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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가나 북스의 전자책 『심령 살인사건』 일부를 연재합니다.
* 서지정보 및 판매처 안내 : http://pegana.tistory.com/46
* 공개 기간 : 무기한

2. 1월 19일 오후 1시

어느 음식점 별실에서 마주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오오시카와 우에노 미츠코다.
“사쿠라 영화사는 일류 투수를 두세 명 빼내는 데 성공한 모양이에요. 그래서 오오시카 씨를 받아주려 하지 않았죠. 그래서 전매신문과 흥정을 했는데 아무리 해도 100만까지라고. 뭐, 그게 정말 당신의 한계예요.”
오오시카는 오히려 마음이 놓인 얼굴이다.
“아뇨, 이제 그 얘기는 괜찮습니다. 그간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어머나, 깨끗이 포기하시네? 역시 러키 스트라이크가 좋은 모양이죠? 아카츠키 씨가 있는 곳이니까.”
“아뇨, 그런 뜻은 아닙니다.”
“거짓말 마세요. 오늘밤, 케무야마군이 그쪽으로 가잖아요?”
“그런 일 없습니다.”
“흥.”
미츠코의 미간이 찌푸려지며 짜증을 드러내었다.
“당신, 전매신문의 네이비 컷으로 이적하세요. 약속한 300만, 내겠어요. 전매에게서 100만, 내게서 200만. 내 전 재산이야. 어때요?”
“이미 돈은 필요 없어졌습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왜 당신이 300만 엔을 필요로 했는데! 나는 다 알고 있다고요. 누구에게서 들었다고 생각해? 이와야 텐구 씨야. 내일 20일이죠? 당신은 교토로 아카츠키 요코의 위자료를 지불하러 가겠죠. 300만, 낼 수 있나요?”
“그야, 뭐, 어떻게든 되겠죠.”
“어리광쟁이구나. 케무야마군은 돈 따위 갖고 오지 않아. 갖고 오는 건 100만뿐이지. 그걸로 어떻게든 될까?”
오오시카의 급소를 찔렀다. 어떻게 해서든 300만이라는 거금은 손에 들어오지 않는 한은 연기를 움켜쥐는 것과 같이 짐작할 수가 없는 상태다. 저도 모르게 할 말을 잃고 고개를 숙여버렸다.
“내가 케무야마군을 만났거든요. 100만으로 어물쩍 넘기려는 속셈이야. 나중에는 아카츠키 요코의 의리를 내세워 질질 끌려는 계산이죠. 비겁하지 않아? 당신은 그래도 좋아?”
미츠코의 눈에서 불길이 이글거렸다.
“만약 이와야 텐구 같은 건달 상대라도 남의 부인과 불륜을 맺다가 손해배상을 지불할 수 없게 되면 남자 체면이 엉망이 된다고요. 야구 선수의 수치 정도가 아냐. 내가 200만 낼 테니까 이와야 텐구에게 지폐뭉치를 내던져 버려요.”
“당신에게서 돈을 받을 이유가 없는데요.”
“이유가 있든 없든 돈을 낼 수 없으면 어쩌려는 거예요?”
“어떻게든 할 겁니다.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무슨 각오?”
오오시카는 남자답게 얼굴에 결의를 드러내었다.
“그때는 아마도, 죽을 겁니다.”
“바보군.”
미츠코는 쓴웃음을 지었으나 이내 안색이 부드러워졌다.
“미래의 세계적인 투수가 될 사람이 그런 일로 죽다니 한심한 일이야. 내 말을 들어요. 내게서 돈을 받을 이유가 없다면 나랑 결혼하면 되잖아요.”
오오시카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렇게 놀랄 건 없잖아요. 작년 여름은 즐거웠어. 나, 당신의 첫 등판을 볼 때부터 일본 최고의 거물이라고 생각했어. 피스(ピース)의 좌완투수 잇포쿠(一服)군이 질투를 하더군. 왜 그런 애송이를 상대하는 거냐며 막 따지는 거야. 애송이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당신의 삼진 기록 따위는 애송이에게 순식간에 깨질 거란 말야, 라고 말해줬지. 잇포쿠군은 작년 말부터 끈덕지게 프로포즈를 하고 있어. 오늘도 거리에서 만났거든. 잇포쿠군은 교토에서 살고 있으니까. 그래서 말야, 당장 결혼하자고, 자러 가자고 말하길래 분명히 말해줬지. 나는 며칠 안에 오오시카 씨와 결혼한다고. 잇포쿠군은 얼굴이 파래지더니 화를 냈지.”
오오시카는 무척이나 불쾌한 기분이 들었으나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니 짙은 어둠이 있을 뿐이다. 가슴이 무너지는 슬픔이었다.
“뭘 망설이는 거예요? 확실하고 분명히 하자고요. 나와 결혼하는 거예요. 그리고 네이비 컷으로 이적하는 거예요. 케무야마군과 러키 스트라이크의 비열함을 비웃자고요. 나, 당신을 위해서라면 200만 엔을 버리는 정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고요.”
오오시카는 차가운 눈으로 말했다.
“당신과 결혼을 할 거라면 이렇게 괴로워하면서 300만 엔 때문에 고생하지 않을 거예요.”
미츠코의 안색이 변했다.
“뭐라고요?”
“전 아카츠키 요코 씨와 결혼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는 겁니다.”
“흥. 결혼할 수 없어. 이와야 텐구에게 300만 엔을 낼 수 없으니까.”
“그럴 때의 각오는 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빚도 지지 않을 겁니다. 저 혼자 해결합니다. 여러 가지 번거로운 부탁을 해서 죄송했습니다. 실례하겠습니다.”
“기다려요!”
“아뇨, 제 기분을 더럽히지 말아주세요.”
휙 돌아서더니 만류하는 손을 뿌리치고 오오시카는 떠나버렸다. 미츠코가 쫓아 나왔을 땐 이미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미츠코는 발을 동동 굴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오시카의 주소를 알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알아내 보이겠다. 그리고 복수한다. 러키 스트라이크로의 이적 이야기를 깨부수고, 300만 엔을 허사로 만들어 이와야 텐구에게 지불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매달리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 천하의 여성 스카우트 우에노 미츠코는 누구에게도 져본 적 없는 여자였다.
몇 시에 올지는 모르지만 오늘밤 중으로는 케무야마가 올 터였다. 왜냐하면 내일 아침까지 계약금 300만을 오오시카에게 건넬 필요가 있으니까. 미츠코는 케무야마를 교토역에서 잠복하여 기다릴까 생각했다. 그러나 잠복하고 있다가 뒤를 밟는다고 해도 그때는 이미 그들의 상담은 끝났을 것이다.
미츠코가 생각에 잠긴 채로 걷고 있을 때 잇포쿠 투수와 갑작스레 만났다.
“아까는 잘도 나를 차버리고 도망쳤지? 어이, 미츠코!”
“뭐야, 길 한복판에서?”
“흥. 어디든 상관없지. 너 정말 오오시카 놈이랑 결혼할 거야?”
“후후후.”
“야, 만일 결혼한다면 네 년이든 오오시카든 둘 중의 하나는 죽여 버릴 거야!”
“대단하시네.”
“뭐야? 이봐, 농담이라고 말해줘.”
“글쎄, 어쩔까? 지금으로선 확실히 안 할 거니까. 이삼일 사이에 알 거야. 오오시카 씨와 결혼할지 안 할지.”
“오오시카는 어디에 사는데?”
“나도 그걸 알고 싶어.”
“쳇. 숨기지 마. 험한 꼴 당하고 싶어?”
“숨기다니? 나도 찾고 있단 말야. 당신이 찾을 수 있으면 찾아보시지.”
“좋아, 찾아보겠어. 따라와!”
“어디로?”
“짐작가는 데가 있지. 오오시카가 아라시야마 종점에서 하차한다는 소문이 있거든.”
“거기에서 또 키요타키(清滝)행 전철이 있잖아.”
“어쨌든 상관없어. 의지로 찾아낼 테니까. 내가 오오시카와 담판을 짓고 녀석이 손을 뺀다고 말하면 미츠코는 나랑 결혼해야 해.”
“글쎄, 어찌 될지? 오오시카 씨와 결혼하지 않는다고 해서 굳이 당신과 결혼한다고는 할 수 없어.”
“그런 말은 하지 마.”
“그럼 뭐라고 말해야 돼?”
“어쨌든 오오시카가 숨어 사는 집을 찾아낼 테니까 따라 오라고!”
잇포쿠는 미츠코를 억지로 잡아당기며 걷기 시작했다. 미츠코도 키가 크다고는 하지만 6척은 됨직한 잇포쿠의 힘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풍부한 책략을 자랑하는 미츠코, 이때다 싶을 때를 위한 준비는 충분하다는 확신이 있기에 이 멍청이의 바보스런 일념으로 오오시카의 숨은 집을 알게 된다면 천만다행이라고 내심 미소 지으며 반쯤 끌려갔다.