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들 - 로드 던세이니

* 페가나 북스의 전자책 『몽상가의 이야기』 일부를 연재합니다.
* 서지정보 및 판매처 안내 : http://pegana.tistory.com/124
* 공개 기간 : 무기한 (10/30~11/11 이후 일부 공개)

거지들
The Beggars

얼마 전에 나는 피카딜리(Piccadilly)를 걸으면서 동요와 그리운 옛 로망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점원들이 시커먼 프록코트와 모자 차림으로 지나다니는 걸 보면서 옛날 동요집 속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붉은 옷을 입은 런던의 상인들.’
거리는 로망도 없고 따분하기만 했다. 아무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그때 개가 짖는 소리에 생각은 방해를 받았다. 거리에 있는 모든 개가 짖는 것만 같았다. 온갖 종류와 크기를 한 갖가지 개들이 말이다. 개들은 전부 내가 걸어온 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피카딜리 거리의 집들이 늘어선 쪽과 반대쪽, 택시 주차장을 지난 곳에서 이 광경이 보였다.
키가 크고 등이 굽은 남자들이 커다란 외투를 입고 줄을 지어 거리를 걷고 있었다. 창백한 피부와 거무스름한 머리카락에 대부분 낯선 턱수염이 있었다. 그들은 지팡이를 짚으며 천천히 걸었고 손을 내밀어 적선을 청했다.
거지란 거지는 전부 마을로 온 모양이었다.
나는 카스티야(Castile) 탑이 새겨진 옛 스페인 금화를 주려고 했지만 마침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택시 요금으로 쓸 만한 동전을 주기에는 걸맞지 않은 것 같았다(오, 택시라니 이 얼마나 나쁜 낱말인가. 어딘가 사악한 곳으로 이끄는 암호임이 분명하다!). 그들 중엔 초록색 줄무늬가 들어간 보라색 외투를 입은 자가 있었는데 그 줄무늬는 다른 천에서 잘라낸 것이고, 낡고 빛바랜 붉은 외투를 입은 자나 연보랏빛 외투를 입은 자도 있었는데 검은색은 없었다. 그들은 신들이 영혼을 구걸하듯이 매우 우아하게 구걸을 했다.
내가 가로등 옆에 서있자 그들은 이쪽으로 다가왔고 한 명이 가까이 와서 가로등을 향해 형제라고 부르며 말을 걸었다.
“오, 가로등이여, 어둠의 형제여. 밤의 파도 속에서 그대 곁에 얼마나 많은 난파선이 지나갔던가? 잠들지 말지어다, 형제여. 잠들지 말지어다. 그대가 없으면 수많은 난파선이 생길지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가로등의 존엄이라든가 방황하는 인간을 오래도록 지켜봤다든가 하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이 외투를 걸친 낯선 이들에게 있어 가로등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
이어서 한 사람이 거리를 향해 속삭였다.
“지루한가, 거리여? 조금만 더 사람들을 지나가게 하라. 그리고 타르와 목재를 몸에 잠시만 더 두르고 있도록 하라. 참고 견뎌라, 거리여. 지진이 찾아올 때까지만.”
사람들은 말했다.
“당신들은 누구요? 어디에서 왔소?”
그들은 대답했다.
“누가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누구며 어디서 왔는지 누가 알까요?”

(공개 기간이 끝나서 지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