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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남자
‘여기 여주인은 누구지?’
이 집 앞을 지날 때마다 하가와(波川) 순경은 습관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판자 울타리에 둘러싸인 조그만 집이지만 젊은 여성 혼자 사는데 엄청난 미인이라는 평판이 높다.
경찰의 호구조사 명부에는 〈히루메 나나코(比留目奈々子) 28세, 직업 피아니스트〉라고 적혀 있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이름이다. 가끔 드물게 피아노 소리가 날 때도 있지만 늘 셰퍼드인 듯한 맹견이 짖어대는 걸로 유명했다.
오늘도 셰펴드가 으르렁거리고 있다. 그러자 날카로운 여성의 고성이 들렸다.
“뭐라고요! 소포라니…… 모르겠어요……. 지금 협박하는 건가요?”
하가와 순경은 저도 모르게 멈추어 섰다. 띄엄띄엄 들리긴 했으나 들리는 부분은 어쩐지 조용하지 않다. 여자의 말투도 평범하지 않은 성난 태도다.
남자의 목소리가 무언가 중얼거리듯 답하는 것 같지만 낮아서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아무래도 현관에서 응대를 하고 있는 듯했다. 또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른다니까요. 뭐예요, 트집을 잡고!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그 말을 듣자마자 문밖에 있던 하가와 순경은 무의식적으로 문을 벌컥 열고서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이 집에서 혼자 사는 여주인이 분명 기뻐해 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묘한 꼴이 되었다. 현관의 토방에 남자 둘이 있다.
여주인 나나코는 실내에서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는 상태였는데 제복 입은 경찰이 들어왔으니 동시에 돌아본 세 사람 중에서도 오히려 누구보다 당황한 기색을 보인 건 나나코였다.
“무슨 일이시죠?”
숨을 헐떡이면서 쏘아붙이듯 물었다.
“지나가던 길에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말이 들려서 저도 모르게 뛰어들었습니다. 제가 무언가 도움이 될 일이 있겠습니까?”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집안사람들끼리 허물없이 농담처럼 한 말이에요.”
“그렇습니까? 제 귀에는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는데 말이죠…….”
하가와 순경은 두 남자를 관찰했다. 한 사람은 체격이 떡 벌어진 건달풍의 젊은 남자였는데 양복은 고급품으로 꽤 돈이 들어간 옷차림이다. 다른 한 사람은 병약한 인텔리풍의 안경을 쓴 남자로 추운지 양손을 외투 주머니에 꽂고 있었다. 토방 위에 가죽 보스턴백이 놓여 있다. 잡상인치고는 두 사람의 복장이 나쁘지 않다.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냥 지나가주세요.”
나나코에게 그런 말을 들은 이상 버티고 있을 수도 없었기에 관찰도 도중에 중단하고 그야말로 쫓겨나는 꼴이 되었다.
‘정말로 기묘한 조합이군. 집안사람처럼 가까운 동지라고 했지만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어. 그 보스턴백의 내용물은 뭘까? 왠지 신경이 쓰이는데.’
하가와 순경은 올해로 마흔다섯이지만 아직 빛을 보지 못한 남자다. 예전부터 억눌러 놓았던 육감(六感)이라는 놈을 불쑥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래, 이게 육감이라는 놈이야!”
100m 정도 앞에 있는 잡화점이 있는 자리를 꺾으면 하가와 순경의 집이 나온다. 목욕을 하고 저녁식사를 즐기러 집으로 가야 할 무렵이지만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좋아, 변장하고 추적해보자. 그렇게 생각하며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갔다.
“양복 상의와 코트를 줘. 저녁 준비는 나중으로 미루고. 유리코(百合子), 너도 외출 준비를 해. 이상한 놈을 쫓아갈 거야.”
하가와의 딸 유리코도 경찰이었다. 마침 비번이라 집에 있었는데 양복을 입히고 같은 회사의 남녀사원이 회사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도중이라는 모습을 연출하도록 했다. 서둘러 돌아와 보니 나나코의 집에는 다행히 두 남자가 아직 있는 모양이었다. 개가 끙끙거리며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은 집 안으로 들어간 듯했다.
“실내에 들였다면 수상한 손님은 아닌 거 아냐?”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이미 시작한 일이니까 상태를 살펴보자.”
그늘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자 드디어 두 사람이 문 밖으로 나왔다. 건달풍의 남자가 보스턴백을 들고 있다. 두 남자는 전철역으로 향하는 방향과는 반대인 한산한 방향으로 걸어갔다.
“저쪽 방향으로 가는 걸 보니 걸어서 닿을 거리에 집이 있을 거야. 쫓아가자.”
“예, 그러죠.”
두 사람은 50m 정도의 간격을 두고 뒤를 밟기 시작했다. 엉터리 대화를 나누면서 아무 상관도 없는 통행인 시늉을 하면서 따라갔다. 아무래도 그게 잘못이었던 모양이다.
두 사람은 좀처럼 멈추질 않았다. 어느덧 세타가야(世田谷) 구역을 지나 시부야(渋谷)에 이르렀다. 여기서 언덕길을 오르면 전쟁으로 대부분 잿더미가 되긴 했으나 저택이 늘어선 지대가 나온다. 이 언덕을 넘으면 시부야의 번화가가 나온다.
세타가야에서 전철을 내려 시부야구까지 걸어서 귀가하는 월급쟁이라니 이상하다. 이 근처에 귀가하려면 다른 정류소에서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하가와 부녀는 아차 싶은 얼굴로 마주보았다.
“눈치 챘을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저놈들도 전철을 타지 않고 이대로 걷기만 하는 건 수상해. 놈들은 갑자기 두 패로 갈라져서 달릴지도 모르니 그때는 보스턴백을 든 쪽을 집중해서 쫓아가도록 하자.”
“권총 가지고 왔어요?”
“갖고 있어.”
어느덧 언덕의 대저택 지대에 이르렀다. 하나의 저택이 몇 천 평, 그 중에는 1만 평을 넘는 대저택도 있다. 높은 돌담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고 낮에도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어서 한적한 곳. 돌담과 정원의 나무는 옛날 그대로의 모습이지만 돌담 속의 저택은 불타 흔적도 없는 경우가 많다.
두 남자는 이시자카(石坂)에서 갈라졌다. 순간 쿵 하고 땅을 울리는 소리가 났다.
“이때다!”
경찰 부녀는 정신없이 달렸다. 스스로 생각해도 서툰 추적이기에 기가 죽었고, 간격이 꽤 멀어지고 있었기에 너무나도 운이 나빴다. 겨우 모서리를 돌아드니 막 건달풍의 남자가 인테리풍의 남자를 어깨에 태우고 높은 담 위로 밀어 올리던 참이었다. 부녀가 그 모습을 발견하자마자 인텔리풍 남자는 담 안쪽으로 모습을 감춰버렸던 것이다.
하가와 순경은 코트 속에서 권총을 뽑아들고 소리쳤다.
“손들어, 경찰이다!”
남은 남자는 도망치려는 기색도 없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손을 들었다.
“뭡니까? 수상한 사람이 아닌데요.”
“보스턴백은 어쨌나?”
“그런 건 안 갖고 있어요.”
처음에 쿵 하고 소리가 난 건 돌담 안쪽으로 보스턴백을 집어던진 소리였다. 하가와 순경은 그걸 알아차리고 이 남자를 체포해야 한다, 돌담 속으로 뛰어들어 도망간 남자를 쫓아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무심코 높은 돌담을 올려다보았다. 그걸로 운이 끝났다.
갑작스레 팔을 쳐서 불이 나는 아픔을 느낌과 동시에 손에 든 권총도 불을 뿜으려 땅으로 떨어졌다. 순간 명치에 일격을 받고 뒤집어졌다. 동시에 유리코도 얼굴에 공격을 맞고 땅 위로 쓰러졌다.
유리코는 아픔을 참으며 도망치고 있는 발소리 쪽을 눈으로 쫓았다. 남자는 돌담 반대쪽 골목에서 갑자기 구부러지더니 사라져버렸다.
그로부터 2분쯤 뒤에 권총 소리를 듣고 달려온 경찰차에서 내린 순경이 유리코와 아버지를 일으켜 주었다. 사정을 들은 순경은 말했다.
“그런가요? 그럼 이 담 속에 있는 남자를 찾는 쪽이 지름길이네요. 그러고 보니 이 저택 안에는 도베르만과 셰퍼드 큰놈이 있다고요. 그 개가 정원에 풀려 있는 한 그 남자는 반죽음당하는 꼴이 날 걸요. 그런 소리는 듣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권총이 불을 토하며 땅으로 떨어지고 나서야 근처의 개들이 왈왈 짖어대었다. 짖는 걸 보니 사방 인근에 개들 투성이다. 어느 한 마리의 개소리에 주의할 수 없는 상태였다.
“아직 8시니까 부탁해서 저택 내부를 조사하도록 합시다. 첸(陳)이라는 중국인의 집이니까 좀 시끄러울지도 모르지만요.”
정문으로 들어가 안내를 부탁했다. 문지기의 오두막이 있었는데 중년 일본인 하인이 얼굴을 비추었다. 안쪽의 본가와 연락한 후 의외로 간단히 저택 내부의 수사를 허락받았으나 정말로 입구에는 커다란 도베르만과 셰퍼드가 있어 한 발만 내딛어도 뛰어들 듯한 기세로 노려보고 있다.
“저 개를 좀 묶어주지 않겠습니까?”
“아, 예. 지금 묶겠습니다.”
“쭉 풀어놨던 건가요?”
“아, 그렇죠. 해가 지면 매일 저녁에 풀어놓습지요.”
“그러면 놈들이 당했겠구만.”
그런데 정원을 이리저리 찾아다녔지만 남자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개와 격투를 벌인 흔적도 없다. 담에서 뛰어내린 장소가 다소 흐트러져 있는 게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앗, 저게 뭐죠?”
회중전등으로 끈질기게 찾아다녔던 유리코가 남자가 뛰어내린 지점 근처 나무뿌리에 작게 반짝이는 것을 발견하고 주워들었다.
“금시계네요. 여성용 빈대(南京虫 남성용에 비해 유난히 작은 여성용 손목시계를 당시 속어로 빈대라고 불렀다고 한다). 남자가 빈대를 손목에 찰까요?”
기묘한 수수께끼를 남긴 습득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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