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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책으로 출간된 사카구치 안고의 단편을 맛보기 연재합니다.
* 서지정보 및 판매처 안내 : 선거 살인사건
* 공개 기간 : 2012/09/22~(무기한)

교외 전철이 F역에 도착한 게 11시 35분. 이 F행은 첫차부터 막차까지 30분 간격으로 이루어졌으니 다음 도착은 12시 5분. 이래서는 마감 시간이 걱정된다.
‘앞으로 50일인가…….’
분사쿠(文作)는 전철에서 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인기 작가 칸다 헤이타로(神田兵太郎)가 분사쿠의 신문에 연재소설을 쓰기 시작한지 100회 정도 되었다. 약속한 150회를 끝마칠 때까지는 매일 같은 시간에 F까지 찾아가야만 한다. 역에서 칸다의 집까지는 꽤 멀었다.
앞에는 정장 차림의 젊은 여자가 걷고 있다.
‘아무래도 저 사람도 칸다에게 가는 모양이군.’
분사쿠는 직감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밭길이 언덕에서 끝나는 곳에 이르면 신사(神社)가 있다. 거기서 언덕 정상까지 올라가면 칸다 헤이타로의 집이 있다. 근처에는 다른 집은 한 채도 없는 불편한 장소다.
여자는 신사 앞에서 멈추어 서서 무언가 망설이는 모양이었다. 따라잡은 분사쿠는 망설이지 않고 말을 걸었다.
“칸다 씨 댁에 가는 모양이죠?”
“네?”
“칸다 씨는 여기서 꺾어서 언덕 위쪽이에요.”
“하아……. 알고 있습니다.”
“그런가요? 그럼 이만.”
분사쿠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몹시 당황해 하며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 여성이 이십대 초반에 놀랄 정도로 아름답기 때문이었다.
‘깜짝 놀랐네. 칸다 씨에게 드나드는 인간들 중에 저렇게 예쁜 애가 있단 말인가? 마치 미스 재팬 같지 않은가? 전형적인 미모란 말은 그녀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 아닌가. 너무 반듯하여 조금 차가운 느낌이랄까. 무엇보다 내게 퉁명스레 대하다니 눈이 낮구만.’
칸다가 만나는 여성 저널리스트 중에 야스카와 히사코(安川久子)라는 미모의 잡지기자가 있다는 건 동료 기자들에게도 알려져 있는데 어쩌면 저 사람일지도 모른다. 인기 작가라고 하지만 칸다 헤이타로는 저서가 몇 십만 부나 팔리는 인기 작가이지 매월 책을 잔뜩 내는 유행 작가는 아니었다. 따라서 그에게 원고를 얻어내는 건 쉽지 않지만 요즘 주부잡지 중 하나는 그의 원고를 매월 빠짐없이 싣고 있다. 그 이유는 야스카와 히사코라는 미모의 기자를 보내고 나서부터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칸다 헤이타로는 정체를 모를 작가지. 성 불구자라는 설도 있는 반면 동성애자라는 이야기도 있어. 근데도 미인 기자를 보내 성공한 걸 보면 뭐가 뭔지 알 수가 있나.’
칸다 저택의 초인종을 누르자 모리 아케미(毛利アケミ)가 나와 홀로 안내해주었다. 이 서양식 저택은 엄청나게 큰 홀이 하나 있어 여기에 작은 방이 몇 개 딸려 있을 뿐이었다. 올해 예순인 칸다 헤이타로는 몇 년째 가라테에 빠져 있다. 일하는 틈틈이 이 거실에서 공수도를 연습하며 한 시간 정도는 설친 다음에 목욕을 한다. 신문 원고를 끝낸 후에 하는 경우가 많아서 분사쿠도 몇 번인가 칸다가 날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예순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로 팔팔한 신체로 소나기를 맞은 듯이 땀을 흘리며 눈이 어지러워 비틀거리면서도 “에잇! 얍!” 소리를 지르고 있다. 그런 다음 욕실로 뛰어가는 것이다.
“가라테 연습이 지금 막 끝났어요. 목욕중이세요.”
아케미는 그렇게 설명하고는 홀 구석에 놓인 의자 중 하나로 그를 안내했다.
이 모리 아케미라는 인물은 원래 아마추어 스트리퍼였다. 여대의 축제에서 스트립쇼를 선보여서 동성을 뇌쇄시킨 이후로 육체에 자신을 갖고, 기회만 되면 알몸이 되어 인간을 홀리게 만들겠다는 야심을 품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유명 화가를 골라 모델이 되는 기쁨을 느낀 후 최고의 여체 감상가라 불리는 대가들을 닥치는 대로 격파하며 가슴이 후련해졌다는데, 그러다가 문인인 칸다 헤이타로와 동거를 하기에 이르렀다.
불구자니 동성애자니 하는 소문이 돌았던 칸다가 아케미와 동거를 하게 되었으니 저널리스트도 한 때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칸다가 성 불구자이며 동성애자였기에 여체의 가장 순수한 감상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케미와는 그런 의미로 이어져 있는 게 아닐까 라는 그럴 듯한 결론이 났던 것이다.
늘 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기에 아케미는 미리 준비해 둔 샌드위치와 커피를 대접했다.
“원고는 다 되었습니까?”
“예, 되었습니다. 여기 있어요.”
벽난로 위에 놓여 있던 원고를 집어 그에게 건넸다.
“고맙습니다. 늘 꼼꼼하셔서 도움을 받고 있네요.”
이런 대가면서도 오히려 시간관념이 꼼꼼해서 늘 오전 중에 1회 분량을 끝마쳐둔다. 하는 김에 너덧 일 분량을 합쳐서 써주면 더 좋겠지만 매일 꼼꼼하게 챙겨주는 것만으로도 황송한 일이라 분에 넘치는 소리는 할 수가 없다.
“어이! 타올!”
칸다가 욕실에서 소리를 질렀다. 예, 하고 아케미가 욕실로 달려갔다. 분사쿠가 왔을 때부터 쏴쏴 흐르던 물소리가 겨우 멈춘 건 칸다가 계속 샤워를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요. 추워, 추워, 추워, 빨리, 빨리.”
그렇게 추운 듯한 목소리로 재촉하는 건 아케미다. 타올로 몸을 싸고 있겠지. 칸다는 휘파람을 불면서 침실로 뛰어간 듯하다. 칸다를 침실로 보내고 아케미만 돌아왔다.
“선생님은 샤워를 좋아하시나보죠?”
“그래요. 한겨울에도 하시거든요. 그래서 피부가 탱탱한 걸까요.”
아케미의 안색이 안 좋았다. 그 얼굴을 숨기듯 시선을 피하면서 물었다.
“혹시 전철에서 아름다운 아가씨를 본 적이 없나요?”
“아, 그래요. 봤고말고요. 신사 근처까지 같이 있었죠. 그 사람 누구죠?”
“야스카와 히사코 씨.”
“역시 그랬군. 굉장한 미인이었어요.”
“네.”
아케미는 침울한 표정이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분사쿠가 묻자 아케미는 쓴웃음을 지으며 얼버무렸다.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다만 선생님이 기다리셨다가 반기는 사람이니까요. 찾아오면 거실로 오도록 하세요. 목욕 후의 알몸으로 안달을 하시는 거예요.”
“스트립이군요.”
“심하죠.”
그때 초인종이 울리며 야스카와 히사코가 방문을 했다. 아케미는 미리 알고 있었기에 큰 방을 가로질러 히사코를 칸다의 거실로 데려갔다. 거실, 침실, 욕실과 작은 방이 3개 늘어서 있어 각각 홀로 통하는 문이 있지만 각 방에서 옆으로 통하는 문이 있어 욕실에서 침실로, 침실에서 거실로, 홀에 있는 사람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고도 이동할 수 있었다. 아케미의 마음이 어두워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야스카와 씨가 오셨어요.”
아케미는 침실 문을 열고 큰소리로 외치며 쾅 하고 닫았다.
“아케미! 아케미!”
칸다가 실내에서 큰소리로 불렀다. 아케미는 시끄럽다는 듯이 문으로 얼굴만 들이밀며 물었다.
“왜요?”
칸다가 무언가 중얼중얼 말했다. 아케미는 문을 닫고 분사쿠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남자의 횡포네요.”
“어째서죠?”
“미인을 옆방에 불러들여 놓고서 너 잠깐 산책이나 하고 와라, 라고 하시네요.”
“선생님이라면 괜찮습니다.”
“뭐가 괜찮다는 거예요? 일본 제일의 호색꾼이에요, 저 선생은.”
“흠.”
“뭐가 흠이란 거예요? 자, 나가죠. 불결해요, 여기의 공기. 음풍(淫風)이 휘몰아치고 있네요.”
아케미는 분사쿠의 손을 잡아당기며 밖으로 나갔다. 마침 그때 정오의 사이렌이 울리는 게 들렸다.
“저랑 함께 긴자(銀座)에라도 놀러 가지 않을래요?”
“곧바로 긴자로 갈 수는 없습니다. 이제부터 삽화 담당 선생님이 계신 곳으로 가야 하니까 그 다음으로 하죠.”
언덕을 내려가는 도중 서생(書生)인 키소 에이스케(木曾英介)가 짐을 자전거에 싣고서 올라가고 있어 만났다. 시장으로 장을 보러 갔던 것이다.
“거실에 야스카와 씨가 계시니까 안쪽으로는 가지 않는 편이 좋아요.”
아케미는 키소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 분사쿠를 역까지 배웅해 주었다.
분사쿠가 삽화 선생님을 찾아가서 원고를 건네주고 완성된 삽화를 받아서 회사로 돌아온 게 3시 조금 전이었다. 그러자 사회부 기자 서너 명이 그를 막아섰다.
“지금까지 어디를 돌아다니고 있었나?”
“왜들 이래? 소설 원고와 삽화를 받느라 쉴 틈도 없었다고.”
“너 설마 칸다 헤이타로를 죽인 건 아니겠지?”
“놀래키지 마.”
“칸다 헤이타로가 자살을 했어. 하지만 타살 의혹도 있는 모양이야. 일단 자네는 잠시 종적을 감춰주게.”
“어째서?”
“이쪽의 용무가 끝날 때까지 자네를 타사에 건네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지. 칸다 헤이타로가 죽은 건 자네가 그 집에 있었던 전후의 일이야. 만약 타살이라면 자네는 용의자 넘버원이란 말야.”
“내가 있었던 건 정오였어. 칸다 선생님은 샤워를 하며 팔팔했다고.”
“기다려 봐. 자백을 할 거면, 이쪽 방에서……”
그렇게 사회부의 난폭한 자들이 범인이라도 된 듯이 그를 둘러싸고 억지로 별실에 집어넣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