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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연재

감방 - 하시 몬도

pilza2 2013. 7. 31. 18:00
* 페가나 북스의 전자책 『감방 - 일본 추리소설 단편집 2』 일부를 연재합니다.
* 서지정보 및 판매처 안내 : http://pegana.tistory.com/109
* 공개 기간 : 무기한

감방
하시 몬도
監獄部屋 /羽志主水

◈ 읽기 전에 알아두면 좋을 내용들
이 소설은 과거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있었던 열악한 노동현장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1900~1940년대까지 존재했던 이런 제도를 문어방제도(タコ部屋制度)라고 부르는데, 노동자를 죄수나 노예처럼 취급하며 감금, 폭행을 서슴지 않는 등 인권을 무시하는 일이 자행되었습니다. 이 악습은 2차 대전 후 미군정의 민주화 정책에 의해 사라지게 됩니다.
이때 쓰였던 용어 중에서 소설 본문에도 나오는 것을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윗밥상(上飯台) : 관리와 간부들을 가리킵니다. 계급에 따라 각자 다른 식탁에서 식사를 하는 규칙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돈과 물품을 관리하고 노동자를 감시·감독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목욕과 식사, 술을 마음껏 할 수 있는 등 제일 좋은 대우를 받습니다.
중간밥상(中飯台) : 노동자 중에서 간부의 마음에 들어 뽑힌 이들로 작업 내용은 아랫밥상과 큰 차이가 없으나 급료를 더 받는 등 비교적 좋은 대접을 받습니다. 도망자가 생기면 잡아오는 역할도 합니다.
아랫밥상(下飯台) : 감시와 학대를 당하며 일하는 노동자들입니다. 노동자 개개인은 문어(タコ)라고 불립니다. 식탁 자체가 없어 식사도 선 채로 해야 하고 술은 자기부담으로 사서 마셔야 하는 등 대우도 안 좋으며 숱한 가혹 행위를 당합니다. 이들이 지내는 숙소는 문어방(タコ部屋) 혹은 감방(監獄部屋)이라 불립니다.

참고 문헌 : 北辺に斃れたタコ労働者 / 小池喜孝
http://www.h2.dion.ne.jp/~cha2/essay/kaitaku/main.htm

1
같은 구역에서 일하고 있는 야마다(山田)라는 남자가 속삭였다.
“이봐, 아무래도 말야, 가까운 시일 내에 정부 관리 중에서도 높은 사람이 순찰하러 온다던데.”
“뭐, 그게 정말이야? 언제쯤 온다던가?”
“글쎄, 그건 모르겠지만서도 이번엔 지금까지 왔던 도청(道廳)의 시시한 공무원들과는 다르다니까 어떻게든 결판은 나겠지. 몇 번이고 대충 얼버무려 넘어갔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지. 만일 이번에도 안 된다면 세상은 시커먼 암흑이야.”
“그렇고말고. 어쨌든 관리가 온다 해도 쉽게 당하지 않을 악당들이니까 말야. 여태껏 왔던 허접한 관리들은 속이거나 협박을 하거나 뇌물을 주거나 하면서 해결했지만 도쿄에서 거물이 와준다면 상황이 다르거든. 이번에는 그런 꼼수로는 안 될 걸. 어떻게든 하루라도 빨리 와서 우리가 당하는 이 지옥의 고통을 해결해줘야만 해. 목숨이 몇 개라도 버틸 수 없을 것 같단 말이야.”
“그래, 확실하게 조사하여 이 압제(壓制)를……”
그때 갑자기 가까운 곳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 놈이냐! 뭘 수근거리는 거야? 힘 바짝 안 주면 죽는다!”
제석천(帝釋天 불교에서는 불법佛法의 수호신이며 힌두교에서는 하늘과 전쟁의 신 인드라)이라는 별명을 가진 십장 타니구치(谷口)였다.
“일하는 손 느려지지? 틈만 나면 게으름 피울 궁리만 하고 말이야. 서로 도망칠 모의라도 하기만 해봐라. 내일 뜨는 태양을 보지 못할 줄 알아!”
실제로 멍하니 있었다간 가차 없이 얻어맞거나 걷어차여 쓰러지거나 할 테니 군말 없이 노동에만 힘을 쏟아야 했다. 그러나 매의 눈 같이 날카로운 십장의 눈길이 조금만 느슨해질라 치면 아까와 같은 대화가 이어졌다. 그렇게 바깥 조에도, 또 그 외의 조에도 발 없는 말이 천리를 달려서, 단 하루 만에 현장 안으로 소문이 쫙 퍼졌다.

2
말은 현장이라고 하지만 마루노우치(丸ノ内)의 빌딩 건설 현장도, 오사카 요도야바시(淀屋橋) 다리 공사장도, 관문연락석(関門連絡線) 공사장도 아니다. 과거 키누가와(鬼怒川) 수력발전소 수원지 공사 때 세상에 알려진 상황보다 몇 배나 나쁜, 지금 다이쇼(大正) 태평성대에 여기 홋카이도(北海道) 키타미(北見)에 있는 ×××강의 상류에 있는 수력발전소 토목공사장이라는 표면상의 모습을 한, ‘감방’이라는 통칭이 몇 배나 알기 쉬운 이곳은 바로 이 세상에 있는 지옥이다.
나와 같은 운명에 처한 인간은 여기에 대략 3000명 정도 있다고 하는데 구성원은 끊임없이 바뀌어 왔다. 일의 적합성이니 노동시간이니 영양이니 휴식이니 하는 걸 전부 무시하고, 억지로 시키는 과격한 노동을 통해 인간의 노동력을 가능한 대량으로, 가능한 단시간에 쥐어짰다. 착취당한 인간의 찌꺼기가 속속 죽어나가면 한편으로 새로이 유괴당한 이들이 문어(タコ) 유괴자에게 인솔되어 줄줄 딸려 왔다.
3000명 중에는 자신의 어두운 과거의 그림자에게 쫓겨 스스로 뛰어 들어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학생, 점원, 공장 노동자 같은 사람이나 지방의 농촌에서 성공을 꿈꾸며 훌쩍 대도시로 올라와 헤매는 사람이 대부분이니까 어느 정도 머리에 든 것도 있고 하니 토목공사라는 막일은 맞지 않는다. 거기다 압착 기계처럼 쥐어짜지는 방식에는 도저히 견뎌낼 수가 없다. 동쪽 하늘이 밝아지면서 혹사가 시작되는데 휴식시간은 충분치가 않고, 녹초가 되어서 조금이라도 손이 느려진다 싶으면 지옥의 옥졸 같은 파수꾼들의 쇠뭉둥이가 가차 없이 날아왔다. 저녁 무렵 겨우 돌아온 숙소는 속박되었다는 점에선 감옥과 마찬가지지만 질서나 청결이라는 점에서는 도저히 비교대상이 되질 않았다. 감방이라는 별칭은 교도소 쪽에서 취소해 달라고 부탁할 것임이 틀림없다.
쥐어짜진 찌꺼기 인간의 초라한 죽음은 그나마 행복한 편이었다. 사회─사바세계─에서 말하는 국장(國葬)에 해당하는 격이다. 아직 다 쥐어짜지 못하고 약간의 생기를 남긴 인간은 괴로운 나머지 반항을 하거나 구사일생을 바라며 도망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늘 판에 박힌 듯 오직 〈죽음〉으로 끝날 뿐. 그 죽음의 형식 중에서 참살(斬殺), 척살(刺殺), 총살(銃殺)은 그나마 정을 베푼 편이었다. 때로는 울분을 풀고 때로는 모두에게 본보기로 보이기 위해 압살(壓殺), 박살(撲殺)에 가끔 시험 삼아 분살(焚殺) 즉 태워 죽이기까지도 이루어진다. 무리를 짰다가 붙잡힌 자들은 한꺼번에 열 몇 명씩 몰살된 적도 있었다.
이 세계에선 이런 처형 방법이 남성적이라면서 거리낌 없이 이루어졌다. 반면 사기, 방화, 독살과 같은 우회적인 방법은 여성적이라며 좀처럼 행해지지 않았다. 이 세계에서 양심과 온정은 죄악이며 정의와 눈물은 어리석음이었다. 완력과 위협이 도덕이며 인내와 교활이 법률이었다. 살인, 상해, 능욕, 공갈이 일상다반사로 아무 이유도 없이 태연히 일어나고 태연히 결말지어졌다. 매춘부에게 성도덕이 발달하지 않는 것처럼 이렇게 살인이 공인된 세계에선 추리소설이 생겨날 수가 없다.

3
이 야마다라는 남자는 와세다(早稲田)에 있는 동안 불온한 사상에 빠져 과격한 행동을 했다가 도중에 내쫓겨 나온 후에 여자에게 속았다던가 해서 자포자기하여 죽을 작정으로 여기까지 흘러들어왔다고 한다. 근근이 버티긴 해도 힘쓰는 일에는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스스로는 사상을 선전하기 위해 있는 거라고 전부터 말해왔고 나도 설교를 들었던 적이 있다. 그러던 그도 학대에는 참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온다면 언제쯤일까? 얼핏 들은 이야기라 기다리다가 애가 타서 죽겠구만.”
“나도 마찬가지야. 오늘 들었는데 이삼일 전에 끌려 들어온 허여멀건한 도쿄출신 웨이터 녀석이 그러더군. 의회에서 정부를 욕하는 것밖에는 할 줄 모르는 의원 하나가 꽤 날카롭게 ‘감방’에 대해서 내무대신(内務大臣)을 공격했다네. 그래서 대신은 책임 회피를 위해서라도 관료들에게 조사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파견을 명했다는 거야. 어차피 의회가 회기 중이니까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걸. 다만 말야, 이런 일목요연한 사실을 저 산귀신들은 어떻게 얼버무릴까? 도저히 짐작이 가질 않는데.”
“저놈들은 어떤 수단이든 다 취하고 보는 악당 집단이니까. 그래봤자 어차피 직접 만나 인사를 할 때가 올 텐데 내가 지금껏 사상을 고취했던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나? 이때다 싶어서 관리 앞으로 튀어나갈 건 분명하고 다만 어떻게 이치에 맞게 잘 이야기를 할 것이냐가 문제지. 거 왜 옆 숙소에 매춘부를 죽였다는 키무라(木村)라는 놈이 있잖나? 그놈도 누가 뭐라든 다 떠벌일 거라고 하니까 말야, 그런 놈들 너덧 명쯤이 앞에 나서서 다 까발리면 나중엔 다들 기운을 내서 입을 열게 되겠지. 그리 되면 벌집을 쑤신 듯한 꼴이 되어서 이삼백은 되는 악당 놈들도 허둥지둥 댈 거야. 꼴좋지. 목숨을 내던질 각오라면 어떻게든 될 거야!”
피해자의 희망과 환희는 곧 학대자의 우려인 것이다. 사람들의 희망이 해를 좇는 파도와 같이 높아짐과 동시에 윗밥상(上飯台) 패거리와 간부들의 처참한 안색은 점점 깊어진다. 조금도 방심하지 않는 눈은 점점 빛나고 귀는 점점 뾰족해진다.
“오늘도 또 우두머리 놈들은 회의실에 모여 있지만 조심스러운 눈치야. 꽤 오래 틀어박혀 있는 모양이던데. 제일 성격이 더럽고 잔혹한 염라대왕 영감은 요 이삼일 동안에도 흐트러진 기색은 없는 듯했지만 혼자 있을 때 가끔 한숨을 내쉬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나름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지.”
“그야 자기들이 한 나쁜 짓은 알고도 남을 테니 신경이 안 쓰일 리 있겠나. 한숨도 내쉬고 말야…… 쉿, 조용히! 제석천이다.”
“야야! 이 새끼들 또 게으름 피우는구만. 뭘 꿍얼대는 거냐? 야, 인마(야마다를 향하며), 먹물 너 또 무슨 설교를 늘어놓고 있는 거냐?”
“응? 아무 얘기도 안 하고 있었는데.”
“뭐야? 이 새끼는 도대체가 사사건건 건방지단 말야. 명령만 떨어지면 확 불태워버릴 테다. 거기 네놈들, 오늘은 특별히 5시간 만에 조퇴시켜줄 테니까 너네 담당 구역하고 방 주위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청소를 해. 그리고 또 한 가지 말해두지만 네놈들, 말을 할 때 앞뒤를 잘 생각하란 말이다. 무심코 떠벌이다 택도 없는 실수를 일으키고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하나밖에 없는 목숨 소중하게 여기는 게 좋아. 아깝게 날려버리지 말란 말이다.”
십장은 긴말을 늘어놓고 쏘아보면서 느릿느릿 가버렸다.
“하나뿐인 목숨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놈의 목숨이래봤자 평균 3개월이야. 늦든 빠르든 마찬가지다.”
“근데 저렇게 강조를 하면서 대비를 하는 것도 어차피 늘 하던 짓거리가 아니냐……. 저놈들도 꽤나 다급한 모양이지.”
“어이 잠깐, 그것보다 조퇴하고 청소를 하라니, 드디어 내일이면 온다는 소리잖냐!”
“그러 게 말야. 나도 아까부터 그 말을 하려고 생각했었어. 무엇보다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야. 살았구나!”
환희의 빛이 모두의 얼굴에 넘쳐흘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