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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가나 북스의 전자책 『경이의 서』 일부를 연재합니다.
* 서지정보 및 판매처 안내 : http://pegana.tistory.com/141


켄타우로스의 신부
The Bride of the Man-Horse

215번째 생일을 맞은 아침, 켄타우로스 셰퍼로크(Shepperalk)는 보물을 보관하는 황금 상자로 가서 소중히 간직했던 애뮬릿을 꺼냈다. 아버지 자이샥(Jyshak)이 젊은 시절 산에서 캐낸 황금을 놈(gnome)과 교환하여 손에 넣은 오팔로 장식해 만든 보물이다. 셰퍼로크는 애뮬릿을 손목에 차고 아무 말도 없이 어머니의 동굴을 나왔다.
같이 갖고 나온 것은 켄타우로스의 클라리온, 과거 인간의 도시 17개를 정복했을 때와 신들의 성채인 솔덴블라나(Tholdenblarna) 공성전이 12년 동안 벌어졌을 때 울려 퍼졌던 이름난 은나팔이다. 그 시절 켄타우로스들은 전쟁을 치르며 어떤 무기에도 밀리지 않았으나 신들이 절망적인 상황에 대비해 준비한 궁극의 무기고에서 꺼내온 최후의 기적 앞에서 서서히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퇴각했다. 셰퍼로크는 이 보물들을 들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의 어머니는 그저 한숨을 내쉬며 배웅할 뿐이었다.
어머니는 오늘 그가 산으로 둘러싸인 땅 바르파 니거(Varpa Niger)의 고지대에서 흘러오는 냇물을 마실 일은 없음을 알고 있었다. 또한 해질 무렵 동굴로 돌아와 인간이 모르는 강가에서 풀 위에 누워 잠들 일이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의 아버지 자이샥도 할아버지 굼(Goom)도, 먼 옛날 신들도 그랬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한숨을 쉴 뿐 아들을 순순히 보내주었던 것이다.
한편 셰퍼로크는 집으로 삼고 지냈던 동굴을 빠져나와 처음으로 작은 시내를 건너고 험한 바위를 돌아 아래로 펼쳐진 들판을 굽어보았다. 세상을 금빛으로 물들이는 가을 바람이 산맥의 사면을 달려 그의 옆구리를 차갑게 쓰다듬었다. 그는 고개를 들고 숨을 들이마신 다음 우렁차게 외쳤다.
“나도 이제 어엿한 켄타우로스다!”
그리곤 바위에서 바위로 뛰어다니며 계곡과 협곡을 달려갔고 급류와 눈사태 흔적을 지나 등 뒤에 아스라미노리아(Athraminauria) 산맥이 펼쳐진 광대한 평지에 이르렀다.
목적지는 솜벨레네(Sombelenë)의 도시 즈레타줄라(Zretazoola)다. 인간 세상을 넘어 켄타우로스 종족의 터전인 아스라미노리아 산맥에까지 퍼진 이야기가 솜벨레네의 초인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전설인지 수수께끼에 싸인 그녀의 신비로움에 대한 전설인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사람의 핏속에는 조수(潮水)가, 오래된 해류가 있어 황혼이 될 무렵 아직 발견되지 않은 섬들로부터 바다가 유목(流木)을 옮겨오듯이 머나먼 곳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소문을 갖고 오는 법이다. 그리고 사람의 피에 일어나는 대조(大潮)는 고대의 전설에서, 종족의 전설적인 시기에 찾아온다. 이는 사람을 숲으로 혹은 언덕 위로 이끈다. 거기서 그는 고대의 노래를 듣는다. 그래서 〈세상의 끝(the Edge of the World)〉에 있는 세상과 동떨어진 산맥에서 셰퍼로크의 전설적인 피가 흥분으로 끓어올라 활기찬 여명만이 알고 믿음직한 박쥐에게만 털어놓는 소문 속으로 섞여 들어갈지 모른다. 셰퍼로크는 사람보다 훨씬 전설적인 존재이기에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