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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와 가인(佳人)
유리코는 그 나이의 여성다운 양장 차림으로 찾아갔지만 경찰 신분은 감추지 않았다.
“어젯밤 이 저택으로 도망쳐 들어가 행방불명된 어느 사건의 용의자에 대해서 조언해주실 게 있는지 하고 방문한 것인데 주인어른을 만나게 해주시겠습니까?”
“주인님은 사업차 대만으로 떠나셨습죠.”
“대리로 맡으신 분은?”
“아가씨가 계시지만, 만나주실지 어떨지……”
“다른 가족 분은 더 안 계신가요?”
“사모님도 안 계시고 아드님도 없어요. 남자라곤 지금 현재 개밖에 없지요.”
“아가씨를 만날 수 있도록 해주시겠습니까?”
“순경은 마음에 들어 하시지 않겠지만 뭐 여자니까, 말씀은 전해드리죠.”
그런데 의외로 간단하게 허락이 떨어져 저택 내부로 들어갔다. 전쟁 때 불타 없어지고 남은 땅을 첸 씨가 빌려서 작고 깔끔한 서양식 저택을 지었다. 방은 10개 정도로 정원과 비교하면 그렇게 큰 집은 아니었다.
큰 방으로 안내된 유리코는 나타난 첸 씨 가문의 따님의 아름다움에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볼을 확 붉히며 별로 능숙하지도 않은 영어로 떠듬떠듬 말을 꺼냈다.
“갑자기, 죄송합니다. 나, 경찰……”
그러자 아가씨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일본어로 말씀하세요. 전 일본인과 같은 정도로 일본어를 잘 하니까요. 일본에서 자랐거든요. 당신, 정말로 경찰?”
“네, 그렇습니다.”
“어머나, 귀여운 경찰이시네요. 남자 범인을 붙잡은 적이 있으신지?”
“아뇨, 아직 없어요.”
“맹견이 어슬렁거리는 중국인의 저택에 혼자서 오는 건 걱정이 되었겠네요.”
“예. 그러니까 아가씨를 뵙고 눈이 멀어버렸던 거예요.”
“능숙하시네요. 답할 수 있는 범위에서라면 뭐든지 대답해드릴 테니 용건을 말씀하세요.”
“어젯밤 이 저택 안으로 도망쳐 들어간 채로 행방이 묘연해진 용의자에 대해서인데요, 그때 정원에 풀어놓았을 도베르만과 셰퍼드가 침입자를 놓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아가씨도 동의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정말 이상한 일이군요. 그래도 모르는 사람이 상상하는 정도로 개는 영리하지도 예민하지도 않다고 해요. 이건 개주인의 감상입니다.”
“본가에 드나드는 남자라면 개는 그 사람을 놓치지 않을까요?”
“특별히 개와 친하다면 그렇겠죠. 그래도 개가 놓칠 정도로 친한 남자라면 아마도 아버지 외에는 없을 거예요.”
“아버님은 지금 일본에 안 계신다고 들었는데요.”
“그래요. 벌써 반 년 정도 죽 대만에 머무르고 계세요. 하지만 난세이니까, 국제인은 대개 신출귀몰하는 듯해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일본에 돌아와 있을지도 모르죠. 만약 아버지가 그 침입자라면 연령은 예순 정도에 은발이고 165㎝ 정도의 후덕한 남자입니다.”
“용의자의 나이는 서른 정도에 신장은 160㎝ 이하라고 합니다.”
“그럼 아버지가 아니네요. 키라면 몰라도 나이는 속일 수가 없으니까요.”
“그날 밤 누군가가 저택 안으로 침입한 기색을 알아차리지 못하셨나요?”
“여러분이 정원을 찾아다닐 때까지 딱히 눈치 챈 건 없었던 모양이에요. 독서에 열중하고 있었기에……”
“저희가 가고 난 후에는?”
“글쎄요. 그것도 없네요.”
유리코의 질문은 거기서 다 바닥이 나고 말았다. 이런 청초하고 가련한 아가씨에게 정체도 모를 범인에 대해서 이 이상 질문하는 건 쓸모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상한 용기를 발휘하여 과감하게 물었다.
“이런 질문은 정말로 무례하다고 여겨질지 모르겠지만 방금 난세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걸 감안하고 용서해주십시오. 실은 이 저택 안으로 도망친 용의자는 밀수품 매매 용의자입니다. 밀수품이라고 하면 상식적으로 일본인의 손으로 건너가기 전에 우선 외국인을 생각합니다. 제가 이 집을 방문한 것도 그에 대해 기대하는 부분이 있었던 겁니다. 아가씨를 뵙고 그 기대를 잃어버리기도 했지만 만약을 위해 청할 것이 있습니다. 정직하게 말씀드리죠. 아버님께서는 밀수품 매매에 관여하고 계시는지 어떤지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정직에도 정도가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이런 식으로 대놓고 묻지 않겠지만 숨이 막힐 정도로 호감이 가는 아가씨였기에 오히려 무모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아가씨는 대나무 새총을 맞은 비둘기처럼 눈을 깜빡거렸지만 유리코를 상냥한 눈빛으로 보며 대답했다.
“만약 정말로 그렇다고 한들 그렇습니다, 라고 누가 말씀을 드리겠어요.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도 대담무쌍한 질문을 하시는 거죠?”
“아까 그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난세니까, 국제인은 신출귀몰하다는.”
“민감하시네, 일본의 여경께서는.”
“그럼 역시 그런가요? ……어머, 죄송합니다.”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이 난세에 타국으로 돈을 벌러 온 국제인은 어차피 그것밖에는 장삿거리가 없으니까요. 그러니 당신의 감은 맞을지는 몰라도 밀수품에도 최하부터 최고급까지 있어요. 정부와 다른 세력이 은근슬쩍 장려하는 듯한 밀수도 있을지 몰라요.”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그래서, 만약 아버지가 그렇다면 어떻다는 거죠?”
“이제 됐습니다.”
유리코는 입술을 다물고 떠벌이고 싶은 걸 참으면서 일어났다.
“또 이상한 걸 여쭤볼지도 모르지만 만나주시겠습니까?”
“네, 네. 몇 번이라도 오세요. 일을 하고 있을 때를 제외한다면 말이죠.”
“고맙습니다.”
유리코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정신없이 밖으로 뛰어나왔다.
시부야역 쪽으로 걷고 있자니 뒤에서 불러 세우는 목소리가 있었다. 아버지다.
“걱정이 되어서 쭉 상황을 살펴보고 있었어. 결과는 어땠니?”
“집에 가서 얘기할게.”
유리코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아이들이 소풍이라도 가듯 크게 흔들면서 상기된 얼굴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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