오를 산으로 꾀어내어,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깊은 산속에서 하지 않으면 안 돼.”
“그렇고말고. 나는 산신의 행자이니까, 산신의 무릎 밑으로 유인하여 해내지 않으면 안 되오. 닛코(日光 토치기현栃木県 북서쪽에 있는 도시)의 산속이 좋아. 닛코로 유인하여 하지 않으면 안 돼.”
“그렇다. 닛코에 있는 난타인산(男体山) 깊숙이에서 해야만 하느니. 쥬구시(中宮祠) 뒤의 골짜기 깊숙이에 있는 대나무숲 속에서 해야만 하느니. 그걸 하는 건 효도의 역할인데 효도는 할 수 있겠나?”
“그렇다, 그렇다. 그걸 하는 건 키요시의 역할이다. 키요시는 반드시 할 수 있어. 뒤에서 심장을 깊숙이 찌르고 목을 잘라내는 거야. 반드시 해낼 수 있고말고!”
효도도 한기와 흥분으로 돌처럼 긴장한 상태로 덜덜 떨고 있었으나 이렇게 말하니 무릎부터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더니 이빨을 시계처럼 따닥따닥 울리면서 말했다.
“예, 제가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저도 옛날의 제가 아니야. 지금은 신을 보는 것도 목소리를 듣는 것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층 노력하여 훌륭한 행자가 되어 보이겠습니다. 후지오의 사신과 여우는 제가 싹둑 잘라내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헤이사쿠는 힘을 주어 둘의 손을 쥐고 물결처럼 흔들면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두 사람의 광신도가 이를 따라서 합창하기 시작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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