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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미는 분사쿠를 역에서 배웅한 후 근처를 산책하다가 농가에서 막 낳은 계란을 사고 거기서 2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산책에서 돌아온 건 1시 정도였다.
서생인 키소는 부엌 앞에서 장작을 패고 있었다. 아케미는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장작 패는 소리를 듣고 키소가 있는 곳으로 와서 물었다.
“야스카와 씨는?”
“글쎄요.”
“아직 돌아가지 않았나보죠?”
“전 계속 여기서 장작을 패고 있어서 집 안의 일은 잘 모르겠는데요……”
정말로 꽤 많은 양의 장작이 흩어져 있었다.
아케미는 집 안으로 들어가서 과감하게 거실 문을 두드려 보았다. 실내는 죽은 듯이 조용했기에 안 좋은 예감이 들었으나 의외로 거실 안에서 히사코의 또렷한 답변이 들렸다.
“네. 들어오세요.”
“어머, 야스카와 씨. 혼자세요?”
“예.”
“선생님은?”
“어떻게 되신 거죠?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원고를 쓰고 계신 걸까요?”
“글쎄요. 전 아직 뵙지 못하고 있는데요.”
“아까부터?”
“예에.”
히사코는 한 시간 정도 갖고 온 책을 읽으며 기다리다 지친 상태였다고 한다. 정말로 거실 안은 아케미가 그녀를 안내했을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케미는 침실로 가보았다. 그리고 거기에 알몸인 상태로 엎드린 채 죽은 칸다를 발견한 것이다. 목욕 타올이 하반신을 가리고 있다. 권총으로 관자놀이 부분을 쏘았다. 권총은 오른손 부근에 떨어져 있다. 이미 체온은 사라지고 없었다.
경찰 조사에서 히사코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거실에 있는 동안 옆에 있는 침실에서 특별한 소리는 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방을 움직이지 않았던 건가요?”
“아뇨, 두 번 방을 나갔습니다.”
“왜죠?”
“전화가 울렸거든요. 어느 분도 받지를 않아서 제가 나가보았습니다만 시간이 흐른 탓인지 제가 나갔을 때는 끊어졌습니다.”
“언제쯤입니까?”
“제가 오고 머지않아, 12시 5분인가 10분쯤인 것 같습니다.”
“그때 저택 내에 아무도 없었습니까?”
“어느 분의 모습도 보지 못했습니다.”
“몇 분 정도 방에서 나와 있었습니까?”
“아주 잠시였어요. 전화기를 들고 끊어졌음을 알아차렸을 때까지만이었죠.”
“그때 권총 소리를 듣지 않았습니까?”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라디오가 켜져 있어서 못 들은 걸지도 몰라요.”
“라디오를 켠 것은 당신입니까?”
“아니오. 제가 왔을 때부터 켜져 있었습니다.”
그 라디오는 칸다 스스로 스위치를 켠 것이다. 가라테 연습을 시작할 때 켰다고 한다.
아케미도 분사쿠도 집을 나올 때 라디오가 켜져 있었음을 듣고 있었다. 아케미는 라디오를 끄고 나올까 생각했으나 ‘그들의 편의를 위해’ 일부러 라디오 소리를 남겨두고 나왔다고 말했다.
“관대하시군요.”
신문기자가 감탄을 했다.
“저까지 창피해지거든요.”
그렇게 의미 깊은 미소를 지었다고 어느 신문이 보도를 했던 것이다.
키소는 이렇게 증언했다.
“제가 저택으로 돌아온 건 12시 5분경이 아닐까요. 왜냐하면 신사 앞에 자전거를 놔두고 이제부터 언덕을 오르자며 잠깐 쉬고 있을 때 정오의 사이렌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전화 말인가요? 전화는 몰랐는데요. 무엇보다 짐을 부엌에 넣느라 바빴거든요. 갑작스레 장작을 패기 시작했었으니까요.”
그는 27세. 전쟁 때는 학도병이었던 미청년이다. 그는 신문 기자에게 동성애 관련한 난잡한 질문을 받았으나 침착하게 받아 넘겼다.
“저는 선생님의 제자이고 서생이자 하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외엔 모르겠는데요. ……예? 애인? 선생님의 애인이라면 아케미 씨잖아요. ……예? 야스카와 히사코 씨와 선생님의 관계 말입니까? 그런 걸 알 리가 있나요. 저는 칸다 선생님의 사생활에 흥미가 없었습니다.”
“권총 소리를 못 들었나?”
“알았다면 어떻게든 했겠죠. 서생의 근무에는 충실했었으니까요.”
“자살의 원인으로 짐작 가는 바는?”
“없는데요. 원래 문사(文士)에는 자살적인 문사와 자살적이지 않은 문사 두 종류가 있어서, 자살적이지 않은 문사라는 건 인간 중에서도 가장 자살과 인연이 없는 인간인 겁니다.”
“살해당할 원인으로 짐작 가는 바는?”
“제가 선생님을 죽일 원인이라면 짐작 가는 바가 없군요.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모르겠고요.”
“당신과 아케미 씨의 관계는?”
그렇게 파고든 신문 기자의 얼굴을 이상한 듯이 보면서 그는 중얼거렸다.
“만약 우리의 사이가 좋다면 선생님의 생존이 무엇보다 필요하지. 왜냐하면 우리가 같은 지붕 밑에서 살 수 있는 건 선생님 덕분이니까. 나처럼 생활력 없는 인간이 선생님 없이 아케미 씨와 한지붕 아래에서 살 수 있을 리가 있나. 아케미 씨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면 알겠지만 말야…….”
“그래서 결국, 좋은 사이란 말입니까?”
“제가 응이라고 말하면 일본 전국의 사람들을 고민하게 만들 수 있는 모양이군요.”
그는 빈정대는 웃음을 남기고 떠났다.
결국 용의자는 세 명이 되었다. 아케미와 히사코와 키소다. 그에 대해 분사쿠의 증언이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는 꼴이 되었다. 그런데 분사쿠는 무심코 사회부 사람들에게 히사코에 대해 말해버리는 바람에 크게 번민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의 회사 신문이 다음날 지면에 히사코를 거의 확실한 용의자라고 대담하게 보도했기 때문이었다.
『당일 오전 11시 35분 도착한 전철에서 내린 우리 신문의 야베 분사쿠(矢部文作) 기자는, 같은 전철로 온 야스카와 히사코가 언덕 어귀에서 큰 핸드백 안을 엿보며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는 걸 보고서 말을 걸었다.
“칸다 씨를 만나러 가는 건가요?”
“예.”
“함께 갑시다.”
“신경 쓰지 마세요.”
그녀는 차갑게 답했다. 그리고 거기서 3분 걸리는 길을 15분이나 늦게 도착한 히사코는 마중나온 아케미를 찌를 듯한 얼굴로 보고는 홀을 가로질러 거실로 들어갔다. 15분에서 3분을 뺀 12분 동안, 그녀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이를 읽은 분사쿠는 신문을 움켜쥐고는 때려 부술 기세로 사회부 데스크로 달려갔다.
“핸드백을 가슴에 안고 멍하니 서있었다고 말했잖아? 안을 열어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말은 한 적도 없어!”
“문외한은 가만히 있기나 해.”
“못 있겠다 어쩔래! 나도 옛날엔 3년이나 사회부에서 밥을 벌어먹었단 말이다. 15에서 3을 뺀 12분 동안 칸다 선생님을 죽일 수 있었다고? 정오까지 선생님이 살아 계셨다는 건 내가 증명할 수 있단 말이다!”
“그 12분 동안 그녀가 죽였다고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어. 그녀가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이거지.”
“12분 가지고는 뭘 해도 부족하잖나.”
“언덕 아래엔 파칭코 가게도 찻집도 없어. 밭밖에는 없는 곳에서 12분 동안 무엇을 하며 보냈겠나?”
“좋아! 내가 조만간 그녀의 무죄를 증명할 테니 기다리고들 있어. 하는 김에 범인도 밝혀내 보이겠어.”
그는 벌컥 화를 내며 밖으로 달려 나왔다. 우선 냉정히 각 신문의 기사를 읽으며 비교를 해보니 여러 신문이 히사코에게 불리한 견해를 보인 듯하다. 자살이라고 하면 히사코가 전화를 받으려 나간 사이에 일어났고, 타살이라면 범인은 히사코라는 얘기다. 왜냐하면 옆방의 권총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 건 믿기 어려우니까 라는 게 신문들의 대체적인 요지였다. 어느 신문에 이르러서는 이미 히사코를 범인으로 만들고 나체인 칸다가 그녀를 덮치려고 했기에 그걸 예견한 히사코가 준비한 권총을 꺼내 칸다를 쏘았다고 단정하고 있다.
‘멍청하기는. 그 청초한 미녀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있나? 양장에는 얼룩 하나 없지 않았나? 가라테의 달인 칸다 헤이타로의 습격을 받고 그런 뛰어난 대응을 할 수 있는 여자는 사루토비 사스케(猿飛佐助 전국시대 무장인 사나다 유키무라真田幸村 휘하에서 활약했다는 닌자. 민담이나 소설 등에만 나오는 가공의 인물로 여성으로 그려진 작품도 다수 있다) 정도밖에 없을 걸.’
어쨌든 그는 이미 100번도 넘게 칸다의 저택을 찾아갔었다. 그 중에서 칸다를 만난 건 극히 적고 대개는 그저 원고를 받고 샌드위치를 먹는 것뿐이지만, 그래도 100번을 참배하면 신불(神佛)의 마음도 움직인다는 속담이 있다. 요즘 그만큼 칸다의 저택 문을 드나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선 칸다라는 작가의 생애를 해명할 필요가 있어. 그걸 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어.’
그렇게 일단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으나 그가 성 불구자인지, 동성애자인지, 그도 아니면 성 능력에 문제가 없는 이성애자인지, 그것마저도 짐작이 가지 않는다. 100번이나 찾아갔으면서도 그의 진짜 생활은 전혀 접한 적이 없었음을 알았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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