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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가나 북스의 전자책 『해이기 - 일본 환상소설 단편집 2』 일부를 연재합니다.
* 서지정보 및 판매처 안내 : http://pegana.tistory.com/108
* 공개 기간 : 무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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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 기간 : 무기한
3
나도 정신없이 여관으로 달려가 카운터에서 방석을 상자째로 꺼냈으나, 이미 그때는 안쪽에서 남자들이 하나둘 이불을 짊어지고 나오는 때였다.
“유키(幸) 씨! 정신 차려요! 이제 괜찮아! 지금 의사 선생님이 오셨어! 곧 의사 선생님이 오실 거야!”
“안주인(お内儀)님! 괜찮대요! 여동생은 구해질 거야! 마음을 단단히 드세요! 괜찮으니까 정신을 차려요!”
소란스러운 속에서 각자 열을 올리는 목소리가 어지럽게 귀를 때렸다. 그리고 모여 있던 여자들이 마침내 참을 수 없게 되었던지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소리나 훌쩍거리는 소리가 동시에 여기저기서 솟아났다.
그리고 내가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몸을 떨면서 끄집어낸 이불 뒤에 붙었다가 다시 밖으로 뛰쳐나갔을 때는 이미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가까스로 달려들어 이불을 덮어서 세 사람의 불을 꺼뜨리려는 무렵이었다. 지직 하고 피부가 타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역겨운 비린내가 코를 확 때렸고, 사람들 오고 갔다가 흩어진 흙부대 같은 이불 틈새로 왁자지껄한 검은 그림자가 큰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그래도 겨우 살아났구나 하고 남의 일이지만 나도 안도했으나 마침 그때였다. 꺅! 하는 비명도 아니고 절규도 아닌 이상한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내 눈앞을 가로막고 있던 인파가 한꺼번에 무너졌다.
그 사람의 눈사태에 부딪쳐 넘어질까봐 몸을 돌려 피한 순간, 무너진 사람 울타리 사이에서 나는 봐선 안 될 것을 보고 말았다. 둥글게 덮인 이불 밑에서 부스스 일어난 여자가─너덜너덜하게 타버린 기모노 차림을 보고 나도 분명 그를 나이든 여자라고 여겼는데─돌연 헤엄치는 듯한 발걸음으로 비틀거리며 일어서서 두세 걸음 걷기 시작하나 싶더니 이내 풀썩 쓰러졌다.
“안 돼, 안 돼! 이제 다들 도와준다고 하는데도! 안주인님! 움직이면 안 되잖아요!”
뒤에서 남자 하나가 그렇게 외치면서 서둘러 이불을 펼쳐들고 달려오는 무렵이었다.
시간으로 치면 겨우 5초에서 10초도 되지 않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평생 잊을 수 없는 영상을 뇌리에 새긴 것은 일어섰을 때 보인 그 안주인의 얼굴이었다. 머리카락도 눈썹도 피부도 완전히 짓물러지고 머리 가죽이 벗겨져버린 듯 머리와 얼굴의 구별도 안 가고 그저 몽달귀신처럼 부어오른 모습이었다. 이미 시각도 잃어버렸겠지. 엉뚱한 방향으로 비틀비틀 걸어가던 그 순간의 얼굴이었다.
저도 모르게 나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 순간! 쓰러져 위에서 이불이 확 덮여졌다 싶더니, 무서운 것일수록 보고 싶다는 생각 탓인지 한 번 무너졌던 사람 울타리가 다시 북적거리며 주변을 둘러쌌다. 곳곳에서 우는 소리가 한층 격렬하게 일어났다.
“언니가 되면 역시 여동생이 걱정이 되는 거야.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안주인님, 염려하실 것 없어요! 당신의 일념 덕에라도 여동생은 꼭 살아날 거야!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그렇게 입속에서 염불을 외우고 있는 할머니도 있었다.
나는 그날 밤 막 도착했을 뿐이라 묘한 억양이 있는 이 땅의 사투리에 익숙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의 의미를 제대로 몰랐지만 아마 의사나 병원의 이름을 각자 부르는 거라고 생각했다. 흔들리는 초롱의 불빛이 점차 늘어나고 순경과 의사도 달려오면서 인파와 소동은 점점 도를 더해갔다. 주머니에 찔러 넣은 내 손에 갑자기 소매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물건이 닿았다. 경우가 경우인 만큼 나도 모르게 움찔하며 돌아보니 거기에는 키미타로가 커다란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묻는 듯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보고 있었어?”
“으응.”
물었더니 속눈썹을 깜빡거리며 대답했다.
“살아날까?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어.”
키미타로는 젖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 안에서 키미타로의 가느다란 손을 쥐었다. 나도 이때만큼 키미타로를 사랑스럽게 느낀 적은 없었다.
이 세상이라는 건 언제 생각도 못한 재난이 덮칠지 알 수가 없는, 한 치 앞도 모르는 세계이니까 엉뚱한 야심 같은 건 품지 말고, 이제 도쿄에도 어디에도 가지 말고 어딘가 홋카이도 해안에라도 가서 키미타로와 함께 살림을 차리고 생애를 보낼까, 라는 가슴이 북받치는 감회를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손을 쥐면서 서있는 키미타로와 나의 관계가 기생과 손님이라든가, 기생과 그의 애인이라든가 하는 식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고, 내게는 마치 의지할 곳 없는 여동생의 손이라도 끌면서 이 엄숙한 인생의 사건을 응시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가슴 가득히 채우면서 나는 그렇게 망연히 서있었다.
“벌써 옮겨졌네. 자, 들어가요. 네?”
불운한 사람들을 향해 합장을 한 키미타로에게 떠밀려서 나도 겨우 방으로 돌아갔다. 혹한기 홋카이도의 한밤중은 아마 영하 5도 정도는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눈치 채지 못했지만 방으로 돌아옴과 동시에 추위가 몸을 덮쳐 몸이 덜덜 떨렸고 갑자기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입만 못 움직이는 정도가 아니라 눈이 맑아지며 바닥에 기어들어가도 잠이 오질 않았다. 그저 눈가에 어른거리는 건 방금 그 비틀거리며 일어나던 때의 얼굴도 머리도 구별이 안 가던 몽달귀신 같은 안주인의 모습뿐이었다.
“……도저히 잠이 안 와! 잠깐 일어나지 않을래? 일어나서 술이라도 마시며 이야기를 하자.”
일단 바닥에 누웠던 키미타로가 그렇게 말하며 벌떡 일어나는 걸 기회 삼아서 나도 이불을 젖혀버렸다.
활활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스토브 틈틈이 귀를 기울이니 밖은 아직 웅성거리고 아래층에서도 깨어나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아직 모두 이상한 사건의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술상을 가져온 여종업원은 심장 고동이 가라앉지 않은 듯 새파란 얼굴을 하고 말했다.
“엄청난 소동을 일으켰네요.”
이어서 마치 자기가 실수라도 저지른 듯이 사과를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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